양태훈 기자 입력 2020.06.22. 17:46 수정 2020.06.22. 19:11
[이슈진단+] 소부장 국산화 성과와 과제 조명
(지디넷코리아=양태훈 기자)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나선 지 1년이 다 됐지만, 한일 양국의 무역분쟁은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이 추가 규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우리 정부의 세계무역기구 제소 재개 검토로 갈등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가 국내 산업의 새로운 위기요인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에 대비한 새로운 전략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나온다. 지디넷코리아는 이에 한일 무역분쟁 1년의 성과와 과제를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됐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좀처럼 갈등해결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수출규제 문제(한일 무역분쟁)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패널 설치 요청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하면서 WTO 분쟁 절차를 본격화한 데 따른 것이다. 패널은 WTO 분쟁 당사국 간 재판절차로, 최종심까지 통상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한일 무역분쟁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노역 배상판결과 관련해 일본이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을 '포괄수출허가' 대상에서 '건별허가' 대상으로 전환, 같은 해 8월 우리나라를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국(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이 지난해 7월 우리나라를 상대로 시행한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가 1년을 맞았다. (사진=뉴스1)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일본과의 무역분쟁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대화에 나서왔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유예하고, WTO 제소 절차를 중단하는 등 무역분쟁 해결을 위한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일본이 수출규제 이유로 거론한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미흡 ▲수출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한일 정책대화 등과 관련해서는 수출관리지원조직인 전략물자관리원 인력을 25% 증원하고, 무역안보 업무를 전담하는 무역안보정책관 신설하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3개 사유를 모두 해소했다.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우리 정부의 노력에 비해 일본 정부에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WTO에 제소해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런 상황에도 일본 정부는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현안 해결을 위한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의 상황이 애초 WTO 분쟁해결절차 정지의 요건이었던 정상적인 대화의 진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 日 수출규제 1년, 달라진 한국 소부장 경쟁력
우리 정부는 그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을 수립하고 ▲예산 ▲금융 ▲세제 ▲규제 특례 등에 걸쳐 국내 소부장 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수출규제 3대 품목에 대한 국산화에 성공, 주요 대기업들은 공급선을 다변화하는데 성공했다. 구체적으로 불화수소의 경우, 솔브레인이 기존 대비 두 배 이상 생산량을 늘려 공급능력을 확대했고, SK머티리얼즈도 경북 영주에 15톤 규모의 생산공장을 준공해 제품 개발에 돌입하는 등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포토레지스트는 유럽산 제품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기업 미국 듀폰의 국내 생산시설 투자를 유치해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데 성공했으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독자기술을 확보해 주요 대기업과 시제품 테스트에 돌입하는 등 국산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나아가 3대 수출규제 품목은 아니지만, 대일 의존도가 90%에 달했던 반도체 블랭크 마스크 역시 SKC가 제품을 국산화하고, 국내 수요기업과 시제품 테스트에 돌입하는 등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위원과 민간위원, 소재부품장비 관계자들이 화학소재솔루션센터의 화학소재 공정 및 클린룸 제조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산업부)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일본 수출규제 조치로 핵심 소부장에 대한 국산화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일본 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줄고, 국내 기업의 공급물량이 늘어나는 성과가 나타났다"며 "특히 소부장 업계에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대기업과 협력을 통해 상생하는 문화가 조성됐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국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산업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로 소부장 국산화 정책 효과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국내 대기업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자 우리나라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해외 기업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양팽 전문위원은 이에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오히려 일본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늘어나는 등 글로벌 공급체인이 변화하고 있다"며 "한국 소부장 업계가 이번 기회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만큼 지속적인 정부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韓 소부장 경쟁력 강화 더 강화하려면 세제 개편 필요"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촉진세제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국내 소부장 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세제지원 실효성 강화를 위한 세액공제 방식 개선 ▲소부장 R&D 투자확대 및 제품화 유인을 위한 조세지원제도 마련 등을 제시했다.
정부가 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고,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및 인력확보 지원을 위한 세제개편안을 마련했지만, 더욱 정밀한 조세지원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은희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입법조사관은 "소부장 국산화 촉진을 위해서는 소부장 기업의 R&D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이 R&D 활동에 지출하는 비용 중에서 정부이 세제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93%로 주요국가 대비 낮은 수준인 만큼 기업의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R&D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해야한다. 예컨대 미국의 세제지원 비중은 3.69%로 우리나라보다 낮으나 보조금 형식을 통한 직접지원 비중이 높아(2017년 기준 한국 4.7%, 미국 6.1%) 전체 정부지원 비중은 우리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근거를 들었다.
(자료=국회입법조사처)
또 "기업의 R&D 투자 활성화를 위해 먼저 R&D 투자 조세지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R&D 개발비 세액공제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며 "조특법 제10조의 연구개발 관련 경상비에 대한 조세지원제도는 신성장·원천기술 연구개발비와 일반연구·인력개발비로 크게 구분되고, 각 구분에 대해 기업규모에 따라 세액공제율에 차이가 나는데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차등적으로 설정돼 있다.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의 경우 중소기업은 당기분의 25% 또는 전년 대비 증가분의 50%를 선택해서 공제받을 수 있는 만큼 증가분을 활용하기 위해 전년 대비 100% 이상 투자를 증가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는 전년 투자비가 10억원인 경우, 전년 대비 증가분에 따른 공제방식을 활용하기 위해 전년 대비 100%(10억원) 증가한 20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데 재정상황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업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중소기업 중 전년 대비 연구개발비용이 증가한 기업은 전체의 52%에 불과한 실정이다.
문은희 조사관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98%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소부장 산업의 연구개발투자 세제지원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현재 중소기업에 대한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제도를 소부장 기업에 대해서는 당기분 세액공제율을 상향하거나 현재의 당기분 또는 증가분의 선택 방식에서 당기분에 증가분을 추가 세액공제하는 혼합형 공제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소부장 R&D 투자확대 및 제품화 유인을 위한 조세지원제도 마련과 관련해서는 투자 성과물의 사업화율 제고 측면을 고려해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식재산을 사업화해 발생한 제품 매출 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특허박스 제도는 기업 경쟁력 강화와 지식재산권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문 조사관은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OECD 국가 중 높은 편인 것을 감안하면, 특허박스제도를 통해 법인세 실효세율을 낮춰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유인과 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최근 학계와 산업계에서 특허박스제도의 국내 도입 유형으로 세원감소 및 대기업에 집중되는 혜택 등 부정적 효과를 감안하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제품매출형 특허박스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향후 세수와 다른 산업에의 파급 효과 등에 대한 객관적 검증과 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소부장 중소기업에 대한 제품매출형 특허박스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태훈 기자(insight@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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