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김광일의 입] "차라리 다른 당 찍을까"

Shawn Chase 2020. 3. 18. 23:05




입력 2020.03.18 18:04 | 수정 2020.03.18 18:08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소리다. "차라리 국민의당이나 찍을까…" 최근에 집권 여당과 제1 야당이 보여주고 있는 비례공천 모습을 보고 실망한 시청자들께서 한숨을 쉰다. 중도적 입장을 가지고 관망을 하던 시청자들까지도 "에이 차라리 안철수 당에게 표를 주자, 안철수의 국민의당이나 찍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땀에 젖은 초록색 의사 옷을 입고 대구에서 봉사했던 ‘의사 안철수 씨’의 사진에 호감을 느낀 분도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원내 1당,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보여주고 있는 총선 공천은 한마디로 "뒤죽박죽" "갈팡질팡"이다. 도대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개정 선거법이 4월 총선을 혼탁과 미망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민주당도 통합당도 ‘편법(便法)’이란 편법을 총동원하고 있는 양상이고, 그러면서 유권자들께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뻔뻔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정공법이 아닌 편법은 반드시 ‘내부 분열’을 촉발한다.

먼저 민주당은 비례당을 만든 야당을 비판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180도 뒤로 돌아섰다. 어영부영 하다가는 "아이쿠 큰일 나겠네, 의석 도둑맞겠네, 대통령 탄핵되겠네, 다음 대통령 선거도 통째로 넘어 가겠네" 이런 절박한 위기의식에 맞닥뜨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위성정당인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겠다고 뛰어든 민주당이 이런저런 군소 정당을 간도 보고 저울질도 하더니 결국 ‘친문 세력, 그리고 조국 전 법무장관을 지지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한 비례정당’ 창당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민주당은 조국 지지 세력이 주축이 된 이른바 ‘시민을 위하여’란 모임을 플랫폼으로 삼고, 여기에 원외정당 4곳, 즉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 등을 참여시킨 다섯 당이 비례대표 전담 연합정당을 만들겠다며 협약 사항에 서명도 하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네 당은 현역 의원이 당 한 명도 없다. 또 넷 중 셋은 올해 창당한 급조 정당이다. "민주당이 자신들 입맛대로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위성정당’이자 ‘꼭두각시정당’을 만들려고 꼼수에 꼼수를 더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사고 있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정치개혁연합과 손을 잡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문성근(영화배우), 함세웅(신부), 한완상(전 교육부장관), 이부영(전 의원), 하승수(변호사), 김경민(전 YMCA 사무총장), 김삼렬(독립유공자 유족회 회장), 황교익(맛칼럼니스트) 씨 등 원로들이 참여한 정치개혁연합, 그리고 거기에 민중당, 녹색당, 미래당 등을 보태서 비례연합정당의 진영을 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과 정치개혁연합은 결국 여권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작성할 때의 지분싸움, 주도권 다툼 등으로 갈라서게 됐다. 또 정치개혁연합의 원로들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시시콜콜 간섭하려 들자 친문 세력들이 크게 반발했다고도 한다. 결론은, ‘조국 수호’를 외쳤던 강성 친문 지지 세력인 ‘개싸움 국민운동본부’ 이른바 ‘개국본’이 주축이 될 전망이다. 다시 말해 여당이 돌고 돌아서, 마지막에 돌아온 곳은 ‘조국’이다. 4·15 총선을 문 대통령의 복심을 받들어 ‘조국 선거’로 치르겠다는 것이다.

통합당과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 명단을 놓고 치졸한 집안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절대 보이지 말았어야 할 모습이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한선교가 황교안의 뒤통수를 쳤다"느니 "사실상 공천 쿠데타"란 말까지 나왔다. 황교안 대표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면서 한선교 의원에게 대표를 맡겼고, 한선교 대표는 다시 공천관리의 전권을 공병호 위원장에게 일임했었다.

공병호 공천관리위는 모두 530명이나 몰려든 비례대표 지원자 중에서 46명을 골라내 엊그제 명단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불협화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첫째 본가(本家)라고 할 수 있는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대표가 영입한 인재들이 대부분 당선권 밖에 배치돼 있다는 것이다. 공병호 위원장 입장에서는 ‘일단 전권을 맡겼으면 그 결과를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인 것이고, 황교안 대표 측은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며 크게 화를 내며 반발하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이번 주에 일부 비례대표 후보 명단의 순위를 조정하면서 어떻게든 봉합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저분한 얘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급기야 기자들이 "통합당이 자체 비례대표를 내도 되지 않느냐"고 슬쩍 찔러 들어가자, 황교안 대표는 "가능하다.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 미래한국당이란 존재 자체를 없었던 일로 돌려버리거나 아예 빈껍데기 정당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으름장으로 들렸다. 미래한국당으로 이적한 다섯 명 현역 의원들을 본가인 통합당으로 복귀시킬 수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셀프 제명’을 통해 미래한국당에 현역 의원 2명을 추가로 내보내려던 계획도 중단해버렸다.

물론, 공천과정에서 내부 진통은 언제나 있는 것이고,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정할 때 이런저런 인사들이 당선권 경계선의 안쪽이냐 바깥쪽이냐, 이 문제는 으레 불거지기 마련인 것이며, 그러한 아픔과 희생을 겪은 뒤 제2의 통합을 이뤄내면서 진짜로 전열을 가다듬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황교안, 한선교, 공병호, 이 세 사람은 정말로 ‘사태의 엄중함’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서 야당을 찍겠다고 벼르던 유권자들이 최근 뒤죽박죽 갈팡질팡하는 야당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투표소에 가서 정권을 심판하겠다던 유권자가 4월15일 차라리 등산이나 가겠다고 한다든지, 차라리 국민의당이나 찍겠다고 하는 말을, 지금은 농담처럼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나라의 미래와 관련된, 정말 심각한 얘기인 것이다.

최근 나온 여론 조사를 보면 황교안, 나경원, 오세훈 같은 야당의 스타 주자들이 지역구의 상대방에게 밀리고 있는 양상이다. 수도권의 다른 격전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물론 흐름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다. ‘코로나 비상사태’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방역 대책을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야당을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 사태로 워낙 죽을 쑤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이런 마당에 집안싸움이나 벌이면 하루에 유권자가 수십만 명씩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8/20200318047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