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태평로] 제 발등 찍는 '감염병 정치'

Shawn Chase 2020. 3. 18. 23:07



입력 2020.03.18 05:37

전 세계가 생존 투쟁 벌이는데 우리는 계산기 먼저 두드려
'정치가 먼저'의 극심한 폐해… 코로나 계기 반면교사 삼아야

임민혁 논설위원
임민혁 논설위원

지난주 유럽연합(EU) 주재 이탈리아 대사가 미 언론에 "유럽연합에 의료 물자·인력 지원을 요청했는데 단 한 나라도 응하지 않고 있다"는 기고문을 보냈다. 코로나 폭탄을 맞은 이탈리아의 고통을 '공동체'라던 이웃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바이러스와 이기주의라는 두 적(敵)과 싸우는 게 버겁다"는 호소도 별 효과가 없는 듯하다.

전 세계가 각자도생이다. 지진·쓰나미같이 일부 지역에 국한된 재난이었으면 주요국들은 앞다퉈 지원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전부를 덮친 초유의 사태 앞에서는 모두 '내 코가 석자'다. 다른 정치·외교 고려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한다"며 빗장을 걸어잠그고 의료 물품 반출을 막고 있다. 이런 살벌한 방역 투쟁의 현장에서 홀로 감염병 발원국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며 마스크를 보낸 우리 정부의 정치적 판단은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방역보다 정치를 앞세운 '감염병 정치' 행태는 훗날을 위해서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한다. 사태 초기 전문가들이 '중국 입국 통제'를 주장한 것은 감염원 차단이라는 방역 기본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 봉쇄를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정부의 고민도 이해 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를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중국 혐오를 멈추라"며 정치 싸움으로 몰고 가는 길을 택했다. 이후 신천지발(發) 집단 감염이 나오자 여권은 재빨리 신천지 시설 폐쇄에 나섰는데, 같은 논리라면 이는 '종교 탄압'인가. 신천지 통제가 감염원 확산 확률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 조치였듯, 중국 입국 제한도 마찬가지다. 입국 차단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다른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여권이 이를 가지고 정치를 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본의 우리 국민 입국 제한에 대한 맞대응 조치도 다를 게 없다. 아베 정권이 도쿄올림픽이라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사실상 확진자를 은폐하는 등 온갖 무리수를 둔 것은 모두가 다 안다. 덜컥 한국인 입국 제한을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100여 개국의 입국 제한에는 아무 말도 없던 정부가 일본에만 즉각 반격을 가하니 "또 반일(反日) 정치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득표에 도움이 되니 정책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면서도 망설임이 없다. 제동을 걸어야 할 외교부는 되레 청와대가 부르는 죽창가에 열심히 화음을 넣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메르스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대처하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주고받은 건 또 어땠나. 아무리 '전(前) 정부 탓'이 이 정권의 전가의 보도라지만 이렇게 노골적일 수 없다. 여권과 그 지지자들은 사태 초기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메르스 때 피해가 훨씬 컸던 거 모르냐"고 악담을 퍼부었다. 이후 숫자가 역전되자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받고 있다. 사태 확산에는 정부가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있고 근거 없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억울해도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큰 재난에 고통과 피해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값진 경험과 교훈도 얻는다.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우리 의료진의 검진 능력은 신종플루와 메르스 사태 아픔을 겪으면서 갖춰진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 후에는 우리 방역 시스템을 몇 단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감염병 정치' 폐해에 대한 교훈도 반드시 새겼으면 한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다. 재난을 앞에 두고 정치 계산기를 먼저 두드릴 때 어떻게 피해가 커지고 국론이 쪼개지고 소모적인 싸움이 이어지는지 모두가 똑똑히 지켜봤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8/20200318000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