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열정 잃고 추락한 '개콘'… 못 웃겨서 죄송합니다

Shawn Chase 2015. 11. 3. 18:56

양지호 기자

입력 : 2015.11.03 03:00

-고전하는 KBS 개그콘서트
15년 넘게 정상 달리던 프로… 시청률 10.6%로 추락
"신선함 부족, 외모 비하 개그뿐" 혁신 없이 영원한 1등은 없어

"그동안 유행어 하나 못 만들어 죄송합니다."

대학 강의실에서 '창의성 생산 시스템'의 모범 사례로도 등장했던 KBS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고전이 이어지고 있다. 변변한 유행어 하나 못 만든다며 자기반성을 하는 코너(유·전·자)까지 나왔지만 시청률은 답보 상태. 신규 코너 '유·전·자'가 호평을 얻었지만 지난 1일 시청률은 전주 대비 0.2% 오른 10.6%에 그쳤다. 2011년 최고 시청률 27.9%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 IMF 위기 직후 등장해 한국인의 웃음을 책임졌던 개콘의 추락, 이유가 뭘까.

안주, 또 안주… 출연진의 공무원화?

개콘을 즐겨보던 취업 준비생 윤모(여·27)씨는 "출연진들이 공무원화한 느낌"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좀처럼 새 코너가 나오지 않는 데다 바뀌었다 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얘기다. 웃음을 유도하는 방식이 뻔하고 획일적인 탓이다. 윤씨는 "시대가 어느 때인데 여자 개그맨들은 언제나 예쁘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같은 신체 부위를 활용해 웃기려고 하니 매우 불편하다"고 했다. 개콘 시청자 게시판에는 '아이디어가 없으니 고성만 난무하고 쓴웃음만 팔려고 한다'는 지적이 올라왔다. 정치와 시류를 담아 날카롭게 풍자하는 맛도 개콘에서 사라진 지 오래. 1등에 안주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지 않는 개콘에서 가장 먼저 이탈한 시청자는 '뉴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2030 여성들이었다. 지난 9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콘을 가장 선호한다고 답한 2030여성 시청자는 1%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그 콘서트‘유·전·자(유행어를 전하는 자)’출연진이“유행어 하나를 못 만들었다”며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개그를 하고 있다.
개그 콘서트‘유·전·자(유행어를 전하는 자)’출연진이“유행어 하나를 못 만들었다”며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개그를 하고 있다. 개콘은 1일‘유·전·자’를 포함한 신규 코너를 선보였지만 시청률은 10.6%에 머물렀다. /KBS2 제공
자기 혁신 없이 영원한 1등 없다

경쟁도 사라졌다. 전성기의 개콘이 조직 경영의 성공 사례로 꼽힌 가장 큰 이유는 '자기 혁신'에 있었다. 작가와 개그맨들이 5일간 머리를 맞대고 새 코너를 짜면 최소 3단계를 거쳐야 TV로 방영될 수 있었다. 제작진 앞에서의 리허설이 1단계, 녹화장이 2단계, 편집이 3단계다. 이 과정을 다 통과하려면 자기 혁신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요즘 개콘에선 이 눈물겨운 내공이 보이지 않는다. 관객은 재미없어 하품을 하는데 6개월 이상 계속되는 비인기 코너가 수두룩하다. 회사원 이신오(33)씨는 개콘 마지막 코너인 '민상토론'을 지적했다. "'사바나의 아침' '봉숭아학당'이 장식했던 개콘 피날레는 월요일의 시작을 알리는데, '민상토론'은 말 안 통하는 회사 상사와 대화하는 기분이 드니 채널을 돌리게 된다"고 했다. 노동렬 성신여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개콘의 성공 비결은 내부의 치열한 무한 경쟁이고 그것이 창의성 넘치는 코너를 만드는 힘이었는데 요즘 개콘에서는 그런 열정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리더의 부재, 인재의 부재

개콘의 몰락에는 지휘부의 부재라는 평도 나오고 있다. 개콘 전성기를 이끈 서수민 CP처럼 개그맨들을 치열하게 경쟁시키고 휘어잡으면서도 다독이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개콘에서 유명해진 개그맨들이 리얼리티 예능으로 진출하는 등 '외도'를 일삼는 것도 문제다. 서수민 CP 때만 해도 '개콘이 언제나 1순위'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강했다. 노동렬 교수는 "케이블 TV 등 급변하는 방송 환경이 개그맨들로 하여금 개콘에만 집중하기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개콘이 주춤하는 사이 2등인 웃찾사(SBS)와 코미디빅리그(tvN)는 약진하고 있다. 한때 '웃음을 강요하는 사람들' 소리를 듣기도 했던 웃찾사는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는 평가다. '백주부' '남자끼리' 같은 코너는 시청률이 10%를 넘는다.

개콘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타 개그맨들이 경쟁사로 이직했을 때도 꿋꿋이 버티며 왕좌를 지켰다. 정석희 TV 평론가는 "개콘은 지난 16년 동안 계속 부침(浮沈)을 겪었다"며 "개콘 시스템에는 다시 대형 신인 개그맨을 낳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