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朝鮮칼럼 The Column] '한강의 기적', 검인정 교과서 史觀으로는 설명 못한다

Shawn Chase 2015. 11. 1. 00:04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 2015.10.31 03:20

1997년까지 한국 자본주의
성장과 분배 모두 잡은 '기적'… 세계가 부러워하는 발전 일궈
'박정희 시대=종속' 간주하는 민족주의 사관으론 해석 한계
식민사관 못지않게 결점 드러내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사진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 역사에 대한 '내재적 발전론'은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일본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조선은 내부적으로 '근대' 즉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없는 '정체'된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 즉 일본에 의한 타율적 견인만이 조선을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식민사관에 대항해 우리 국사학계는 조선도 자체적인 역사 발전의 동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조선 후기 사회가 내부적인, 다시 말해 자생적인 근대화의 길을 걷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강조된 개념이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한국 자본주의의 '맹아(萌芽)'다. 맹아의 실체로는 사회경제적인 차원의 '경영형 부농' 혹은 정치사상적 차원의 '실학'이 강조됐다.

'내재적 발전론'은 그것이 부농의 등장을 강조한 유물론이건 혹은 실학의 등장을 강조한 유심론이건 동일한 논리를 전개했다. 즉 조선은 자생적으로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사회로 발전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완성되기 전에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여 자생적인 역사 발전의 씨앗을 빼앗아 갔다는 논리다. 이와 같이 등장한 '민족사관'은 단숨에 학계의 지배적인 사관으로 떠올랐다.

민족사관은 1980년대 학생운동도 뒷받침했다. 일본이 짓밟았기 때문에 우리의 자생적 자본주의 맹아는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매판'적이고 '종속'적인 자본주의가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해석이 '사회구성체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국사학계는 물론 사회과학 전체를 휩쓸었다. 매판적 부르주아가 외세의 앞잡이인 국가권력과 결탁해 민중을 수탈하기 때문에 '혁명'이 필요하다는 운동권의 논리는 민족사관과 샴쌍둥이였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자본주의는 '독점을 강화'하고 '종속을 심화'시켜 결국 '민중을 수탈'하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민중을 수탈하기는커녕 '중산층을 양산'했다. 노동자 농민을 도시 빈민으로 내몰기는커녕 '마이카' 그리고 '마이홈'을 누리는 도시의 중산층으로 성장시켰다. 1970~80년대 양성된 수백만의 산업 전사 노동자들이 오늘날 억대 보수를 받는 '노동 귀족'으로 변신해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실정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인정하듯 한국 자본주의의 기적은 자본의 지속적인 축적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공평한 분배도 이뤘다는 사실에 있다. 적어도 1997년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우리는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쾌거를 이뤘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또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 포인트다. 민족주의 사관이 재단한 역사와 실제 진행되었던 역사는 바로 이 대목에서 어긋난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우선, 조선 후기에 등장한 자생적 맹아가 식민지를 거치며 짓밟혔다면 그 맹아는 언제 다시 우리 내부에 등장하여 한국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는가? 해방과 건국 그리고 전쟁의 와중인 1950년대에 자생적 맹아가 등장할 수 없었다면 경공업이 발전하던 60년대 혹은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되던 70년대에 자생적 맹아가 등장한 것인가? 이승만 시대 그리고 박정희 시대를 미국과 일본에 대한 한국의 새로운 종속이 시작된 시기로 보는 민족주의 사관으로는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이다.

다음, 식민지가 끝나고 어떻게든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자생적 맹아가 등장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과연 그 맹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라는 크나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 씨앗 상태로부터 성숙한 나무로 자라는 과정에 관한 설명도 민족주의 사관이나 운동권 논리에서는 공백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1997년 찾아온 경제 위기를 자신들의 이론적 입장을 완성시켜주는 구세주로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자본주의가 몰락해야만 스스로의 논리적 완결성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는 1997년 위기에도 살아남았고 또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한국은 1인당 3만달러에 가까운 소득을 누리고 있다.

역사 발전은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외재적이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설파한 신채호의 말은 다음과 같이 재해석되어야 한다. 내부와 외부의 갈등이 있을 때 그 갈등이 반드시 내부를 향해 혹은 외부를 향해 일방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이 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 이라고.

물론 그 상호작용의 결과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우리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행히 우리 현대사는 이 상호작용을 우리가 적절하게 활용했음을 너무도 생생히 보여준다. 반면, 외부로의 문을 닫은 북한의 내재적 발전은 심각한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내재적 발전론은 외재적 발전론인 식민사관만큼이나 일방적인 사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