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모인 영화 '기생충'의 주역들. 가운데 남색 드레스를 입은 배우 이정은의 모습이 눈에 띈다. [AP=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의 쾌거를 이뤘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뿐 아니라 한국 배우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인 송강호부터 ‘제시카 송’으로 화제가 된 박소담, 여주인공 ‘연교’ 역의 조여정까지. 여기에 국내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연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배우가 있다.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치고 이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배우가 된 이정은(50)이다. 그는 작년부터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으로 국내외 여러 시상식에 참가했는데, 극 중에선 주로 '동네 아줌마' 역할을 맡아 의상이 평범했던 것과는 달리 레드카펫 위에선 중년 여배우의 멋진 스타일을 보여줘 대중의 또 다른 사랑을 받고 있다. 배우 이정은이 지난해 5월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 55회 백상 예술대상'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뉴스1]
먼저 주목할 것은 드레스 일색의 시상식 패션에서 탈피해 바지 정장을 선택한 점이다. 지난해 5월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그는 파란색 턱시도 스타일 재킷과 통 넓은 바지 정장 차림의 '매니시 룩'을 선보였다. 이는 맞춤 정장 전문점에서 칸 영화제 참가 의상과 함께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2019 KBS 연기대상' 레드카펫 행사에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정은. 이날 그는 트위트 소재로 만든 재킷과 반바지를 입어 귀여운 매니시 룩을 보여줬다. [사진 뉴스1]
이미지 컨설턴트 강진주 소장(퍼스널이미지연구소)은 "이정은 배우는 중성적이고 강인한, 즉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카리스마 있는 바지 정장도 아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엄마 역할을 하더라도 여성스럽고 푸근하기만 한 중년이 아닌, 강인하고 개성 강한 '동백이 엄마'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골든 글로브' 레드카펫 행사에 선 이정은, 조여정, 송강호(왼쪽부터). [AP-연합뉴스]
해외 영화제에선 원피스와 드레스를 입어 우아한 분위기를 뽐냈다. 키가 작고 몸집이 통통한 체형을 커버하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인 변주를 활용한 것이 포인트다. 프랑스 칸 영화제와 미국 감독 조합상(DGA) 시상식에선 큰 칼라와 허리선을 위로 올린 하이웨이스트 보라색 원피스로 시선을 분산시키면서 발랄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미국영화배우조합(SAG) 시상식에선 꽃무늬 시스루 소재의 소매 중앙을 터서 리본으로 묶은 뒤 어깨와 팔이 살짝살짝 드러나도록 했다. 지난 2019년 1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72회 미국 작가 조합상'에 참석한 이정은(왼쪽)과 봉준호 감독. [UPI=연합뉴스]
기생충에 함께 출연한 박소담(왼쪽)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이정은. [사진 박소담 인스타그램]
2020년 1월 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진행한 제26회 SAG 어워즈 시상식. 이정은은 이때 팔이 살짝 살짝 드러나는 소매의 드레스로 우아함을 살리고 체형을 커버했다. [사진 AP=연합뉴스]
눈에 띄는 건 망토(케이프)의 활용이다.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골든 글로브에선 파란색 이브닝드레스에 조끼 스타일의 반짝이는 망토를 함께 입어 우아함을 뽐냈다. 오늘(2월 9일·현지시간)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어두운 파란색의 이브닝드레스에 발밑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를 둘렀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박명선 대표(스타일링바비)는 "체형 커버를 아주 잘한, 조심스럽고 절제미가 잘 드러난 레드카펫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망토를 활용해 우아한 분위기를 내면서 중년 배우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인 팔뚝과 허리 살을 잘 가렸다"는 것.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할 때도 이 망토가 팔살을 가려줘 날씬해 보인다. 지난 2월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가한 영화 '기생충'의 주역들. 가운데 남색 드레스를 입은 이정은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한껏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기생충의 배우들. [사진 연합뉴스]
강 소장 역시 "외국의 경우 레드카펫에선 어깨와 팔을 드러내는 과감한 드레스를 많이 입지만, 이정은 배우는 동양인 답게 망토를 이용해 적당히 노출을 피하면서 체형 커버까지 해 격식을 잘 갖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파란색 계열의 드레스를 선택해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를 꾀한 것도 칭찬할만한 점으로 꼽았다. 박 대표는 "파란색이 주는 믿음직하고 단정한 느낌이 젊은 배우들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언니'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