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선데이 칼럼] 조국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

Shawn Chase 2019. 10. 25. 23:20

[중앙선데이] 입력 2019.10.19 00:20


아무리 나쁜 일에서도 배울 건 있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일상화제까지 점령했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시간들은 ‘나쁜 꿈’ 같은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기억해둘 교훈들도 깨알같이 남겼다. 이젠 교훈을 챙김으로써 우리의 나빴던 시간들을 보상받을 차례다.
 

조국 사태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새 권력형 부정 가능성 차단한 것
이젠 민생 무시하는 정치적 야심
견제하는 민심의 무서움 알릴 때

첫째 교훈으로 꼽고 싶은 것은 우리가 새로운 ‘권력형 부정부패’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을 활용하는 패밀리비즈니스 형태의 ‘창의적’ 방법이다. 조씨 일가의 사모펀드 의혹은 ‘펀드→우회상장 투자→작전→먹튀’라는 질 나쁜 기업사냥꾼들이 흔히 써먹는 ‘악의 게임’을 연상케 한다. 개미들만 털리고 끝나는 게임. 하지만 ‘자기책임 하에 투자’라는 자본시장 원리상 털려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물론 그 가족펀드의 이익 실현 여부는 모르겠고, 작전에 권력을 활용할 의도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방법론적으로 권력자들의 후광효과만으로도 실적을 부풀릴 수 있는 ‘작전’의 가능성과 이를 통한 비자금 축적의 위험성을 깨닫게 해줬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권력형 부정부패’에 민감하다. 재임 시 무소불위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이 때문이다. 그는 사적 비즈니스와 국가 예산사업을 연계해 국고에 손을 대고, 기업인들을 모아 문어발식 모금을 했다. 이런 모금 방식은 군인출신 대통령 시절까지나 볼 수 있었던 권력형 부패의 고전적 행태였다. 문민정부 시절엔 ‘클럽비즈니스’ 형태로, 대통령의 아들·형 등 가족과 그 지인 등 끼리끼리 거래하는 관행이 생겼다. 그래서 권력자 주변의 가족과 지인 감시에 모두가 안테나를 세웠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복고풍으로 회귀하면서 온 나라가 화들짝 놀란 것이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무능으로 질타를 받았지만, 금전적 부정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붉은 양탄자가 깔린 이임식장에서 손을 흔들며 보내줬을 것이고, 그러고 싶었다. 그러다 이번 기회에 권력형 부정에는 ‘모금’과 ‘클럽비즈니스’를 넘어 ‘패밀리비즈니스’라는 제3의 길도 있음을 알게 됐고, 우리는 그 이행 과정을 차단하는 저력을 보였다.
 
둘째는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가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조 전 장관 자녀를 둘러싼 입시 스펙의혹이 그런 것이다. 우리가 놀란 건 조 전 장관의 딸이 받았다는 동양대 총장상의 위조 여부보다 자원봉사 몇 시간으로 총장상이라는 스펙을 챙긴 그 특별함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저변에선 들끓었지만 분출되지 않았던 입시 스펙의 불공정함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선데이 칼럼 10/19

선데이 칼럼 10/19

또 이런 입시방식이 우리 미래 세대를 키우는 올바른 방식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이번 사태로 명문대생 사이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소위 ‘부모찬스’에 대한 적대감과 공범의식이 뒤엉키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 사회 엘리트 예비군들이 일부라도 자신의 정체성에 떳떳치 못한 감정을 느끼거나 그들에 대한 주변의 의심이 자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 세대를 위해 더 공정하고 떳떳한 길을 열어주는 일은 어른 세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셋째는 우리사회 엘리트들의 속물적 욕망과 위선의 바닥, 진영논리의 뻔뻔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타인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것으로 스타가 된 진보지식인이 특권의 남용과 특혜의 사유화로 보일 행태를 일상으로 누려온 현실. 평소 도덕적 우월감을 앞세운 날선 비판으로 유명해진 진보 인사와 정치인들의 허접한 민낯. 그들은 공정과 정의란 정적을 향한 비판에만 써먹는 도구일 뿐 자신들의 이익 앞에선 짓밟아버려도 무방한 하찮은 것이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여기에 삭발과 고발 외엔 발전적이고 책임감 있는 어젠다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당리당략에만 눈 먼 무능한 보수까지. 이젠 보통시민들이 진영논리를 처단하고, 절제와 신독(愼獨)의 윤리를 일깨우는 의식운동으로 진화시키면 훨씬 교훈적이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한 에토스(ETHOS)의 힘을 확인했다. 옛 그리스에서는 평판이 나쁜 사람이 대중에게 옳은 말을 할 때에는 그를 끌어내리고, 평판이 좋은 사람에게 같은 내용을 말하도록 했다고 한다. 신뢰받지 못하는 자의 설득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역작용을 일으킨다는 에토스 때문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장관후보자를 검증하는 것도 에토스를 확인하는 한 과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는 에토스의 힘을 얕봤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에게 있다는 검찰개혁의 의지와 실력으로 개혁을 해도, 그건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 신뢰받지 못한 자의 개혁은 명분에서 달린다. 지난 몇 달간 혼란의 궤적은 문 대통령과 여당의 무리수였다.
 
하나 어쨌든 문제는 일단락됐다. 조 전 장관 문제는 검찰에 넘기고, 우린 일상으로 복귀할 때다. 이젠 유명 상업거리에도 빈 점포가 듬성듬성 늘어나고, 디플레이션은 아니라는데 분명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민생경제를 챙겨 우리 사회와 경제가 ‘깨진 유리창’처럼 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린 이 혼란의 끝을 잡고 계속 정국을 흔들어 정치적 야심을 챙기려는 자들을 경계하고 기억함으로써 민심의 교훈을 남겨야 한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