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5호] 2019.09.23
▲ 지난 9월 18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 참석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 이날 이곳에서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40명 남짓한 인원이 앉을 수 있는 소형 세미나실에서 열린 이 토론회에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무려 9명이나 참석했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송기헌 의원을 포함해 4선의 송영길 의원, 3선의 최재성 의원 등 중량급 인사들도 찾았다. 의원실 관계자들과 취재진에 당직자들까지 몰려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붐볐다. 조응천 의원은 축사에서 “이전부터 준비한 토론회였는데 마침 타이밍이 맞았다”면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의 연관은 애써 부인했다. 조응천 의원이 의식한 것처럼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의원들이 조 장관을 ‘지원사격’하는 모양새가 됐다. 조 장관은 앞서 이날 오전 국회를 찾아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 협의’를 했었다. 피의사실공표 방지 논의는 검찰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거론되는 사안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민갑룡 경찰청장도 참석해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민 청장은 이날 함께 참석한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바로 옆에 앉아 2시간가량 이어진 토론회를 경청했다. 두 사람은 이따금 입을 가리고 밀담을 나누기도 해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민주당 의원들이 총출동해 조 장관을 엄호하고 있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현재 조 장관이 처한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딸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관련 의혹,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문서위조 의혹 등 수많은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끝내 그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조 장관이 임명된 뒤에도 서울대·고려대 등 국내 유명 대학을 중심으로 장관 퇴임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고, 검찰은 조 장관의 배우자를 기소했다. 후보자 지명 당시부터 검찰개혁을 자신의 ‘소명’이라고 밝힌 조 장관은 지난 9월 8일 취임 직후부터 검찰개혁추진지원단 구성, 법무부·대검찰청 감찰 활성화, 검찰 직접수사 축소 검토,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추진 등 연일 검찰개혁 과제를 법무부에 지시하며 언론에도 이를 적극 알려왔다. 하지만 조 장관의 검찰 개혁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조 장관과 함께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다 박상기 전 법무장관 때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단장을 맡은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 원장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소장 시절 조 장관 자녀에게 서울대 인턴증명서 발급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 원장은 이 때문에 최근 출근 때마다 의혹을 묻는 기자들을 피해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조 장관은 수사권 조정 방안의 핵심 중 하나인 경찰 수사종결권 부여에 대한 입장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비판도 받는다. 지난 9월 4일 임무영 서울고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통해 “조 후보자는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줄 것인가 여부에 대해 현재와 과거의 말이 다르다”며 “2005년과 2019년 사이에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줘도 경찰국가화의 위험이 커지지 않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조 장관은 교수 시절인 2005년에는 검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경찰이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던 시절 발표된 수사권조정안에 대해 “2005년과 2018년의 차이가 있다. 합의문은 두 장관님의 합의문이고, 2005년은 제가 개인적으로 쓴 논문”이라며 “시대적 상황이 바뀌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당시에는 검찰개혁이라는 문제가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번 권력기관 개혁에서는 검찰개혁을 동시에 진행해서 1차적 수사종결권 문제가 필요하다고 두 장관이 합의하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이 9월 중 열겠다고 밝힌 ‘검사와의 대화’ 행사 역시 검찰 안팎에서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검찰 인사권을 틀어쥔 법무부 장관과 평검사들이 제대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반대로 조 장관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처럼 생중계되는 토론회에서 평검사가 돌발 발언을 해 장관을 오히려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부메랑 돼 돌아온 ‘적폐수사’ 우여곡절 끝에 모든 산을 넘어도 조 장관이 말하는 검찰개혁은 궁극적으로 입법부를 통해야 실현될 수 있다. 조 장관은 민정수석 시절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권력기관 개혁의 최종 형태에 대한 결정권은 국회에 있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다.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개혁’은 쉽고 빨리 할 수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다시 돌아가는 것도 그만큼 빠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조 장관이 말하는 검찰개혁의 한줄기인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는 지난해 6월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합의를 이뤄 조정안이 이미 도출된 상황이다. 수사권조정안에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관련법 개정안 역시 여럿 발의돼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관련법 개정안들이 법사위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우선 법사위 위원장을 자유한국당의 여상규 의원이 맡고 있고, 위원 18명 중 7명이 한국당, 2명이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관련 법안의 통과는커녕 조 장관 본인의 사퇴를 먼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장관이 본인과 배우자, 딸 등 일가족의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는 현 상황과는 별개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그간 대한민국 검찰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강한 권한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기소를 독점하는 데다 수사지휘권까지 갖고 있고 영장청구권까지 지니고 있어 강력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검찰의 조 장관 일가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최악의 경우 조 장관 일가 4명 중 3명이 구속돼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꼽히던 검찰이 오히려 유리한 패를 쥔 상황이 됐다. 이 같은 상황은 검찰 특수부를 ‘적폐수사’의 동력으로 활용해온 문재인 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조 장관 일가를 수사하고 있는 특수부 검사들은 사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 등 현 정권의 반대 진영에도 칼을 휘둘러온 사람들이다. 현재 검찰 특수부를 지휘하는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수사했고, 조 장관 딸의 입시부정을 수사하는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비리를 맡아 수사했다. 조국 수사팀을 일선에서 이끄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 역시 다스 횡령과 뇌물 등 혐의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바 있다. ‘적폐수사’의 칼자루를 쥐여주며 힘을 실어준 검사들이 검찰개혁의 상징과도 같은 조국 장관에게도 칼을 휘두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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