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선데이 칼럼] ‘불법’보다 더 나쁜 ‘합법적 불공정’

Shawn Chase 2019. 9. 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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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한 방에 날리는’ 공식이 있다. 자녀의 입시와 병역 의혹만 들춰보면 된다. 우리 국민정서는 차라리 부정축재는 참아줘도 자녀와 관련된 이들 사안에서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선 비타협적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이들 분야의 경쟁은 뭔가 늘 불공정하다는 의심이 강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부문에서 불법과 비리의혹이 발견되면 정권을 중도에 끌어내릴 만큼 파괴력도 대단하다. 
  

조국 후보자 딸 입시 합법이라 해도
불공정 경쟁 부추긴 제도도 큰 문제
자율학습 학생엔 ‘넘사벽’ 수시제도
관건은 ‘부모경쟁력’이란 의심받아

박근혜 정권의 탄핵도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의 대입 부정 폭로에서 시작됐다. 대선 투표일 아침까지도 차기 대통령으로 불렸던 이회창 전 의원은 아들의 병역의혹에 발목 잡혀 결국 낙마했다. 이번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시의혹이다. 악화되는 여론에 검찰도 ‘불법성’여부를 가리겠다며 수사에 뛰어들었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해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조 후보자가 한 말이다. 불법은 아닌데 대중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게 잘못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불법이 아니라고 하면 할수록 국민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억울함의 공감대는 확산된다. 합법적이라는데 너무 불공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법이 불공정하면 누구나 분노하게 돼 있다. 사람들에겐 ‘공정성’의 DNA가 있어서다.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포기하는 성향을 보여주는 여러 행동실험들이 이 DNA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런 공정성의 본능 때문에 거짓말과 삿된 행동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도 겉으로는 자신이 공정한 사람인 양 꾸미고, 보통 사람들은 작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저절로 가슴이 쿵쾅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공정성’의 본능을 위반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선데이 칼럼 8/31

선데이 칼럼 8/31

‘합법적 불공정성’. 조 후보자 딸의 입시문제는 바로 이 뇌관을 건드렸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대입 수시제도가 불공정하다고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는데, 바로 그 증거를 눈앞에 딱 펼쳐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우린 알고 있었다. 수시로 대학에 들어가려면 집안의 경제력, 부모의 정보력과 기획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말이다. 다만 기획력이란 게 너무나 비밀스러워서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기는 힘들었다. 하나 박사과정생이 논문 심부름 다하고도 올리기 힘든 제1저자에 인턴 2주 한 고등학생이 이름을 올릴 정도라면, 이건 상상을 넘어선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조 후보자 딸의 자소서를 보았다. ‘이 학생도 참 고단하게 살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수백 시간의 자원봉사, 수많은 기관의 인턴십, 경쟁에서의 수상 등등. 시간으로나 정보로나 도저히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해내기 힘든 것들로 보였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의 일이 아니었다. 의문이 든다. 왜 힘든 고등학생이 보통은 수년이 걸릴 것 같은 일들을 이렇게 단기간에 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다. 대학들이 요구하니까. 
  
‘스펙경쟁’. 대입에서 이젠 논문이나 외부 스펙은 안 본다지만, 자소서에는 쓸 수 있으니 많이 챙길수록 좋다는 조언이 넘친다. 한 고3 선생님은 당당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니, 스펙은 엄마가 알아서 해야 한다.” 실제로 자율학습 능력을 보겠다는 수시는 부모 도움 없이 진짜 자율학습하는 학생들에겐 시쳇말로 ‘넘사벽’이다. 수시 당락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한 서울대 교수는 동료교수들과 하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요즘 우리 대학에 좋은 애들은 들어오는데, 운이 좋은 애들이 들어온다.”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너무 떨어졌다며 한탄하던 중 나온 말이었다. 입시 전부터 대단한 성취를 한 아이들을 뽑아놓았는데 학력수준은 떨어진다면, 진작 의심해 봤어야 한다. 이 제도 자체가 아이의 경쟁력만을 가리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인간에겐 출세욕과 신분상승 욕망이 있다. 학교는 출세로 가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그렇기에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욕망의 크기만큼 치열하다. 이런 욕망을 욕해선 안 된다. 그렇게 치열한 과정을 거친 젊은 인재들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만 아이들이 뛰는 경기장에 부모들이 난입해 함께 뛰어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제도로서도 나쁘고, 젊은 인재 양성이라는 취지에도 역행한다. 
  
2015년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했던 조사가 있다. 대학생들에게 ‘법원판결이 내 입장과 달라도 수용하겠느냐’고 질문하자 ‘보통’이라는 유보적 답변이 41%였고, 그렇다(29.7%)와 아니다(29.2%)가 반반이었다. 반면 다수결로 결정된 사항은 수용하겠다는 입장은 68.8%, 아니다는 답변은 6.1%였다. 차라리 대중의 결정은 신뢰해도 법원 판결은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 법에 대한 신뢰는 이렇게 낮다. 법의 불공정성에 대한 의심은 이미 만연하다. 그러니 아무리 불법이 아니라고 한들 날선 눈초리가 거두어질 수 있을까. 이 와중에 ‘합법적 불공정성’을 최대한 활용한 법무부 장관 후보라…. 우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