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오직 ‘조국’ 한 단어다. 공직후보자 한 사람을 두고 1만개 넘는 기사와 실시간 포스팅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휴전 제안까지 나왔다. 존재하는 모든 전선이 힘 대 힘으로 충돌한다. 사퇴냐 버티기냐 차원을 넘어선 것 같다. 조 후보자가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물러나더라도 사회 전체가 감당할 비용이 적지 않다는 걱정이 앞선다. ‘조국이 당긴 방아쇠’가 무엇을, 어디를 정조준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심리적 참전을 택하기로 했다.
‘조국 현상’은 과거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의혹의 결이 노골적 부패와 명백한 불법성을 띠고 있진 않다. 진보세력 상층부의 기득권이 유지되고 대물림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것이 본질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세대 ‘리더들’의 ‘권력 점유’는 새삼스러운 진단이 아니다. 다만 이들의 삶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조국 현상’을 통해 민주화세대 리더들의 생활 기득권 실체를 보게 됐다. 이들의 ‘권력 점유’가 작동하는 방식도 포착됐다. “국가(정치)와 시장(경제)을 가로지르며 세대 권력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연결망’을 통해 사회 지배를 공고화했다.”(이철승 서강대 교수,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심화’) 촘촘한 네트워크 위계로 정치·생활 기득권을 재생산했고, 그 결과 격차 사회를 낳았다는 진단이다. 조 후보자 딸의 논문·입시 관련 의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진보 상층부, 그것도 개혁을 상징했던 인사가 가용 자원을 동원해 자식을 기득권 체제에 밀어넣은 것. 그로 인해 ‘내 자식’은 기울어진 운동장도 아닌 아예 다른 운동장에 서 있는 현실을 확인한 시민들이 울분을 거둘 수 있겠는가. 보수세력은 ‘내로남불’로, 상층부에서 밀려난 동세대들은 ‘체념형 지지’로 대응하고 있다. “불법은 아니다”라는 해명은 역린을 건드렸다.
‘조국 대전’은 진영·당파적 대결 구도를 벗어났다. 더불어민주당 당원 게시판은 조 후보자 거취를 놓고 밀리면 진다는 ‘진지수호론’과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민심경계론’으로 갈리고 있다. KBS 일요진단·한국리서치가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조 후보자 직무적합도는 전주 대비 24%포인트 하락한 18%로 나타났다. 지난 2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분야 중 공직자 인사는 긍정평가 24%, 부정평가 53%였다. 2주 전 대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20대, 주부, 중도층에서 각각 9%, 10%, 16% 정도가 부정 방향으로 돌아섰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믿을 수 없다는 징후다. ‘조국 대전’을 오로지 자유한국당의 정치공세, 언론의 무차별 의혹제기 탓으로 돌리는 여권 일각의 반응에 역풍이 부는 배경이다. “그때 조국만 그랬냐”는 말을 들으면 ‘누가 돌을 던지고 있는가’ 이외엔 눈을 가리는 경주마를 보는 것 같다. 묻고 싶다. 지금 보수정당과 언론만 탓할 수 있는 상황인가. 시민들의 공분 저변에 왜 합리적 근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까. “가진 사람들과 못 가진 사람들의 괴리, 젊은층의 분노를 심각하게 읽지 못하면 조 후보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 없는 세력들이 득세하게 된다”(신진욱 중앙대 교수)고 걱정했다. ‘돌 던질 자격 없는’ 세력은 자유한국당이다. 신 교수는 “2017년 이후 한국당은 ‘내로남불’과 ‘청년우파’ 담론을 유포하고 있다. 개인 문제를 진보세력 전체 문제로 확산해 냉소와 허무주의로 청년층의 환멸을 키우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진짜’ 기득권 세력들이 ‘조국’이라는 폭발력 있는 인사를 동원해, 탄핵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오래된 기획. 또 하나의 ‘조국 현상’이다. 이 와중에 민주당 수석 대변인이 “황교안, 나경원 자녀는 문제없냐”고 했다. ‘조국 대전’을 한국당과의 대결로 본 물타기 전략이다. 차라리 “한국당은 논란에 낄 자격 없다. 빠져라”라고 할 일이지.
조 후보자는 이날 “아이 문제에 불철저했다”고 고개 숙였다. 그렇지만 스스로 개혁 적임자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화에서 “문 대통령과 조 후보자가 분리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핵심과제는 반드시 조국을 통해 이루겠다는 일체감이다. 법무부 장관은 시민들의 정치적 이상과 정권의 체제 당위성을 제도화하는 책임자다. 법이라는 강고한 기득권을 쥔. 최근 조 후보자가 내놓은 안전정책은 불평등이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됐던 불행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조국 현상’은 일체감보다 더 중요한 질문에 답하라고 여권에 요구하고 있다. 촛불 이후 유보됐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이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조국이 당긴 방아쇠’는 지금 청와대와 여당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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