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조국이 망가뜨린 PK 진보집권 플랜

Shawn Chase 2019. 8. 25. 13:48
곽승한 기자

입력 2019.08.25 06:23
[주간조선]

지난 8월 21일 오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며 불거진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눈을 감고 있다. photo 연합
부산 중구 보수동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모교 혜광고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 떨어진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한 경남고등학교가 있다. 두 학교 간의 거리는 도보로 20분 정도 걸린다. 출신고교 사이의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문 대통령과 조 후보자는 현 정권 내 ‘정치적 동반자’로 여겨진다. 두 인물의 배경과 행적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잘생기고 반듯한’ 이미지, 법조인, 각각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부산이라는 출신지까지 문 대통령과 조 후보자는 정치적 ‘평행선’을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둘 사이의 꼭 닮은 정치적 행보는 나아가 조 후보자의 차기 대권론으로 이어진다.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현재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권 인사는 이낙연 국무총리지만, 여권 핵심부가 내심 밀고 있는 대권 후보가 조 후보자라는 건 공공연히 알려진 이야기다. 이 배경에는 역시 조 후보자가 완전한 ‘문재인의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PK(부산·경남)라는 출신 성분이 있다. 여권 핵심부 내에 “유권자 숫자에서 소수인 호남이 아니라 다수인 영남 출신 대통령 후보를 내야 이길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문재인-조국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민주당 세력의 ‘PK집권 플랜’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에는 꽤 큰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활동 이력, 정체불명의 사모펀드 투자, 가족 간 ‘사기 소송’ 의혹, 부동산 위장매매 등의 논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조 후보자 일가 재산을 두고 제기된 의혹에 ‘당최 복잡해서 뭐가 뭔지’ 갸우뚱했던 여론은 조 후보자 딸의 부산대 의전원 재학 중 수상한 장학금 수령, 외고 재학 시절 병리학 논문 제1저자 기재 논란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정유라보다 심각한 입시 비리’ ‘조로남불’ ‘강남양파(벗길수록 의혹이 나온다는 의미)’라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조 후보자 딸이 다녔던 고려대와 조 후보자가 교수로 있던 서울대 학생들은 촛불집회까지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다. 입시라는 우리 사회의 ‘역린’을 건드린 탓에 민주당 내에서까지 “이러다 둑이 무너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부산 영도구 주민들 “큰 박탈감”

조 후보자를 둘러싼 끊이지 않는 의혹과 논란에 가장 술렁이는 건 PK 지역 민심이다. 조 후보자 일가의 재산 의혹이 나온 해운대의 아파트와 빌라부터 딸의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 논란까지 조 후보자를 둘러싼 사실상 모든 논란의 현장이 부산인 탓이다.

혜광고 인근 보수동 주민들은 조 후보자에 대해 “잘하기를 바랐는데…”라며 아쉬움부터 내비쳤다. 보수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송모씨는 “문재인에 이어 조국이 대통령 되기를 바랐다”면서 “하지만 지금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대통령은커녕 공직에 있을 깜냥조차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송씨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다고 했다. 보수동 주민 최모(71)씨는 “이래 가지고 다음 대통령을 (민주당이) 또 할 수 있겠나”라며 “지난 대선에서 부산이 문재인을 밀어줘서 대통령 된 건데, 요즘 분위기로는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조 후보자의 총선 출마 지역구로 거론되기도 했던 부산 영도구의 주민들 역시 “틀려먹었다”며 입을 모았다. 영도구 청학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정모(60)씨는 “이 정부 들어 경제가 더 힘들어진 건 둘째치더라도, 조 후보자 관련 뉴스를 보며 서민으로서 너무 큰 박탈감을 느꼈다”면서 “주변에 문 대통령 찍었던 사람들은 자기 손목을 자르고 싶다고까지 말한다”고 전했다.

영도구 남항동은 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살고 있는 곳이다. 지난 8월 16일 문 대통령이 연차를 내고 이곳에 있는 모친 집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남항동 주민들 역시 만나는 이들마다 “조국 찍어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모친이 거주하는 아파트 인근 한 슈퍼마켓 주인은 “총선이고 대선이고 이 동네 사람들 중에 민주당 찍겠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원래부터 영도구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세가 강한 지역인데 지금 하는 걸 보면서 누가 뽑아주겠나”라고 했다.


경남 양산시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건물. 이 학교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이 재학 중이다. photo 연합
뒤숭숭한 부산대 의전원

지난 8월 20일 찾아간 경남 양산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은 연일 나오고 있는 조 후보자 딸의 ‘특혜’ 논란 탓에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조 후보자 딸에게 1200만원의 ‘면학’ 장학금을 줬던 이 학교의 A 교수가 올해 6월 부산의료원장으로 영전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한층 증폭됐다.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가 오가는 상황을 학생들도 의식하고 있는 눈치였다. 부산대 의전원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이런 일 때문에 다니고 있는 학교가 마치 ‘비리의 현장’처럼 비치고 있어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말을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학생은 “의전원에 ‘백’ 써서 들어오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는 건 떠도는 이야기로 들었지만, 그게 조 후보자의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여권 입장에서 현재 조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특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문제는 이 같은 ‘20대의 집단적 실망’이다. 조 후보자는 “딸의 부정입학 의혹은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절차상의 ‘불법’은 없었다고 단언했지만, 현재 20대가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단지 ‘적법성’ 때문에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대학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난날 기득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정의를 외치던 분이 이제 와 자신을 변호할 때는 단순히 표면상의 절차와 법 위반 여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조 후보자의 “가짜뉴스” 해명은 20대가 실망하고 있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채 오히려 분노만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시발점이 된 사건도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학사 특혜 의혹들이었다. 2016년 10월 초부터 정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에 갖가지 편법과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정씨의 부정입학과 특혜를 비판하며 당시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씨의 부정입학과 관련한 의혹들이 나올 당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내가 최순실이 아니라 자식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이 씁쓸한 공감을 샀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는 단순한 교육과정에 그치지 않고 ‘부모의 능력’이라는 사실상의 계급 구조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일찍부터 박탈감과 좌절을 맛보는 관문인 탓이다. 정유라씨가 소셜미디어에 남긴 “능력 없으면 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글을 두고 조 후보자는 “이것이 바로 현 집권세력의 국정철학”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정유라씨는 이화여대 입학취소 처분은 물론 고교 졸업까지 취소되며 ‘중졸’의 최종학력으로 남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정씨의 부정입학 비리에 관여한 최 전 총장, 김경숙 전 체육대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 류철균 교수, 이인성 교수 등 5명은 구속까지 되는 지경에 이렀다.

그런데 조 후보자 딸 역시 최악의 경우 고려대-부산대 의전원 입학취소 처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고려대는 지난 8월 21일 입장문을 내고 “당사자가 본교의 학사운영규정에 있는 입학취소사유 대상자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 절차를 거쳐 입학취소 처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부산대 의전원 교수들을 비롯해 병리학 전문가들도 “고등학생이 2주 만에 쓸 수 있는 논문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어 조 후보자 딸에 대한 ‘특혜’ 검증은 더 불붙을 전망이다.


‘조국 부적합’ 20대가 가장 높아

이러한 민심의 실망은 여론조사상의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 8월 21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의 ‘조국 전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적합 여부’ 조사에 따르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적합’ 비율은 41.6%, ‘부적합’ 비율은 53.5%로 부적합하다는 여론이 10% 넘게 조사됐다. 또 19세 이상 20대의 ‘적합’ 비율은 33.1%인 반면 ‘부적합’은 52.0%로 모든 연령대 중 20대의 ‘부적합’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 후보자와 민주당은 “하루빨리 청문회가 열리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이지만 한국당과 야 3당은 당장 청문회를 열 의지가 없어 보인다. “자진사퇴하라”는 입장을 계속 내놓고 있을 뿐이다. 청문회가 끝나면 청와대는 야당과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것이므로, 청문회 개최가 결국에는 ‘길을 열어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이 논란을 지켜보는 여론의 화살은 조 후보자와 청와대뿐만 아니라 ‘절대 비호(庇護)’에 나서고 있는 민주당과 열성 지지자들에게까지 향하고 있다. “사법개혁의 적임자인 조국이 무서워서 저러는 것” “적폐와 토착왜구들이 반발하는 걸 보니 장관직에 제격”이라는 식으로 정당한 의혹 제기까지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한국당이 내심 조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되는 걸 바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시점에서 조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보다 장관으로 공직에 남을 경우 현 정권을 공격할 시간과 여지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쏟아지고 있는 조 후보자 관련 의혹에 대한 검증을 더 철저하게 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된다. 

한국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지금은 그런 당리당략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면서도 “조 후보자 임명을 정말 강행할 경우 현 정권은 예상보다 빠른 레임덕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남권의 중진 의원은 “현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 사태”라며 “모든 의혹을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며 끝까지 밀어붙이면 야당보다 국민들이 먼저 들고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조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는 것보다 임명될 경우 오히려 현 정권에는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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