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만물상] 한국인·일본인

Shawn Chase 2019. 6. 29. 23:54
조선일보            



입력 2019.06.29 03:16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때 본 장면이다. 70대 노부부의 집이 무너져 아내가 깔렸다. 구조작업 끝에 아내를 꺼냈지만 숨을 거둔 뒤였다. 그런데 남편이 통곡하는 대신 구조대원들에게 90도로 절하며 계속해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쳤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자기감정을 통제하고 있었다. 당시 지진으로 6000여명이 사망했지만 어디서도 오열이라곤 없었다. 로봇을 보는 듯 오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본인이라고 슬픔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참는다. 남에게 폐 끼치는 '메이와쿠(迷惑)'를 거의 '죄악'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격정적이라면 일본인은 냉정하다. 한국인이라면 땅을 치며 통곡할 상황에서도 일본인은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런 태도가 세계가 찬탄하는 일본식 질서 의식을 낳았지만 때로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도쿄 특파원 시절 일본 사람들이 다른 별의 외계인 같다고 생각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물상] 한국인·일본인


▶우리는 일본인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학계에선 두 민족을 형제군(群)으로 분류할 만큼 유전적 형질이 가깝다. 그러나 기질은 대조적이다. 한국인은 친해지면 간까지 빼주지만, 일본인은 끝까지 거리를 둔다는 식의 에피소드가 수없이 많다. 한 일본 출판사는 두 나라 국민성을 60여 가지 항목으로 비교한 책을 냈는데, 첫째는 '좋아하는 꽃부터 다르다'였다. 일본인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방 산화하는 벚꽃을 좋아하고, 한국인은 끈질긴 생명력의 무궁화를 국화로 삼았다는 것이다.

▶재일 한국인 2세인 백진훈 일본 참의원이 본지 기고에서 한·일 갈등의 이유를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도 자신과 같다고 믿고 자신의 잣대로 재기 때문에 오해가 커진다는 것이다. 백 의원은 "한국은 하고 싶은 말의 120%를 말하고 일본은 70% 정도만 말한다"고 했다. '내심을 감추는' 일본과 '솔직하게 밝히는' 한국의 문화 차이다.

▶한국에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은 엄청난 욕이다. 반면 일본에선 훌륭한 처세술이다 .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마음)'를 별도로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사 사과도, 배상도 한 번 하면 끝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한국인은 일본의 '속'마음이 진정으로 사과한 것이냐고 묻고 또 묻는다. 생각도 가치관도 다른 데 같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끝없는 갈등의 평행선을 만들고 있다. 백 의원 말대로 서로의 "차이를 즐길" 때가 된 것 아닐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8/20190628032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