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홍콩인 분노 키운 건, 시진핑 비판 책 낸 5人 실종사건

Shawn Chase 2019. 6. 18. 00:01



입력 2019.06.17 03:00

[홍콩 피플 파워] 위협받는 홍콩의 민주주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분노와 시위 규모는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이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10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온 것은 시진핑 집권 이후 홍콩의 정치·언론·사법 등 민주적 시스템이 하나둘씩 허물어져 온 것에 대한 분노가 이번 범죄인 인도법 개정 추진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홍콩 반환 결정 당시 덩샤오핑은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는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시진핑 집권 이후 급속하게 와해되고 있다.

우선 시진핑 정권은 후진타오 주석 시절 중국이 홍콩에 약속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뒤집었다. 홍콩의 지도자인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은 홍콩 반환 이후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선출돼왔다.

후진타오 정권 때인 2007년 중국은 "2017년 선거부터 직선제를 허용하겠다"고 했다. 홍콩 시민들은 직선제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시 주석 집권 이후인 2014년 중국은 직선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조건을 달았다. 친중국 인사 1200명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애국적인 인사' 2~3명으로만 후보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름만 직선제일 뿐 사실상 중국 입맛대로 뽑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은 그해 9월부터 79일간 도심을 점거한 채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끝내 직선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중국이 제시한 '허울뿐인 직선제'안도 실행되지 않았다.

밤늦도록 거리 메운 홍콩 시위대 - 홍콩 시민들이 16일 홍콩 중심가 도로를 메운 채 중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범죄인인도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나온 집회 참석자들은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할 당시 홍콩인들의 저항의 상징이 된 우산을 펼쳐 들기도 했다. 아래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여자 문제 등을 다룬 책들을 출판·판매하다 2015년 잇달아 실종된 출판·서적업자 5명의 모습. 왼쪽부터 코즈웨이베이 서점 리보 대표, 마이티커런트 출판사 뤼보 총경리, 코즈웨이베이 서점 람윙키 점장, 마이티커런트 출판사 청지핑 매니저, 마이티커런트 출판사 구이민하이 대표.
밤늦도록 거리 메운 홍콩 시위대 - 홍콩 시민들이 16일 홍콩 중심가 도로를 메운 채 중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범죄인인도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나온 집회 참석자들은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할 당시 홍콩인들의 저항의 상징이 된 우산을 펼쳐 들기도 했다. 아래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여자 문제 등을 다룬 책들을 출판·판매하다 2015년 잇달아 실종된 출판·서적업자 5명의 모습. 왼쪽부터 코즈웨이베이 서점 리보 대표, 마이티커런트 출판사 뤼보 총경리, 코즈웨이베이 서점 람윙키 점장, 마이티커런트 출판사 청지핑 매니저, 마이티커런트 출판사 구이민하이 대표. /로이터 연합뉴스·명보

결국 2017년 행정원장 선거도 기존 방식대로 선거인단이 뽑는 간접선거로 치러졌다. 이는 계속 중국 입맛에 맞는 행정원장을 뽑을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선거인단 1200명이 중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재계와 금융계 인사 등 이른바 직능대표, 중국 공산당의 검증을 거친 전인대 및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홍콩 대표 등 친중파가 전체의 67%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달리던 후보 대신 2014년 우산혁명 강경 진압의 주역인 캐리 람 현 장관을 당선시켰다.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회도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다. 총 70석인 홍콩 입법회는 유권자들이 뽑는 지역구 의원은 35명뿐이다. 나머지 35명 중 30명이 친중 성향이 강한 각종 직능단체 회원이다. 그나마 시진핑 정권 들어 반중 감정이 고조되면서 지역구에서 민주파 당선자들이 늘었다. 하지만 친중파가 장악한 입법회는 '헌법적 가치를 해치는 행위를 했다'는 등의 명분으로 일부 민주파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전례 없는 일을 벌였다.

홍콩 시민들이 특히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두려워하는 건 이 법이 없을 때도 중국 공권력이 홍콩 시민을 납치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중국 공산당 내 권력 암투나 지도층 비리를 다룬 금서들을 출판·판매해오던 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주주와 직원 5명이 2015년 10~12월 잇따라 실종된 사건이다.

사건은 이들이 '시진핑의 여인들(The Lovers of Xi Jinping)' 혹은 '시진핑과 여섯 여인들(Xi Jinping and His Six Women)'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실종됐던 5명 중 한 명인 람윙키(64)가 2017년 "중국 선전에 갔다가 납치돼 감금·조사를 받으며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하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

특히 실종자 중 한 명은 홍콩에서 납치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법적인 중국 공권력으로부터 홍콩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명은 아직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고 나머지 3명은 납치된 뒤 풀려났지만 중국에 끌려가서 무슨 혹독한 일을 당했는지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정부가 중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는 법안을 개정하려 나서자 홍콩 시민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국 당국이 처벌하기를 원하는 홍콩인들을 납치할 필요도 없어 가만히 앉아서 합법적으로 넘겨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7/20190617000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