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김대중 칼럼] "집권 4년 차 된 것 같다"

Shawn Chase 2019. 6. 4. 10:07
입력 2019.06.04 03:17
초조함과 조급증 보이는 정부… 대내외적 이완 현상에 '망치 대신 몽둥이'로 대처
가는 길에 자신감 있으면 웬만한 시비와 반대에는 관대한 게 지도자의 길

김대중 고문
집권 초기 나름의 좌파적 이념에 충실한 듯했던 문재인 정부가 그들 스스로 진단한 대로 '집권 4년 차'의 정권 말기적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무원의 이완 현상을 개탄했지만 정권 자체가 대내외 전반적으로 초조함과 조급증을 드러내고 있다. 총선거가 10개월 남짓 남아서인가. 문 정권은 누가 뭐라고 하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식이다.

가장 단적인 것이 노조의 불법과 폭력을 방치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합병은 정부가 추진한 것이다. 이것을 민노총이 막아서자 문 정부는 마치 남의 일인 양 발을 빼고 있다. 민노총과 등을 졌다가는 노조의 표를 잃고 정권을 내주게 될 것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이제 노조는 이 정권의 주인인 양 행세하게 됐다.

또 다른 징후는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장 양정철과 국정원장 서훈의 몰래 만남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삼척동자도 그 만남이 무엇 때문인지 안다. 그런 시각을 무릅쓰고도 면대해야 했던 시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북한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논의했을 것으로 정치를 좀 아는 사람들은 짐작한다. ―'답방이 총선에서 얼마나 폭발력이 있을까? 그의 답방이 가능한가? 답방을 이끌어낼 방도는 있는 것인가?' MBC 기자를 중간에 끼워 넣었다는 것 자체가 그 만남의 부적절성을 말해준다.

또 있다. 한국당이 주최한 '강원도 산불 피해 후속 조치 대책회의'에 정부 측 관계자를 전원 불참시킨 것은 역대에 없는 처사다. 정부의 여섯 부처 차관급이 회의 5분 전에 불참을 통보한 것은 정부·여당 최고위층의 지시가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야당을 깔아뭉개겠다는 집권 세력의 안면몰수형 폭거다.

야당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 공세로 나가겠다는 정부·여당의 의도는 '강효상 기밀 누설 고발'로 두드러진다. 강 의원의 행위가 기밀 누설이냐 아니냐는 별개로 치고 대통령까지 나설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야당을 '독재자의 후예'라고 지칭하는 등 살수(殺手)로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이제 대통령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야당 척결에 나서겠다는 의사표시다.

최근의 청와대 인사를 보면 안면몰수의 전형이다. 엊그제까지 판사 했던 사람을 청와대로 끌어가고, 이 자리 저 자리 바꿔가며 돌려막기 하는 것을 보면 이제 '다른 쪽 사람은 못 믿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이 정부와 함께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현상을 역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부다페스트 여객선 침몰 사건에 외교부 장관을 파견한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외교장관은 피해자 구조나 사고 수습 역할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세월호' 덕을 본 정권이라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나라 밖을 보면 대한민국은 지금 '왕따' 수준으로 가고 있다. 우리 머리 위로 미국·일본·중국·북한·러시아의 수뇌들이 뻔질나게 오가면서 제각각 짝짓기에 골몰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문 정권은 멀거니 손 놓고 구경하는 신세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아무런 전망이 없다. 강대국들은 머지않아 우리에게 어느 줄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북한은 손사래 치는데 우리는 못 줘서 난리다.

그래도 의문이 있다. 문 대통령이라고 우리 역사에 마이너스로 남고 싶겠는가? 자신의 치하(治下)에서 자국의 경제가 남미의 어느 나라처럼 몰락하거나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거나 나라의 안보가 허물어지는 사태가 오는 것을 방치하는 대통령은 세계에 없을 것이다. 이 정권의 성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문 정권의 좌파 일로 매진은 "노무현을 따라 하면 정권이 망하더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들은 노 전 대통령의 퇴로가 순탄치 않았던 것은 그가 좌파 일변도에서 벗어나 때로 우파적 방향과 타협했기 때문으로 본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생전에 문 대통령에게 "당신은 정치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문재인에게서 타협과 조정 없는 좌파 외골수를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보기에 문 대통령은 지금 여기서 밀리거나 타협하는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뛰쳐나오는 대내외적 이완 현상에 '망치 대신 몽둥이'로 대처하는 그의 대응은 한편으로는 불안감과 초조함의 징후다.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하면 웬만한 시비와 반대에는 관대한 것이 지도자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