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땅속 나라 모험>(1886) 6쪽에 수록된 루이스 캐럴이 직접 그린 앨리스 삽화
“그리하여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가 나왔다네.
서서히, 하나둘씩.
신기한 사건들을 고심고심 만들어
이제 이야기는 끝나고,
우리는 즐거운 선원들은 뱃머리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네,
저무는 햇살 아래.”
루이스 캐럴이 집필한 <땅속 나라의 앨리스>(1864) 필사본. 영국 도서관 소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학 선생님 루이스 캐럴이 소녀 ‘앨리스 리델’에게 들려주던 땅속 나라의 이상한 이야기다. 루이스 캐럴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1832~1898)’. ‘도, 도…, 도지슨’이라고 자기를 소개할 수밖에 없는 언어장애가 있었다. 말더듬이의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성격은 당연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그는 유능한 이야기꾼이었다. 황금빛 오후에 뱃놀이를 하던 앨리스가 선생님에게 떼를 쓰며 졸랐다.
“아 참, 도지슨 선생님! 저를 위해서 앨리스 이야기를 써주시면 기쁠 것 같아요.”
루이스 캐럴은 어린이들을 사랑했다. 아동문학 작가에게 당연한 일 아니겠냐고? 천만에. 도지슨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은 살아생전 어린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로만 치부하기에는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정신분석학자, 언어학자들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가득 찬 텍스트다. <유클리드와 현대의 경쟁자들>, <상징논리> 등의 논리학 저서는 그가 걸출한 수학자였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텍스트의 저자 루이스 캐럴이 아닌 현실 세계의 인물 ‘찰스 도지슨’에게 초점을 맞추어 본다. 찰스 도지슨은 이상한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성직자였다. 도지슨의 고백이다.
“어린 여자 친구들로 해변에서의 외로운 삶을 활기 있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친구들은 열 살에서 스물네 살까지 다양했지요. 친구가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습니다. 주변에 이런 식으로 어린 숙녀 손님들이 많은 다른 나이 많은 성직자를 본 적 있나? 나는 할 수 없이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고백해야만 했지요. 저는 왜 그래서는 안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에 나이 많은 남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많은 즐거운 일들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같거든요.” (휴 호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 펭귄클래식. 38쪽)
루이스 캐럴이 찍은 찍은 베아트리스 해치 사진(1866)에 앤 리디아 본이 채색했다. 1873년 루이스 캐럴 소개집에 수록.
도지슨의 이상한 행적은 1863년의 일기에 흔적이 남아있다. 108명의 여자 아이 이름들. 그것은 사진을 찍었거나 찍어야 할 목록이었다. 알파벳 순서로 정리된 이름들에는 ‘앨리스’와 ‘베아트리스’가 다섯 번, ‘콘스턴스’가 여섯 번 적혀 있었다. 일기는 매해 도지슨이 찍은 여자 아이들의 이름들로 채워져 갔다.
“세 명의 소녀들은 대부분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1856년 일기에 적힌 세 명의 소녀는 앨리스 리델과 자매들이다. 리델가(家)의 수학 지도교사가 된 도지슨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크로케, 카드놀이, 퀴즈 문제를 풀며 소녀들과 놀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당시 ‘검은 마법’이라 불리던 사진술에 빠져든 도지슨이 선택한 피사체는 소녀들이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본 루이스 캐럴의 전기 작가인 마이클 베이크웰은 “사진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앨리스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어린 소녀를 사랑하다니? 찰스 도지슨이 찍은 앨리스와 소녀들의 사진은 평범하지 않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진가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대한 느낌은 관람객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녀들의 복장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어른의 옷이나, 거지 등의 연극 의상들, 혹은 속옷만 입은 소녀들의 사진들이 발견됐다. 그리고 그의 사진 앨범에는 어린 소녀의 누드 사진들도 꽂혀 있었다.
스튜어트 도지슨(루이스 캐럴의 조카)이 출판한 <루이스 캐럴의 삶과 편지>(1898)에 수록된 거지 복장을 한 앨리스 리델. 1858년 루이스 캐럴이 찍은 사진.
“그 이미지는 이 문인이 부도덕하고 성 도착적인 인물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어린 앨리스의 당돌하고 도발적인 시선, 그 자세와 헐렁한 옷차림은 사진가의 성욕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다니엘 지라르뎅, 크리스티앙 피르케르.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미메시스.)
1859년 도지슨이 찍은 ‘거지 복장의 앨리스’의 눈빛은 분명 예사롭지 않다. 어린 소녀의 수줍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관람객의 편향적인 취향이 아닐까? 사진 찍는 자가 아닌 사진 찍힌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은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앨리스 리델은 옥스퍼드대학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학장의 딸이다. 당시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는 웨일스 왕자가 학부생으로 공부했을 정도로 옥스퍼드대에서 가장 뛰어난 칼리지였다. 앨리스의 집 또한 빅토리아 여왕이 방문할 정도의 명문가였다. 유복한 상류층 집안에서 성장한 소녀 앨리스 리델은 얄미울 만큼 도도한 성격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7살 소녀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한없이 깊고 어두운 토끼굴 속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앨리스는 침착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한다.
“그래, 한 그만큼 내려왔을 거야. 그런데 내가 있는 곳의 위도와 경도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앨리스는 위도와 경도가 무엇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말하기에는 그럴싸하고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앨리스 리델의 눈빛을 ‘도발’ 대신 ‘도도함’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본다.
소녀들의 누드 사진 촬영은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진행되지 않았다. 부모들은 찰스 도지슨의 촬영에 동의했다. 소심하지만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도지슨은 도덕적인 면에서도 결벽증에 가까운 까다로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의 사진과 관련된 지인들은 도지슨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훗날 할머니가 된 앨리스 리델은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꾼 아저씨로 도지슨을 회상했다. 100페이지에 가까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서문 ‘의미와 난센스 사이를 모험하는 소녀, 앨리스’를 쓴 휴 호턴은 사진가 ‘찰스 도지슨’과 아이들의 이야기꾼 ‘루이스 캐럴’을 구분했다.
“도지슨의 어린 여자 아이들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이해한다 해도, 그 열망은 그의 삶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는 다양한 얼굴의 비정상성을 의미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판에 삽입된 존 테니얼의 삽화. 홍학을 들고 크로케 놀이를 하고 있는 앨리스.
어린 소녀들에게 ‘검은 마법’(사진술)을 사용한 최초의 사진가가 찰스 도지슨이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사진들이 후대의 사진가들에게 이상한 마법의 주문을 건 것은 분명하다. ‘모드 휴스’(1984)를 찍은 영국의 그레이엄 오벤든, ‘욕조 속의 소냐’(1985)를 찍은 스위스 작가 아넬리스 스트르바, 자연주의를 표방했던 미국 사진가 조크 스터지스, 열네 살의 브룩 쉴즈를 사진 찍은 개리 그로스, 그들은 모두 어린 숙녀들의 누드를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시대가 달랐다. 도지슨이 살았던 19세기와 다른 사회를 살고 있던 사진가들은 아동보호법이라는 검열에 걸려들었다. 아동 포르노그래피라는 의혹이다. 도지슨의 후예들은 법과 여론의 심판을 받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를 그렸던 그레이엄 오벤든은 1984년 <사진의 거장, 루이스 캐럴>이라는 책과 <(앨리스) 리델가의 앨범>을 출간했다. 찰스 도지슨의 사진들은 물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소설 <로리타>에서도 영감을 받았던 오벤든은 ‘모드 휴스’라는 소녀의 누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1993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된 <여신의 자태>에 수록됐는데, 영국과 미국에서 논란이 됐다. 영국의 외설 출판물 조사단은 오벤든의 사진들을 압류했다. 미국에서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사진 모델이었던 모드의 변론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의 평판은 추락했다. 오벤든은 자신의 사진을 설명했다. “모드의 신체와 정신의 양면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에덴 시대처럼 단순하게 인간의 감흥과 마음의 감정을 접한다.”
스무 살이 된 청춘스타 브룩 쉴즈가 1981년 사진가 개리 그로스에게 소송을 걸었다. 욕조에서 찍었던 어렸을 적의 누드 사진 음화 원판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다. 오일을 몸에 바른 브룩 쉴즈가 뿌연 연기 사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다. 소녀의 사진은 ‘플레이보이’ 자매지 ‘슈가 앤드 스파이시’에 실렸다. 브룩 쉴즈는 자신의 누드 사진 원판을 찾지 못했다. 사진작가는 브룩 쉴즈의 부모와 작성한 계약서를 판사에게 내밀었다. 브룩 쉴즈의 초상 사진에 대한 모든 권한을 사진가 개리 그로스에게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법원은 사진가의 손을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가를 변호하는 판결문을 작성했다. 욕조에서 순진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숙한 어린이의 사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정 투쟁의 승리와는 별개로 사진가는 모든 것을 잃었다. 개리 그로스는 막대한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고 사진가로서의 명성도 잃어버렸다.
‘욕조 속의 소냐’의 주인공은 사진작가의 딸이다. 아넬리스트 스트르바는 열세 살의 딸이 목욕하는 모습을 사진 찍었다. 2002년 런던의 만 갤러리에 걸린 ‘욕조 속의 소냐’를 본 한 여성이 경찰에 고발했다. 열두 살짜리 아들이 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체 활동을 개성적인 생활방식으로 선택한 가족들의 사진을 찍은 조크 스터지스도 샌프란시스코 법정은 물론 연방 법원에까지 출두했다. 1991년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으나 무리한 법정 싸움은 사진가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조크 스터지스는 불면증에 시달려 체중이 20여㎏이나 줄었고, 다시는 카메라를 손에 들지 못했다.
피터 브뢰헬, <아이들의 놀이>(1850), 오크 패널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이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찰스 도지슨이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 사진의 전문가였던 그레이엄 오벤든에 따르면 당시의 영국 사회는 아동에 대한 표현이 풍요로웠다고 한다. ‘아동기’라는 인생의 주기도 시대마다 달랐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아동은 근대에 등장한 새로운 인류’라는 것을 그의 저서 <아동의 탄생>에서 보여준다. 유럽의 옛 그림들에는 크기만 작은 어른들의 모습을 한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피터 브뢰헬이 그린 ‘아이들의 놀이’(1559)에는 성인 모습을 한 200여명의 아이들이 어른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음담패설도 즐겼다. 루이 13세의 주치의였던 에로아르의 일지에는 어린 왕세자의 생활에서 자연스러웠던 상스러운 농담들과 외설적인 언행들이 남아있다.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소녀의 누드 사진을 찍었던 그레이엄 오벤든처럼 에덴 시대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가 지금의 시대와 달랐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만약 루이스 캐럴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였다면 우리는 그가 지어낸 이상한 이야기들을 자녀들에게 읽혀 줄 수 있을까?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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