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기자
입력 2015-10-08 03:00:00 수정 2015-10-08 05:13:31
[노벨상 日의 교훈/ 조급증 한국]
3년단위 지원… 지속적 연구 어려워
“일본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특정 분야를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가 대표적인 사례죠. 그런데 한국 정부는 당장 내년 연구개발(R&D) 예산부터 사실상 줄인다고 합니다. 자칫 씨감자를 갉아먹는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서울대 A 교수)
일본인 과학자들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을 잇달아 받자 국내 과학계에서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R&D 예산에 대한 하소연부터 나왔다.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결실을 본 일본과 달리 한국은 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 경제위기에도 R&D 투자 원칙 고수한 일본
일본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본격적으로 배출한 시점은 2000년 이후다. 노벨 과학상을 받은 21명 가운데 2000년부터 올해까지 16명이 나왔다. 이들은 1980년 이후부터 꾸준히 업적을 내놨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기초연구 붐이 불었다. 1980년 말 일본 기업들은 중앙연구소에서 기초연구소를 독립시켰다. 일본 정부도 R&D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하로 줄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경제위기가 닥쳐도 이 원칙만은 고수했다.
1994년 일본 도쿄대 조교수를 거쳐 올해 초 국내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장으로 선임되기 전까지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KEK) 교수를 지낸 정순찬 단장은 “일본 정부는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배출한 ‘슈퍼가미오칸데’처럼 대형 실험시설을 구축하기로 일단 결정한 뒤에는 기간이 오래 걸리고 예산이 많이 투입돼도 기다리고 격려한다”고 말했다. KEK는 2008년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명예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내 대표적인 기초연구 시설로 꼽힌다.
○ 한우물 파기도 어려운 한국
일본이 한창 기초연구에 매진할 때 한국에는 연구 환경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를 할 형편이 아니었다. 한국은 2000년 전까지 세계 3대 과학저널(네이처, 사이언스, 셀)에 발표한 논문이 1년에 10편도 채 되지 않았다. 2000년도 R&D 관련 정부 예산은 3조5000억 원에 불과했다.
과제에 따라 연구비를 지원하는 ‘PBS’ 프로그램도 창의적인 연구를 막았다. 성과를 꾸준히 내야 하니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보다는 안전한 과제만 수행하는 연구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과제 수행기간이 대부분 3년 정도로 호흡이 짧아 진득하게 연구하기도 쉽지 않다. 중장기 연구라고 해도 3년마다 중간 평가를 거쳐야 해 일본처럼 20∼30년씩 한우물을 깊게 파는 과학자가 나오기 어렵다.
과학계 관계자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경우 대체로 30∼40년 꾸준히 연구한 뒤 빛을 보는 경우가 많다”며 “향후 20년간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노벨상 연구를 할 만한 토대를 닦는 데 전념한 만큼 기다려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기초과학 진흥을 위해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국책 사업’으로 불리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하고 거대 실험시설인 중이온가속기 건설을 결정한 건 불과 4년 전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일본의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정부 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를 모델로 삼았다.
염한웅 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은 “신진 연구자들이 처음부터 큰 목표를 갖고 노력한다면 노벨상은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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