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TPP 失機논란, 진실은

Shawn Chase 2015. 10. 8. 12:42

박형준 기자 , 손영일 기자 , 장택동 기자

입력 2015-10-08 03:00:00 수정 2015-10-08 05:00:19

 

한중FTA 우선論 vs 메가FTA 홀대論
2013년초 TPP협상 불참 실기 논란

《 한국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말기와 박근혜 정부 초기에 미국의 TPP 참여 요청을 받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제무대에서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지나친 ‘TPP 실기(失機) 책임론’에 대한 경계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을 놓고 한국이 실기(失機)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과 경제계 일각에선 미국이 여러 차례 합류를 제안했을 때 정부가 중국 등을 의식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TPP에 제때 올라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때문에 앞으로 추가 가입 때 값비싼 ‘입장료’를 내는 일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정책 우선순위의 문제였을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은 2011년부터 여러 경로로 한국의 TPP 참여를 요청했으며 2013년 초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도 참여를 강하게 권유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는 한중 FTA가 우선이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FTA를 비준하는 과정에서 광우병 사태를 겪은 이명박 정부가 ‘친미 정책 트라우마’로 TPP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던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당시 한국은 TPP 참여를 선언한 나라 대부분과 FTA를 맺거나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TPP가 최우선 과제가 아니었다”며 “한국처럼 가용재원이 적은 나라는 ‘전쟁터’를 여러 개 만들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권 교체기의 혼선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의 본격적인 권유가 있었던 때는 정권 인수인계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2013년 초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에 있던 통상조직을 떼어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넘기는 정부 조직개편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통상 정책의 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에 힘을 쏟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도 미국보다 중국과의 통상에 공들이면서 TPP 논의에서 멀어졌다. 실제 2013년 2월 말 인수위가 내놓은 통상 관련 국정과제에서 1순위는 한중 및 한중일 FTA 추진이었다. 2순위는 중국이 주창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었고 다음이 TPP였다. 2013년 4월 미국무역대표부(USTR) 웬디 커틀러 대표보가 다시 한 번 TPP 가입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당시 미국과 이미 FTA를 체결했고 일본의 TPP 참여가 가시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중 FTA 추진이 우선 과제였다”며 “우리가 초기에 TPP 가입을 선언했다면 한중 FTA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본 등 TPP 참여국의 움직임과 국제 통상질서의 흐름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수의 통상 관료들에 따르면 당시 정부 내에선 2013년 7월 일본이 공식 참여선언을 했지만 TPP가 단기간에 타결되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FTA에서 실기한 일본이 TPP로 판을 뒤집으려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우리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많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통상 흐름의 대세가 여러 나라 간의 ‘메가 FTA’로 바뀌는데 한국은 양자 FTA에만 매몰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일대일 FTA에만 신경 쓰다가 정작 큰 판인 다자간 FTA를 놓친 건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실기 논란이 책임론으로 번지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협상력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주재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선 TPP 가입 문제에 대해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전략하에 검토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제기됐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TPP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1∼2년은 걸려야 하고 그동안 협상해서 참여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은 “한중 FTA 등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키고 TPP에도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장택동·박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