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나무의사` 생계 싹 자른 산림청

Shawn Chase 2018. 10. 4. 21:00

산림청 탁상행정 논란
병든 나무 살리는 신종직업
자격시험 기준 갑자기 변경

산림청 퇴직자 많은 `수목協`
선발 특권 남용 의혹 커져
응시자들 "낙하산 챙기기"

자격증 수요자 1만명인데…
양성 가능인원 年1290명뿐

  • 강인선 기자
  • 입력 : 2018.10.04 17:54:35   수정 : 2018.10.04 19: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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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길 씨(가명·40)는 나무의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상처 부위를 봉합하는 이른바 `나무의사(醫師)`다. 그가 졸지에 실업자가 될 지경에 놓였다. 그는 2015년 12월 나무의사를 하는 데 필요한 국가자격증인 `식물보호기술인 자격`을 취득했고, 지난해 7월에는 직접 나무병원을 인수해 운영해 왔다. 하지만 올해 6월부터 실시된 새로운 산림보호법에 따라 김씨는 또 다른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한다.
    식물 약제의 오남용을 막겠다는 취지로 산림보호법이 개정됐지만 부실한 교육 체계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 여파로 나무의사 수천 명이 자칫 거리로 나앉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128만~192만원에 달하는 사비를 들여서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자격증을 따려는 기존 자격자들은 비좁은 교육 기회의 문을 뚫고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김씨는 최근 4개의 양성기관에 지원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지난 8월 모집을 시작한 `수목보호협회`에는 60명 정원에 400명 이상 지원자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자 중 선정하는 것 역시 상당수 기관이 `추첨` 방식을 택하고 있어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생계를 운에 맡기라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지원자들의 불만에 일부 기관은 모집 공고를 낸 후 따로 심사를 거치기로 막판에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이처럼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줄을 선 수요자가 많은데 자격증을 부여할 별도 교육기관의 정원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지정 교육기관 10곳에서 150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만 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기관들이 1년에 양성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1290명에 불과하다. 복수의 산림학계 관계자는 나무의사로 활동할 사람은 4000~5000명, 관련 기관에 취업하거나 다른 용도로 자격을 사용할 인원까지 추산하면 1만명가량이 이번 새 제도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자격증 수요에 비해 교육기관의 문턱이 높은 셈이다.

    여기에 산림청 퇴직 공무원이 많이 포진한 수목보호협회 같은 주요 교육기관이 나무의사 수요·공급을 틀어쥔 채 산림청 퇴직 공무원들의 재취업을 위해 선량한 나무의사들 일자리를 뺏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4일 산림업계에 따르면 나무의사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응시자격을 갖춰야 한다. 우선 수목 진료 관련 학과의 석사 이상 학위를 소지하거나 관련 직무에 종사한 사람이어야 한다. 산림기술사, 조경기술사 등 관련 업무 지식을 갖춘 자격자도 가능하다.

    당장의 불편에도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며 다음 교육 기회를 노리는 대기자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주관 기관인 산림청이 한 민간단체인 수목보호협회에 특권을 주고 있다는 의혹이다. 10개 교육기관 중 하나로 지정된 이 협회는 2019년 기준 1회 60명씩 1년 총 9번의 교육을 진행한다. 실습이 중요해 대다수 교육기관이 30~40명의 정원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과도하게 많은 정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회라는 교육 횟수 역시 다른 기관의 1~2회에 비하면 잦아 교사들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협회는 1994년부터 자체 시험을 거쳐 `나무의사` 응시 자격으로 인정되는 자격증을 지급해 왔는데, 이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총 12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정에서 3개를 면제받기도 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산림청 퇴직 공무원들이 해당 기관에 많이 포진한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기존 사업자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새롭게 시행된 법으로 5000명으로 추산되는 나무의사 교육 자격자가 미래를 걱정하게 됐다는 지적은 당분간 이어질 우려가 있다. 조경기술사, 산림기술사 등 제도 변경 이전에 식물 관련 자격증을 소지하고 업무를 수행해 온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나무의사` 제도 영향권에 놓일 사람이 1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관 부처인 산림청은 수목보호협회가 법 개정 취지를 역행하는 것마저 눈감아 주고 있어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산림청 관계자는 "(나무의사 양성기관) 자격증 발급자 등 수치를 파악해 수요자를 법개정 당시 2400명으로 추산했다"며 "4일 현재 10개 기관 중 8개 기관에 신청한 인원이 2000명을 조금 넘어 2020년 중반까지는 2400명이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애초 최소 240명에서 정원이 540명으로 늘어난 해당 협회의 정원과 관련해서는 "기관들이 처음 교육 기관으로서 자격을 신청했을 때 파악한 강의실 수, 강의 요원 수를 검토해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