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ced to work'에 얼굴 벌개진 일본 대사, 던진 말은?
KBS 이주한 입력 2015.07.21. 17:12
정치 외교 1번지, 미국 워싱턴에서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두 얼굴이 있습니다.
안호영 주미 한국 대사와 사사에 주미 일본 대사.
두 사람은 평소 가까운 사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화 통화도 자주 하는가 하면, 한일간 미묘하고도 첨예한 문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기탄없이 주고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통 외교관의 길을 걸어온 두 대사는 각각 외교부의 '2인자'로 있으면서 서로 카운터 파트를 맡았던 전력도 갖고 있습니다.
2012년 3월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을 맡고 있던 사사에 대사는 당시 외교 차관이었던 안 대사와의 전략대화에서 이른바 '사사에 안'을 제시했습니다. 골자는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해 사죄하며, 정부 예산으로 보상한다는 안입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당시 이 안은 우리 정부로부터 거절당했습니다.
◆ '친구 사이' 한·일 대사, 서로 외면했던 이유는?
친구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두 사람이지만 지난 2013년 미국 대사로 부임한 뒤 토론 패널로서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9일, 미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마침내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댔습니다. 안호영 대사. 사사에 대사. 그리고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인 성김 대사 이렇게 3명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전해 들었던 두 사람의 관계나 공식 석상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눌 때 지켜봤던 표정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안 대사는 사사에 대사를 향해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사사에 대사도 먼 허공만을 쳐다볼 뿐 안 대사 쪽으론 고개를 잘 돌리지 않았습니다.
토론회 초반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북핵 문제. 인권에 대한 한미일 3자 공조 부분에선 상대를 치켜 세우며 찰떡 공조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성김 대표가 추임새까지 넣어 줬으니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하지만 토론회 취재에 나선 특파원들에게 최대 관심은 당시 핫 이슈였던 일본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불거진 강제노역 표현 문제였습니다. 양국 외교장관 협의를 거쳐 일본의 강제노역 현장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직후 '강제노역' 표현 삽입을 놓고 양국의 얘기가 엇갈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내에선 가 강제성을 띤 것이 아니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었고, 이에 대해 한국 내에선 물타기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었습니다. 이같은 논란 속에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대사가 워싱턴 한 가운데서 마주 앉았으니 당연히 언론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핵 공조. 동북아 안보. TPP 등 한미일 세 나라 행정부의 관심 사안은 당장의 시류를 쫓는 언론에게는 뒷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약속된 한 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본론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 'forced to work' 놓고 설전…일본 대사가 토로한 불만은?
방청객과 패널 사이의 질문. 답변 순서가 끝날 무렵, '강제 노역' 표현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특파원들의 눈과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사사에 대사. "한일 모두 국내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합의를 이뤄내 유네스코에 등재된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며 "다른 것들은 모두 사소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Forced to work' 표현을 놓고 한일 두 나라에서 강제노역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자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안호영 대사는 "가장 중요한 건 모든 내용이 합의문에 있다는 사실"이라며 앞으로 이 합의내용을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표현은 점잖았지만 가시 돋친 지적이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 연구원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띠며 토론을 정리하려는 순간, 사사에 대사가 말을 자르며 다시 나섰습니다. "한일 양국이 두 나라의 언어로 떠들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자구에 매달려선 안된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유지하던 평온한 얼굴은 어느새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습니다. '늙은 여우'로 불릴만큼 노련한 평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토론이 끝난 직후 안 대사와 사사에 대사의 서먹한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놓고 일부에선 안호영 대사가 한일 관계를 의식해 공개석상에서 표정 관리를 했다는 촌평도 나왔습니다.
과거 십 여년 전만 해도 국무부 고위 관리를 만나면 북한 문제가 주요 의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성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 대표와 워싱턴 특파원이 함께 한 간담회에서도 북한은 뒷전, 오로지 한일 관계의 현 주소와 미래가 주요 의제를 차지했습니다. 그만큼 미국도 한일 관계의 심상치 않은 기류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데 대한 답답한 속내를 토로하고 있습니다. 한일 외교관들의 속내도 복잡합니다. 민족 정서를 고려하면 현재의 대립 상황이 이해 안되는 건 아니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 고민이라고 할 수 있죠. 한일 외교의 대리전이 된 이번 토론회 역시 이같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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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한기자 ( juh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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