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2부⑫]김성한 "성급한 종전선언,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다"

Shawn Chase 2018. 8. 4. 00:22
윤희훈 기자
입력 2018.08.03 20:00

“북한이 종전선언을 대하는 태도에서 상당히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이슈라는 게 드러났다. (미국도) 신중하게 들여다보니 이게 자칫하면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도 있다’고 깨달은 것 같다.”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실에서 진행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을 하면)북한은 유엔사 해체에 이어서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한미연합사도 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고 올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전 차관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도 최종단계의 산물인데 이걸 너무 성급하게 꺼내든 감이 있다”면서 “종전선언을 하면 결국 정전협정이 유명무실화되는 상황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종전선언은 향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협정 제일 첫 조항에 담기는데, 이걸 왜 평화협정과 분리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의 선의를 북한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하나”고 지적했다. 

김 전 차관은 최근 종전선언과 관련한 중국의 태도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입장은 당초 종전선언에 꼭 참여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면서 “2주 전에 베이징에 가서 중국의 관변학자들을 만났는데 ‘종전선언을 할 때 꼭 필요하다면 남북미가 해도 괜찮다’고 했다. 굉장히 의외였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은)종전선언을 하면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나 한미 동맹이라든지 이런 문제가 한국 사회에 들불처럼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라며 “굳이 중국이 끼느냐 마느냐를 문제로 부각시키지 않고, 종전선언으로 인한 주한미군의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전 차관은 ‘종전 선언’의 대안으로 ‘종전을 위한 선언’을 제안했다. 그는 “싱가포르 선언과 판문점선언도 ‘비핵화 선언’이 아닌 ‘비핵화를 위한 선언’이었다”며 “(종전을 하려면)관계 개선도 필요하고 군비 통제, 감축 등 양측간 논의할 사항이 많다. 이러한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게 ‘종전을 위한 선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종전을 위한 선언을 하려면 북한도 비핵화의 타임라인을 제시해 ‘몇년 몇월까지 비핵화를 한다. 신고와 검증도 언제까지 마친다’라고 약속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돼야 한쪽에선 평화체제를, 다른 한쪽에선 비핵화를 논의하는 투트랙 채널이 가동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차관은 현재 미북 간 비핵화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데 대해 “진행이 더딘 것에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김정은도)국제사회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야기했고,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약속을 했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발언을 무효화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하긴 힘들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또 최근 불거진 북한산 석탄의 국내 유입 등 대북 제재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둔갑해서 국내에 유입됐다. 그런데 이 위장 화물선에 대해 제대로 법집행을 안한 것 같은 상황이 있다.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북한에 관여하기 위해 일정 부분 예외로 인정받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 인정이 비핵화를 향한 국제사회의 여망이나 전략적 공감대에서 비켜나 있는 것 같다는 오해를 사선 안된다”고 했다. 

다음은 김 전 차관과의 인터뷰 전문.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이 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장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싱가포르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이 열린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는 인물은 김영철인데, 리용호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리용호 외무상도 우습게 봐선 안된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도 회고록에서 리용호가 북한의 외교 전술인 ‘벼량 끝 전술’의 창시자라고 했다. 현재 북한의 대외 협상을 김영철이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용호를 무시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협상이 교착상태다. 북한으로선 유해도 송환했고, 미사일 실험장 폐쇄조치에도 들어갔으니 미국이 새로운 카드를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원하는 건 대북 제재 완화이다. 그런데 제재 완화는 쉽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북 제재는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어가는 카드로 막판까지 지켜야 한다. 섣불리 완화를 했다간 협상의 구도가 미국에 불리하게 흘러가게 된다. 지금도 대북제재는 위험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제재 완화를 과용할 수 있고, 중국 정부는 제재완화를 남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제재 완화 과용이란게 어떤 의미인가?

“북한과의 대화를 하기 위한 예외적 조치를 평창 동계 올림픽 때부터 취해왔다. 북한에 관여하기 위해 일정 부분 예외로 인정받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 인정이 비핵화를 향한 국제사회 여망이나 전략적 공감대에서 비켜나 있는 것 같다는 오해를 사선 안된다. 이런 부분은 우리 정부가 조심해서 자제할 필요가 있다.”

-강경화 장관이 지난달 말 유엔에 가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예외적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걸 두고 ‘제재 완화는 아니다’고 했다. 예외 인정과 제재 완화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제재 예외 규정과 제재 완화를 구분하는 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너무 남북관계 개선에 조바심을 낸다는 입장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와중에 유엔 제재 결의를 위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 정부가 법 집행을 제대로 안했다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법 집행을 제대로 안한 상황이란 게 뭘 말하는 건가?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둔갑해서 국내에 유입됐다. 그런데 이 위장 화물선에 대해 제대로 법집행을 안한 것 같은 상황이 있다.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종전선언에 대한 이상주의적 집착과 제재 예외와 완화를 굳이 구분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의지와는 거리감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김도균(왼쪽) 국방부 대북정책관과 북측 단장인 안익산(오른쪽) 중장(우리의 소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9차 남북 장성급회담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안익산 중장은 이날 회담 모두발언에서 “우리가 미국을 흔들다가 잘 안 되니까 이번에 남측을 흔들어서 종전 선언 문제를 추진할 거라고 보도했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 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한 이상주의적 집착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전 선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싱가포르 합의를 보면 북미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면 종전선언이 필요할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북미관계 개선은 일종의 종착역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도 최종단계의 산물인데 이걸 너무 성급하게 꺼내든 감이 있다.”

-종전선언 이외에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취할만한 조치가 있나?

“제네바 합의를 보면 북미 연락 사무소 설치를 합의했다. 이런 조치들도 북미 관계 개선, 관계 정상화를 위한 액션이다. 왜 꼭 종전선언이어야만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 북한은 종전선언에 상당히 목메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3차 방북했을 때 북한이 종전선언을 요구했는데, 폼페이오가 수용하지 않자 뒤에다 대고 험한 말을 쏟아냈다. 이후로 북한이 종전선언을 상당히 중시한다는 게 드러났다. 사실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만 해도 종전선언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 우리 정부도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지 법률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북한이 종전선언을 대하는 태도에서 상당히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이슈라는 게 드러났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정전협정의 내용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고.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의미가 약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구속력이 높다고 하지만 현실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남북미가 하든, 남북미중이 하든 종전을 선언하면 ‘한국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후론 추가적인 법적 절차를 위한 협상이 시작되는 것 외에는 모두 다 마무리 되는 거다. 정치적 선언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해서 의미를 낮게 볼 순 없다. 정상들이 만나 발표한 정상합의문에 왜 의미를 두겠나.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선언도 다 정치적 선언 아닌가. 일부 학자들이 종전선언을 해도 정전협정은 유지되며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진 지속된다고 하는데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종전선언을 하면 결국 정전협정이 유명무실화되는 상황으로 가게 된다.”

-최근 중국이 종전선언과 관련해 특별한 언급이나 대응이 없다. 처음 우리 정부가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논의하자고 했을 때, ‘차이나 패싱’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토로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다.

“중국의 입장은 당초 종전선언에 꼭 참여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계속 중국의 참여를 거부하자 중국은 한동안 침묵하면서 남북미 종전선언도 괜찮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2주 전에 베이징에 가서 중국의 관변학자들을 만났는데 ‘종전선언을 할 때 꼭 필요하다면 남북미가 해도 괜찮다’고 하더라. 중국이 같이하면 좋지만, 굳이 남북미가 해서 빠르게 진행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를 빼도 괜찮다는 거였다. 굉장히 의외였다. 최근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구체조치와 종전선언을 연계시키자 남북한에 외교부 부부장과 양제츠를 보내 종전선언을 성사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걸 보면서 중국도 종전선언을 상당히 전략적 시각에서 보고 있단 걸 알게 됐다. 종전선언을 하면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나 한미 동맹이라든지 이런 문제가 한국 사회에 들불처럼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 굳이 중국이 끼느냐 마느냐를 문제로 부각시키지 않고, 종전선언으로 인한 주한미군의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 모두 종전선언을 통해 상당한 실리를 얻을 수 있겠다.

“북한 입장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적 옵션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다. 종전선언을 하면 미국은 이제 공식적으로 군사적 옵션을 거론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미국 내 강경파들이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것이다. 지금은 단기간에 종전선언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왔다. 트럼프 행정부도 처음엔 종전선언을 가볍게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하지, 또 북한도 계속 요구하니 종전선언을 비핵화와 연결해 제대로 카드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중하게 들여다보니 이게 자칫하면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비핵화와 한미동맹은 별개라고 강조해왔는데, 계속 얽혀서 진행되고 있다. 단적으로 한미연합훈련도 중단됐다.

“종전선언을 하면 영향이 더 갈 수 밖에 없다. 법적으로 봤을 때 정전협정은 클라크 장군이 유엔군 대표로 사인을 했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유엔사령부가 타깃이 된다. 유엔사를 해체하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유엔군 사령관 모자를 누가 쓰고 있나, 바로 주한미군사령관이다. 지금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사 해체에 이어서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한미연합사도 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고 올 것이다. 그러면서 이게 이뤄져야 비핵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하나?

“종전선언은 향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협정 제일 첫 조항에 담긴다. ‘이 평화협정으로 A와 B의 전쟁을 마친다’라고 명시하면 된다. 종전선언은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평화협정과 분리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비핵화의 단초를 만들기 위해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에서 분리했다고 하는데, 우리의 선의를 북한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하나. 이건 순진한 발상이다. 굳이 ‘종전’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면, ‘종전선언’이 아닌 ‘종전을 위한 선언’은 할 수 있다. 싱가포르 선언과 판문점선언이 ‘비핵화 선언’인가? 이건 ‘비핵화를 위한 선언’이다. 종전도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종전이 되나. 관계 개선도 필요하고 군비 통제, 감축 등 양측간 논의할 사항이 많다. 이러한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평화협정 협상의 개시를 알리는 ‘종전을 위한 선언’을 제안한다. 그리고 종전을 위한 선언을 하려면 북한도 비핵화의 타임라인을 제시해 ‘몇년 몇월까지 비핵화를 한다. 신고와 검증도 언제까지 마친다’라고 약속해야 한다.”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타임테이블이 같이 가야한다고 보나?

“종전을 위한 선언을 하게 되면 군사적 대비태세와 군축 등을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또 북미관계와 함께 북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교섭 창구도 만들어질 것이다. 한편에선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돼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시간표와 로드맵을 발표해야 한다. 이렇게 돼야 한쪽에선 평화체제를, 다른 한쪽에선 비핵화를 논의하는 투트랙 채널이 가동된다. 만약 비핵화는 말로만 되고 있는데 한쪽에선 종전을 선언해버렸다. 그러면 상황이 불균형해진다. 첫단추만 끼우고 나머지는 모두 다 뜯어버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정부가 이 문제를 가볍게, 낭만적으로만 봐선 안된다.”

-지금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뭔가 모멘텀을 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비핵화 진행이 더딘 것에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압박하고 있다고 해서 모멘텀을 잃을까봐 종전선언에 동의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북한이 종전선언까지 가고 싶다면 이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단순히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가 아니라 이 정도면 비핵화가 상당히 진행됐다고 판단할 만한 구체적인 조치, 예를 들자면 신고와 사찰, 핵물질 반출 등이 따라야 한다. 아직은 미심쩍다면 ‘종전을 위한 선언’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돼야 협상을 지속할 수 있다. 북한의 선의만 믿고, 우리의 선의가 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화에 나섰다가 얼마나 많이 속았나.”

-혹시 김정은이 판을 엎어 버리진 않을까?

“판을 엎는다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 모르겠지만, 김정은은 지금 핵과 경제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원하지 않나. 그런데 이게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서면 결국 핵을 선택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국제사회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야기했고,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약속을 했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발언을 무효화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하긴 힘들다. 일단 모호한 상태로 계속 시간을 끌 것이다.”

-트럼프도 지금의 모호한 상황이 싫진 않은 것 같다.

“나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지금 상태론 국내의 여러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힘들다. 미국 경제가 호황이긴 하지만 중국과의 무역 갈등, 러시아 문제 등 외교안보 분야에 여러 뇌관이 있다.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가 외교안보인데, 이 부분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정치적으로 승리하기가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 분야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서 최소한 비핵화 시간표나 로드맵에 합의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도 중간선거 당일까지 초조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북핵이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미국과 북한과 가까워지는 것도 보기가 불편할텐데.

“중국은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중국은 처음엔 북한이 미국쪽으로 확 다가가고, 그걸 미국이 냉큼 끌어안는 상황을 우려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적당히 축소하는 수준에서 용인하고, 그 핵이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하는 상황은 중국으로선 악몽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을 계속 만난 것이다. 중국의 전략이 먹힌건지, 미국이 전열을 가다듬고 북한의 속내를 파악해서인지, 일단 북미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중국이 안도했다. 이어 중국은 종전선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북한과 합세해 미국을 압박하기로 했다. 처음엔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 안되니 고민이 되는 상황이다.”

-용어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쓰인 표현이 상당수 일치한다.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공동성명 모두 북한이 초안을 잡은 것 같다. 10~20% 정도만 우리나 미국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합의문 순서나 문체를 보면 알 수 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선 안전보장이라는 뜻으로 쓰인 ‘security guarantee’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미국 공식 문서에서는 이런 표현을 안 쓴다. 이란 핵협상에서도 그렇고 이런 의미는 보통 ‘security assurance’라고 명시한다. ‘security guarantee’는 북한이 만든 용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대해 북한의 외곽 단체는 ‘안전담보’라고 해석했다. 국내 친북 단체들은 대부분 ‘체제보장’으로 해석했다. 이런 해석 자체가 북한에 말려든 것이다. ‘regime guarantee’도 아닌데 왜 체제보장이라고 번역하나. 안전보장이 맞는 말이다. 체제 보장이라는 건, 북한 내에서 시민 봉기 등 급변사태가 발발해도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어와 관련해, 일각에선 ‘CVID는 슬로건에 불과하다’며 북한에 굳이 CVID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CVID는 유엔안보리 제재에서도 쓰이는 공식용어다. 북한은 이 용어를 싫어하겠지만 공식 용어임은 분명하다. 북한이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 용어를 폄하하는건 옳지 않다. CVID라는 단어를 볼턴의 보좌관이 만든 용어라면서 깍아내리기도 하는데, 이건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유엔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슬로건이라고 하면 안된다. 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니 북한이 싫어한다면 다른 용어를 사용할 순 있다고 본다. 그래서 폼페이오 장관이 PVID(영구적이며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한 비핵화)와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V(검증)가 있는 표현은 다 싫어할 것이다.”

-8월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예정돼 있다. 일단 남북 관계는 잘 풀릴 것이라고 보나?

“좋아질 것 처럼 하다가 나빠질수도 있다. 북한은 지금 우리에게 ‘숙제를 다 해야 인도적 상봉을 해주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엔 항상 대가가 따랐다. 그런데 지금은 남쪽이 숙제를 제대로 안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 정부로선 열심히 하는데도 안되는 상황인데, 북한은 결과만 보면서 ‘너희가 해준게 뭐 있냐’라며 하루아침에 돌변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북한이 짧게 보는 거다. 일단은 상봉 행사를 성사시켜야 문재인정부의 마음을 붙들어놓을 수 있지 않겠나.”

-판문점선언 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곧 평양에 가야 하는데, 갈만한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정부는 문 대통령의 방북을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볼 때 유엔 총회에 김정은을 초청하는 방안도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김정은을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시켜서 가시적인 조치를 이끌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할거다. 하지만 종전선언의 가치를 파악한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봐야한다. 지금 종전선언은 일본이 가장 우려한다. 종전선언으로 유엔사가 해체되면 유엔사 후방기지인 주일미군의 역할과 규모도 축소된다. 이에 대한 우려에서 ‘드골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핵무장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아직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카드를 내줄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다음 행동도 북한의 몫인 것 같다.

“앞서 제안한 ‘종전을 위한 선언’을 북한이 받을지 모르겠다. 만약 북한이 받을 의사가 없다면, 의미있는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 전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ICBM을 먼저 제거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ICBM 문제만 해결되면, 미국으로선 북핵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비핵화 협상이 그상태에서 멈춰버릴 수도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안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이 ICBM 뿐만 아니라 스커드미사일과 노동미사일까지 제거해달라고 하긴 힘들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중간선거 전에 종전선언을 해줄테니 그 대신 ICBM을 반출하든지 폐기하라는 식으로 거래를 제안할 수 있다. 바라기는 미국이 서두르지 않고 ‘종전을 위한 선언’과 비핵화 시간표 및 로드맵 합의를 제대로 했으면 한다.”


☞김성한 전 차관 : 미국 텍사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교수, 미주연구부장 등을 거친 국제정치 전문가다.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외교·안보정책 분야를 자문했다. 2012년 외교통상부 제2차관으로 선임됐다.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장에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