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03 03:00
약점투성이인 그가 美 대선 후보군 중 선두 달리는 비결
치밀하게 준비된 막말
2013년부터 출마 준비, 100만달러 들여 전략 짜
백인·보수·중산층 겨냥 '불법 이민' 이슈 승부수
유권자의 분노를 읽다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 제3 후보 동경하는 심리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짧고 굵은 메시지로 인기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아무도 못 말릴 것 같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부르는 70대의 무소속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버몬트)에게 바짝 쫓기고, 공화당은 공직 경험 한 번 없는 '아웃사이더' 3인방이 대선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69)다. 각종 막말 파문과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갔던 전력에도, '돌풍'이 사라질 줄 모른다.
허핑턴포스트가 각종 여론조사 지표를 종합해 발표하는 수치를 보면, 9월 말 현재 트럼프는 28.3%,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보수 논객 벤 카슨이 16%, 초반 대세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그래도 8.9%, 거침없이 올려차기 중인 칼리 피오리나 전 HP CEO(최고경영자)가 7.6%, 젊은 패기와 논리를 자랑하는 초선 연방 상원의원 마코 루비오(플로리다)가 6.8% 순이다. 또 다른 지표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통합여론조사 지표도 9월 말을 보면, 트럼프가 24%, 카슨 16.3%, 피오리나 11.8%, 부시 9.8%, 루비오 9.3%다. 20%를 넘는 지지는 트럼프뿐이다.
'막말 전문 선동가' 이례적인 고공행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미국에서 '막말 전문 선동가'인 트럼프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부시는 원정출산을 뜻하는 '앵커 베이비'라는 용어 한 번 잘못 썼다가 뭇매를 맞고 주저앉을 지경인데, 트럼프는 여성·이민자·소수자를 '저주'해도 건재하다. 불법이민 멕시코인들을 '강간범' '범죄자'라고 맹비난했다. 보통 사람이면 여기서 끝났을 텐데, 오히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이민 문제를 가장 큰 이슈로 만들어냈다. 월남전 포로였던 존 매케인 연방 상원의원에게도 독설을 퍼부었다. "포로로 잡혔다고 해서 전쟁영웅? 난, 포로로 잡히지 않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었던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메긴 켈리와 같은 대선 후보인 피오리나를 비하했는데도, 지지율은 떨어질 줄 모른다.
초반 상승세는 '반짝인기'일 거라던 미국 언론들도 지지율이 계속 오르자, '트럼프 신드롬'의 원인이 뭔지를 찾아 나섰다. 우선 트럼프가 대중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느닷없이 출마했다지만, 뉴욕 포스트는 이미 2013년부터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을 들여 폭넓은 연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심층 분석을 통해 나온 게 바로 '불법 이민' 이슈다.
공화당의 주축인 백인·보수·중산층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히스패닉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소수 인종의 비율이 계속 늘면서, 2010년 72.4%를 차지하던 백인 인구가 2043년이면 과반이 허물어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멕시코와의 국경에 '만리장성'을 쌓자는 다소 황당한 주장에도 동조하는 사람이 늘었다. 트럼프는 미국 영토 내에서만 태어나면 무조건 시민권을 주는 '출생 시민권제(birthright citizenship)'까지 없애고, 1100만명 가까운 불법이민자를 추방하자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원인도 있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백인은 주류에서 밀려나 변방이 되는 두려움에 빠졌다. 흑인은 범죄자라도 경찰 총에 맞으면 영웅이 되는 '이상한' 세상에 분노하던 이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대변한 게 인기의 비결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백인보수층의 위기의식과 분노를 역이용한 게 주효했다고 해석했다.
기업인 마인드로 공화당 지지층의 다른 속마음을 대변하는 데도 성공했다. 의도적인 '중국 때리기'다. 다른 대권 주자도 따라서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무역 역조가 어떻고 복잡하게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신 트럼프는 간단하게 "중국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한마디로 큰 박수를 받아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은 미국인 가슴을 헤집고 들어갔다. 거친 말을 해도 솔직해 보인다는 것도 트럼프의 '매력'(이코노미스트)이다.
"백인 보수층의 위기의식·분노 역이용"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은 상수(常數)였다.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자기들만의 리그'에 대한 불만이 제3후보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매일 싸우기만 하고, 법안 하나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대통령은 의회가 통과시킨 법을 수시로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킨다.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마다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 공포가 제기된다. 이러다 보니 답답한 마음만 쌓이고, 다른 대안 찾기에 나선 것이다. 공화당 선두 주자 3명 모두가 정치 경력이 없는 것만 봐도 이해가 된다.
정치여론 전문조사기관인 하트연구소의 제프 호윗 부사장은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의 93%가 '미국이 현재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83%가 경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등 불만으로 가득한 보수 유권자들이 정치 초년생에게 흠뻑 빠진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적 카리스마와 방송 진행자로서의 인기도 한몫했다. 특히 2004년부터 NBC 방송의 유명 리얼리티 쇼 '견습생(The Apprentice)'에서 보여준 독설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막말과 거친 행동이 있었지만, 견습생들을 다그쳐 '사람'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최근의 '막말'시리즈에 대한 면역을 키웠다. "넌 해고야(You're fired)"라고 소리지르는 건 유행이 되기도 했다. 취업 희망자들이 트럼프 회사에서 연봉 25만달러(약 3억원)를 받고 1년 이상 근무하는 조건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한때 2800만명이 지켜볼 만큼 인기였다.
마케팅 능력도 타고났다. 자신의 슬로건을 새긴 모자 하나만 해도 최고 인기 아이템이 됐다. 빨간 넥타이와 빨간 모자 등은 트럼프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고, '트럼프 전용기' '트럼프 헬기' 등도 관심거리다. 클린턴은 전용기를 타면 비난을 받지만,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이라 그런지 오히려 이런 게 인기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유권자들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부동산과 재산을 가진 트럼프가 나라 경제까지 키워줄 것이란 '신화'를 믿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도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가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트럼프 캠프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 돈 1억달러 쓰겠다"
트럼프는 '서민층 재산세 제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자기 재산이 100억달러(약 12조원)라고 신고한 그가 후원금 없이 선거를 치르겠다고 한 점도 유권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시나 클린턴 등이 수천억원씩을 '큰손'들에게서 거둬 선거를 치르는데, 결국 '부자들을 위한 정책'밖에 더 나오겠느냐는 자조감을 트럼프가 날려버린 것이다. 스스로 "나는 부자다. 내 돈 1억달러(1200억원) 정도는 기꺼이 쓰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후보들의 후원금 모금을 대가성이라고 역공하면서 유권자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트럼프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언론도 있다. 프린스턴대 마틴 가일런스 교수는 "목소리가 굵직하고, 키가 훤칠한 사람을 지도자로 보는 경향이 많다"며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이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여기에 위트와 유머, 나르시시즘(자아도취주의)까지 갖췄다고 분석했다. 지나친 자신감, 과도한 확신, 거만함, 과장 등이 나르시시즘인데, 상황이 엉망이고 위기라는 인식을 가지면 이런 성향의 지도자를 찾는 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 언어학자들도 나섰다. 트럼프의 말은 일단 '재미나다'. 연설 자체는 장황하다. 한국에 왔다가 아프리카를 가더니 갑자기 독일을 화제로 끄집어낸다. 하지만 이야기마다 실제 경험이나 사례를 언급하는 스토리텔링이 되면서 청중을 빨아들인다. 다른 정치인들이 뭔가 있는 듯한 어려운 단어를 쓰는 데 비해 단순하고 보통 사람이 쓰는 단어를 많이 활용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레이트' '원더풀' '뷰티풀' 같은 쉬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마크 요프 펜실베이니아대 언어학 교수는 부시와 비교를 했다. 부시는 '전략' '정부' '성장' 같은 말을 쓰는데, 트럼프는 아주 캐주얼한 단어를 써 대조적이었다고 했다.
본선 승리에 회의적 시각도
트럼프의 인기 요인이 과연 본선에서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공화당 내부적으로는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필패(必敗)라는 전망이 높다. 백인 보수층의 지지에만 기대는 트럼프는 표의 확장성이 떨어진다. 이런 현실 인식 속에서도 일부 정치분석가는 "트럼프 현상 자체가 공화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권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 등은 결혼할 때와 연애할 때를 예로 들면서 "지금은 로맨틱하고 뭐든 다 될 것 같은 환상 속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겠지만, 표를 찍을 때는 냉정하게 본선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겉으로만 드러난 트럼프 열풍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상당수는 동조한다. 자수성가형이 아닌 '실버스푼형(타고난)' 부자고, 입대를 기피한 점, 전 부인과의 불화, 네 번의 파산 신청에 따른 사업가로서의 자질 논란 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막말 전문 선동가' 이례적인 고공행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미국에서 '막말 전문 선동가'인 트럼프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부시는 원정출산을 뜻하는 '앵커 베이비'라는 용어 한 번 잘못 썼다가 뭇매를 맞고 주저앉을 지경인데, 트럼프는 여성·이민자·소수자를 '저주'해도 건재하다. 불법이민 멕시코인들을 '강간범' '범죄자'라고 맹비난했다. 보통 사람이면 여기서 끝났을 텐데, 오히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이민 문제를 가장 큰 이슈로 만들어냈다. 월남전 포로였던 존 매케인 연방 상원의원에게도 독설을 퍼부었다. "포로로 잡혔다고 해서 전쟁영웅? 난, 포로로 잡히지 않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었던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메긴 켈리와 같은 대선 후보인 피오리나를 비하했는데도, 지지율은 떨어질 줄 모른다.
초반 상승세는 '반짝인기'일 거라던 미국 언론들도 지지율이 계속 오르자, '트럼프 신드롬'의 원인이 뭔지를 찾아 나섰다. 우선 트럼프가 대중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느닷없이 출마했다지만, 뉴욕 포스트는 이미 2013년부터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을 들여 폭넓은 연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심층 분석을 통해 나온 게 바로 '불법 이민' 이슈다.
공화당의 주축인 백인·보수·중산층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히스패닉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소수 인종의 비율이 계속 늘면서, 2010년 72.4%를 차지하던 백인 인구가 2043년이면 과반이 허물어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멕시코와의 국경에 '만리장성'을 쌓자는 다소 황당한 주장에도 동조하는 사람이 늘었다. 트럼프는 미국 영토 내에서만 태어나면 무조건 시민권을 주는 '출생 시민권제(birthright citizenship)'까지 없애고, 1100만명 가까운 불법이민자를 추방하자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원인도 있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백인은 주류에서 밀려나 변방이 되는 두려움에 빠졌다. 흑인은 범죄자라도 경찰 총에 맞으면 영웅이 되는 '이상한' 세상에 분노하던 이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대변한 게 인기의 비결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백인보수층의 위기의식과 분노를 역이용한 게 주효했다고 해석했다.
기업인 마인드로 공화당 지지층의 다른 속마음을 대변하는 데도 성공했다. 의도적인 '중국 때리기'다. 다른 대권 주자도 따라서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무역 역조가 어떻고 복잡하게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신 트럼프는 간단하게 "중국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한마디로 큰 박수를 받아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은 미국인 가슴을 헤집고 들어갔다. 거친 말을 해도 솔직해 보인다는 것도 트럼프의 '매력'(이코노미스트)이다.
"백인 보수층의 위기의식·분노 역이용"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은 상수(常數)였다.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자기들만의 리그'에 대한 불만이 제3후보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매일 싸우기만 하고, 법안 하나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대통령은 의회가 통과시킨 법을 수시로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킨다.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마다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 공포가 제기된다. 이러다 보니 답답한 마음만 쌓이고, 다른 대안 찾기에 나선 것이다. 공화당 선두 주자 3명 모두가 정치 경력이 없는 것만 봐도 이해가 된다.
정치여론 전문조사기관인 하트연구소의 제프 호윗 부사장은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의 93%가 '미국이 현재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83%가 경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등 불만으로 가득한 보수 유권자들이 정치 초년생에게 흠뻑 빠진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적 카리스마와 방송 진행자로서의 인기도 한몫했다. 특히 2004년부터 NBC 방송의 유명 리얼리티 쇼 '견습생(The Apprentice)'에서 보여준 독설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막말과 거친 행동이 있었지만, 견습생들을 다그쳐 '사람'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최근의 '막말'시리즈에 대한 면역을 키웠다. "넌 해고야(You're fired)"라고 소리지르는 건 유행이 되기도 했다. 취업 희망자들이 트럼프 회사에서 연봉 25만달러(약 3억원)를 받고 1년 이상 근무하는 조건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한때 2800만명이 지켜볼 만큼 인기였다.
마케팅 능력도 타고났다. 자신의 슬로건을 새긴 모자 하나만 해도 최고 인기 아이템이 됐다. 빨간 넥타이와 빨간 모자 등은 트럼프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고, '트럼프 전용기' '트럼프 헬기' 등도 관심거리다. 클린턴은 전용기를 타면 비난을 받지만,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이라 그런지 오히려 이런 게 인기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유권자들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부동산과 재산을 가진 트럼프가 나라 경제까지 키워줄 것이란 '신화'를 믿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도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가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트럼프 캠프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 돈 1억달러 쓰겠다"
트럼프는 '서민층 재산세 제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자기 재산이 100억달러(약 12조원)라고 신고한 그가 후원금 없이 선거를 치르겠다고 한 점도 유권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시나 클린턴 등이 수천억원씩을 '큰손'들에게서 거둬 선거를 치르는데, 결국 '부자들을 위한 정책'밖에 더 나오겠느냐는 자조감을 트럼프가 날려버린 것이다. 스스로 "나는 부자다. 내 돈 1억달러(1200억원) 정도는 기꺼이 쓰겠다"고 말하면서 다른 후보들의 후원금 모금을 대가성이라고 역공하면서 유권자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트럼프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언론도 있다. 프린스턴대 마틴 가일런스 교수는 "목소리가 굵직하고, 키가 훤칠한 사람을 지도자로 보는 경향이 많다"며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이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여기에 위트와 유머, 나르시시즘(자아도취주의)까지 갖췄다고 분석했다. 지나친 자신감, 과도한 확신, 거만함, 과장 등이 나르시시즘인데, 상황이 엉망이고 위기라는 인식을 가지면 이런 성향의 지도자를 찾는 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 언어학자들도 나섰다. 트럼프의 말은 일단 '재미나다'. 연설 자체는 장황하다. 한국에 왔다가 아프리카를 가더니 갑자기 독일을 화제로 끄집어낸다. 하지만 이야기마다 실제 경험이나 사례를 언급하는 스토리텔링이 되면서 청중을 빨아들인다. 다른 정치인들이 뭔가 있는 듯한 어려운 단어를 쓰는 데 비해 단순하고 보통 사람이 쓰는 단어를 많이 활용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레이트' '원더풀' '뷰티풀' 같은 쉬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마크 요프 펜실베이니아대 언어학 교수는 부시와 비교를 했다. 부시는 '전략' '정부' '성장' 같은 말을 쓰는데, 트럼프는 아주 캐주얼한 단어를 써 대조적이었다고 했다.
본선 승리에 회의적 시각도
트럼프의 인기 요인이 과연 본선에서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공화당 내부적으로는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필패(必敗)라는 전망이 높다. 백인 보수층의 지지에만 기대는 트럼프는 표의 확장성이 떨어진다. 이런 현실 인식 속에서도 일부 정치분석가는 "트럼프 현상 자체가 공화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권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 등은 결혼할 때와 연애할 때를 예로 들면서 "지금은 로맨틱하고 뭐든 다 될 것 같은 환상 속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겠지만, 표를 찍을 때는 냉정하게 본선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겉으로만 드러난 트럼프 열풍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상당수는 동조한다. 자수성가형이 아닌 '실버스푼형(타고난)' 부자고, 입대를 기피한 점, 전 부인과의 불화, 네 번의 파산 신청에 따른 사업가로서의 자질 논란 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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