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681만 ‘스윙보터’들은 어디로
“이번 지방자치선거는 자유한국당을 박멸하는 선거가 될 겁니다. 홍준표 대표의 막말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거예요.”
지방선거 3일 전 기자와 통화한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지방선거가 한국 정치 내지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중대(critical) 선거’로 보지는 않았다. 지난 대선도 마찬가지다.
“아이고, 제가 선거로 박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제 전공이에요. 그렇다고 망할 것 같으면 2006년 지방선거에 이어 2007년 압도적인 표차로 진 열린우리당도 망했게요. 폐족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10년 후에 부활해 집권세력이 된 것 아닙니까.”
‘선거는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그의 책 <하드볼게임>(2015)은 한국 선거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유권자 집단, 이른바 ‘스윙보터’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매번 선거 때마다 입장을 바꾸는 중간 유권자들의 선택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계산 가능하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데는 최소 651만표의 2002년 노무현 지지자의 ‘변심’이 있었다. 다시 2012년 대선에서는 이명박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485만명이 등을 돌리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2017년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돌아섰을까.
의외로 간단한 계산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를 계승한 홍준표 후보는 785만2849표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을 기준으로 그가 까먹은 표는 792만279표로 반토막을 넘어선다. 그렇다고 이 표가 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간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도 2012년에 비해 126만8832표가 줄어들었다. 두 사람으로부터 이탈한 표는 상대방에게 가지 않았다면 기권을 했거나, 안철수·유승민 후보 등에게로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의 ‘스윙보터’는 더 확대되었을까, 아니면 줄어들었을까. 그리고 문 대통령 집권 1년 뒤 치러진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6년 전 박근혜 투표자들은 어디로 갔나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자는 임기 동안 내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반면 패배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해 서서히 잊혀져간다.
희비의 순간이 다 지난 뒤 정리·분석작업은 선거정치학자의 몫이다. 지난해 말, 동아시아연구원이 출간한 <변화하는 한국 유권자 6> 역시 그런 연구작업의 소산이다. 박근혜 지지로부터 이탈한 스윙보터들, 이른바 ‘스윙 보수층’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의 선택은 ‘개종(conversion)’ 즉 민주당 문재인 지지자로 변신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탈동원(demobilization)’ 즉 보수 지지를 철회하고 무당파층으로 남았을까. 전문가들은 선거 전후로 치러진 여론조사 데이터들, 패널 심층 인터뷰 등을 다시 역추적해 유권자의 선택을 재구성해낸다.
결론은 다소 보수적이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은 책에 실은 논문에서 2017년 대선에서 스윙 보수층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단기적인 정치이슈’인 탄핵이었고, 따라서 정당 지지 분포의 변화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려우며 이것은 다시 말해 (2017년 대선을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 중대선거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린다.(위의 책 105쪽)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은 ‘보수’ 중 일부가 개종, 즉 문재인 지지를 선택했더라도 탄핵 때문이지 근본적인 입장변화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다른 학자들의 의견도 엇비슷하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후보들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그것을 보수의 몰락이나 약화로 보기 어려우며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대규모로 진보로 ‘전향’했거나 보수정파로부터 완전하게 이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681만표. 이진복 민주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이 계산한 지난 2017년 대선의 스윙보터 규모다. 보수와 진보 모두 합친 숫자다.
2017년 선거는 다자대결 구도였으므로 식은 조금 복잡해진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받은 표에서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유승민 후보를 ‘보수’로 간주해 받은 표를 합쳐 빼면 남는 수치는 571만표다. 여기에 문재인·심상정 후보 표를 ‘진보’로 규정한다면 2012년보다 75만표를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또 하나 고려해야 하는 것이 19대 대선에서 늘어난 235만명의 투표자들이다. 이 투표자들을 이해 각 진영이 대선에서 받은 득표율(보수 30.8%, 진보 47.3%)대로 분산한다고 가정하면 보수가 더 얻을 수 있는 표는 75만표이고 진보진영이 얻었을 것으로 추산되는 표는 110만표다. 따라서 스윙보터의 규모는 571만에 75만을 더하고, 다시 진보가 얻은 110만표에서 75만표를 뺀 수치인 35만을 더해 681만명이 되는 것이다. 양자대결 구도에서 485만으로 줄어들었던 스윙보터가 다시 2007년 수준(651만)을 넘어선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자. 지방선거의 룰은 전국 공통으로 투표인구수의 단순 합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대선과 다르다.
지역구별 의원을 한 명씩 뽑는 총선과도 다르다. 하지만 87년체제로 만들어진 정치 경쟁의 룰은 공통이다. ‘승자 독식’이다. 해당 선거에서 단 한 표라도 많이 받은 후보가 승리자가 된다.
‘14대 2’ 선거 결과보다 근본적인 변화
당선 여부를 무시하고 현 더불어민주당이 잇고 있는 민주당 계열 정당과 한나라-새누리-자유한국당이 지난 4회 때부터 지방선거에서 전국에서 받은 득표를 합산해 계산하면 아래 표와 같이 된다. 무상급식이 이슈가 되었던 2010년 광역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이 8대 7로 승리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실제 전체 득표수는 한나라당에 312만7166표를 뒤졌다. 광역선거에서 9대 8로 신승한 2014년 지방선거 역시 총표수는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에게 35만720표 못미쳤다.
보수 측으로선 ‘투표에선 이겼고 선거에서는 졌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압도적이다. 14대 2라는 결과뿐 아니라 전국 합산 득표에서도 압도했다. 두 정당만 놓고 비교해보면 더불어민주당은 무려 623만1896표를 더 받았다. 12년 전, 열린 우리당이 완패한 2006년 지방선거의 표차(531만1037표)보다 90만표 이상을 더 받았다. 표차를 견인한 것은 서울과 경기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에서 민주당은 약 146만표를 더 받았고, 경기에서는 약 125만표를 더 받았다. 전국적으로 한국당에 뒤진 곳은 대구(16만1053표)와 경북(25만221표)에 불과했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거둔 성적과 비교하면 어떨까.
역시 대폭 늘었다. 380만7032표가 전국적으로 늘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 2014년 지방선거 때 받은 표에 비해 줄어든 지역은13만 2674표가 줄어든 서울이 유일하다. 박원순 시장의 득표가 재선 때보다 줄어든 것은 거물정치인(정몽준)과 사실상 양자대결이었던 2014년 지방선거에 비해, 야당에서 대선주자급 후보 2명(김문수· 안철수)이 나와 3자구도로 경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 ‘성적’과 비교했을 때 가장 괄목할 만한 결과를 가져온 곳은 경기도다. 이재명 당선자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보다 88만8797표를 더 얻었다. ‘혜경궁 김씨’, 배우 김부선씨 관련 의혹 등을 돌파하고 얻은 성과다. 막판 ‘깜깜이 선거’ 기간 중 판세에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과 다른 결과다. 물론 향후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과 구분해 “남북화해를 앞두고 접경지대 최대 승부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화해 행보를 반대하는 당의 후보가 당선돼선 안된다”는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 결과일 수도 있다. 여러 지표들을 결합해 분석해야겠지만 어느 요인이 더 결정적이었는가를 규명해내는 것은 가능하다.
경상남도(38만2124표)와 경북도(29만2961표)가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한 수치다. 김경수 후보가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득표한 94만1491표 중 약 40%가 지난 지방선거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받은 총득표수는 1419만1438표다. 이 득표수는 앞서 거론한 현 민주당 계열(‘진보’)이 단독으로 받은 최대치인 2012년 문재인 후보 대선 득표 수치에 육박한다. 지방선거·총선·대선을 가리지 않고 받은 총득표수를 합산해 추이를 살펴보면 민주당 지지 유권자 규모는 2006년 지방선거 때의 득표수(531만1037표)에서 지난 12년간 거의 3배 가까이 성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대패했지만 역시 전체 투표수를 합산해보면 지난해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받은 표보다 약 10만6633표를 더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준표 후보의 지난 대선 결과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성적을 비교하면 서울에서 20만6798표, 대구에서 9만5040표, 경북에서 9만4452표가 빠졌다. 해당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의 ‘선전’ 때문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포인트다.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핵심구호로 내 건 당 지도부의 전략적 실패다. 반면 경기도에서는 자유한국당의 표가 오히려 48만5088표 더 늘었다.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둔 남경필 현 지사가 대선 때 홍준표 후보보다 ‘분투’했음에도 선거에서는 패배한 것이다.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지방권력은 ‘펀더멘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주간경향>은 지난 4월 ‘보수 몰락’을 다룬 기사에서 한국 사회의 주류 교체로 요약되는 현재 한국 사회 변화의 기저에는 유권자 구성이 변하고 있고, 뚜렷한 코호트 효과를 보이는 86세대들의 ‘연령효과 지체’와 세대동맹이 현재의 ‘민주당 전국정당화-자유한국당 위축’ 현상의 원인에 해당한다는 가설을 내놓은 바 있다. 지금의 지방선거 결과가 점점 더 뚜렷해져가는 유권자 구성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까.
文정부도 집권 3년차 정권심판론 작동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