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당일인 6월 13일 저녁 6시가 임박한 시각, 대구지하철 범어역 6번출구 쪽에 위치한 권영진 자유한국당 대구시장 선거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맨 앞자리에서 TV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권 시장과 100여명의 선거사무원, 지지자들의 얼굴에서도 웃음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6시가 됐다. 출구조사에서 권영진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임대윤 후보를 11% 가까이 앞서는 결과가 나오자 박수와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졌다. 하지만 대구·경북(TK)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의 우세가 발표되자 권 시장 사무실의 분위기는 다시금 가라앉았다.
권영진 선본의 정종국 행동나눔본부장은 “출구조사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이거 잘 하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 중에는 권 시장이 35.9%, 임 후보가 32.8%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도 있었다. 권영진 선본에서는 여론조사 비공표 기간에도 수시로 여론 동향을 살핀 것으로 보인다. 권영진 선본 입장에서는 선거 마지막 일주일간 판세가 계속 오르락내리락 했다고 한다. 정 본부장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이 되자 오히려 민주당 후보가 점점 따라잡는 걸로 나왔다. 현장에 유세를 나가도 분위기가 급격히 식은 걸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주 월요일(6월 11일) 들어서 우리 쪽으로 분위기가 올라왔지만 오늘 오후 4시에 임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앞선다는 이야기가 선본에 들어오기도 했다. 투표 종료 시간까지 쉴틈없이 긴장한 채로 계속 전화와 문자를 돌렸다”고 말했다.
시장 선거, 자유한국당 끝까지 긴장
전날인 6월 12일 저녁, 권영진 시장과 임대윤 후보는 각각 대구의 중심가인 동성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였다. 권 시장 측은 저녁 6시부터 2시간 동안 동성로 한가운데에 설치된 무대에서 마지막 유세를 했다. 6시가 되자 댄스팀으로 보이는 권 시장 측 선거운동원들이 안무를 시작했다. 싸이의 ‘젠틀맨’, 트와이스의 ‘치어 업’ 등 동성로를 오가는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노래가 15분가량 이어졌다. 노래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금세 동성로 무대 주변으로 인파가 가득 찼다. 무대 맨 앞에는 50~60대 시민들이 자리에 앉아서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친숙한 노래 때문인지 20~30대 중에서도 유세인파에 들어와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대구백화점 앞에 서서 연설원들의 연설을 듣고 있던 70대 여성 김숙희씨(가명)는 “젊은이들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싫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당이 기호 2번이 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노인들은 무조건 1번만 찍는다’며 무시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70·80살 먹은 노인들도 다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시대인데 우리가 기호도 제대로 못찍겠냐”며 손에 든 휴대폰에 담긴 유세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연설원들의 발언이 20분 정도 진행되고 드디어 권영진 시장이 무대 왼쪽에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권 시장 주변으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권 시장은 악수 요청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5분가량 무대에 들어오지 못했다. 간신히 무대 앞에 도착한 권 시장은 다시 자신을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눈을 맞추며 한 명씩 악수를 했다. 권 시장과는 손이 닿지 않는 데 서 있던 시민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들고 권 시장을 촬영했다.
저녁 7시부터는 동성로의 입구라 할 수 있는 대구 중앙파출소 앞에서 임대윤 민주당 후보의 유세가 시작됐다. 임 후보의 유세장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보였다. 등에 기타를 멘 대학생도 있었고,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온 부부도 간간이 보였다. 하지만 열광적인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유세차량 앞쪽에 서 있던 임 후보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시민들이 간혹 보였다. 하지만 권 시장보다 인지도가 낮아서인지, 임 후보가 먼저 시민을 찾아가 악수를 청하는 일이 더 많았다. 유세차량 앞에도 일반시민들보다 파란 옷을 입은 민주당 선본원들이 더 많이 앉아 있었다. 유세에서 사용된 음악도 유행가가 아니었다. 촛불집회에서 불렀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은’이나 트로트 풍의 선거노래였다.
자유한국당 후보와 격차 크게 좁혀
권 시장 선본의 정종국 본부장은 “12일 마지막 유세를 준비하면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는 동성로 유세에서 임 후보에게 밀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 본부장은 “막상 양쪽의 유세현장을 비교해 보니 우리 쪽의 유세가 오히려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노래도 틀었고, 지지자들도 더 열성적이었다. 민주당 쪽의 유세는 너무 딱딱했고, 시민들의 호응도 우리보다 적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개표 결과 대구에서는 과거처럼 자유한국당이 시장과 기초단체장을 싹쓸이했다. 다만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의 민주당 후보들 중 40% 이상을 득표하거나, 자유당 후보와의 격차가 5% 이내인 후보들도 있었다는 점은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민주당 대구시당 쪽에 이번 선거 패배의 원인을 물어봤다.
당초 민주당 대구시당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수성구청장과 동구청장 2곳에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막상 개표가 시작되자 수성구청장 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 김대권 후보가 일찌감치 앞서 나갔다. 대구 기초단체 선거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박빙이었던 것은 동구청장 선거다. 동구청장 선거에서는 개표가 70% 이상 진행될 때까지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후보가 박빙세를 이어갔다. 6월 14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배기철 한국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졌다.
13일 오후, 권 시장 사무실 바로 옆에 위치한 남칠우 민주당 수성구청장 후보 사무실을 찾았다. 남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후보를 앞섰지만, 개표 결과 12% 차로 낙선했다. 남칠우 선본의 박남진씨(가명)는 자신을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당 활동을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만큼 분위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수성구가 대구에서도 가장 생활수준도 높고 민주당 지지세가 높다. 전에는 선거운동을 나갈 때마다 빨갱이 소리는 한 번씩 꼭 들었고, 선거운동원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돕겠다고 사무실을 찾는 분들이 많아서 저희도 놀랐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박씨는 아직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은 시점임에도 “결과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 지지율에 힘입어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선전하고 있지만 아직 대구 민주당의 풀뿌리가 약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씨는 “사실 각 지역 후보 경쟁력보다는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올해 초만 해도 한국당에 있던 분들까지 공천했다. 중앙당에서 대구를 찾아오고 공중전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한국당처럼 풀뿌리 조직과 긴밀히 연계된 선거운동을 하기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물론 대구 민심의 변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대구시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27석 중 4석을 확보했고, 대구시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102명 중 45명이 당선됐다. 박씨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의 성과를 무시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바닥 민심과 맞닿아 있는 게 기초의원들이다. 대구에도 1만명 이상의 민주당원이 있는데 기초의원이 평소에 활동을 해야 뿔뿔이 흩어져 있는 당원들이 뭉칠 수 있다. 이 힘을 바탕으로 2020년 총선에서 풀뿌리 선거운동이 가능해진다면 지각변동에 가까운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도 이번 선거유세가 과거보다 쉽지 않았다. 권영진 선본의 한 관계자는 “밖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때문에 예전보다 시민들의 호응이 줄어들었고, 안에서는 보수가 분열했다. 바른미래당도 저희를 ‘가짜 보수’로 규정하고 선거 기간 내내 여당보다 같은 보수야당을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나마 한국당 대구시당이 정권심판론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구시당에서는 정권심판 이야기를 선거기간 내내 거의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정권이 잘한 부분에 대해선 인정을 하고 칭찬을 했다. 우리는 지난 4년간 한국당 후보들이 일을 잘 해왔다는 점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진 동구청장 후보 사무실을 찾았다. 동대구역 인근의 배기철 한국당 후보 사무실에서 만난 임인환 사무국장은 “처음 여론조사를 할 때만 해도 저희 측(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강대식 후보의 양강구도가 될 줄 알았고, 민주당 서재헌 후보는 신인이라서 크게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막상 여론조사 결과에서 민주당 서재헌 후보가 1위로 나와서 저희도 솔직히 당황했다. 선거운동을 해봐도 젊은 사람들 반응과 고령층의 반응에서 확실히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박효정 홍보팀장은 “전보다는 선거운동이 확실히 어려워진 것은 맞지만, 대구가 워낙 대대로 자유한국당을 지지해온 흐름이 있는 데다가 한국당을 버리는 것은 곧 가족을 배신한 것처럼 여기는 정서가 있다”며 “강대식 후보가 의리를 버리고 바른미래당으로 갔다는 정서가 퍼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강 후보의 표가 한국당 배 후보 쪽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이 끝이 아니다, 서서히 바뀌고 있다”
13일 저녁, 배기철 선거사무실 인근에 위치한 서재헌 민주당 후보 사무실에서는 10여명의 지지자들이 초조하게 선거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출구조사에서 임대윤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의 결과가 예상보다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사무실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서 후보의 얼굴은 오랜 기간의 선거운동으로 인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선관위 홈페이지 개표 집계로는 서 후보가 한국당 배 후보에게 1000여표 뒤지는 것으로 나온 시점이었다. 그는 “선관위보다 빨리 소식을 알기 위해 개표소에 사무원들이 나가서 실시간으로 집계상황을 전하고 있다. 선관위에도 곧 반영되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500여표 앞서고 있는 데다가, 인구가 많고 평균연령이 젊은 지역의 투표함이 아직 안 열렸다”고 말했다. 서 후보는 새벽 4시까지 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에 잠에 들었다고 한다.
낙선이 확정된 이후 서 후보에게 이번 선거의 의의를 물었다. 그는 “대구가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지만 서서히 바뀌고 있다”며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도 여러 차례 도전한 끝에 결국 당선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서 후보는 “일단은 저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일주일간은 지역주민들께 낙선인사를 드릴 것이다. 앞으로 진로는 고민 중이지만 이번 선거가 끝이 아니다. 2년, 4년 뒤에도 선거는 또 찾아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