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정순균 더불어민주당 강남구청장 후보가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강남 시니어 플라자’를 찾았다. 파란색 점퍼를 입은 정 후보는 “이전에는 파란 옷 입고는 들어가지도 못 했던 곳”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시니어 플라자를 방문한 한 70대 남성은 정 후보를 두고 “신연희(전 구청장)보다는 낫겠지”라고 말했다.
정 후보가 강남구청장에 당선되면서 강남구는 23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출신 구청장을 갖게 됐다. 정 당선인은 당선 후 “투표 하루 전날, 삼성동에서 시작해 신사역까지 10㎞ 정도를 걸으며 유권자들을 만났다. 명함을 나눠드리니 저를 알아보시고 인사를 해주시고 이미 ‘1번 찍었다’고 말해주는 분들도 많았다”며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번에는 바꿔야 한다’는 열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 당선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김종현씨(42·가명)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나고 자라 현재는 압구정동에 산다. 김씨는 제15대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이후에도 김씨는 죽 보수당 계열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그는 “이명박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박근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건축 문제 등 민주당 안심하긴 일러
하지만 지난해 국정농단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김씨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부모님 역시 지난해를 계기로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당에 대한 지지를 사실상 철회했다. 김씨는 “지금 민주당이 잘한다기보다는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새로운 쪽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민주당은 뭐든지 규제를 하려고 하는데 그런 부분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청담동 토박이인 박소연씨(32)는 자유한국당 소속인 신연희 전 구청장에게 실망해 민주당으로 마음을 돌렸다. 박씨는 “안 그래도 강남구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데 신연희 전 구청장 때문에 더 이미지가 망가졌다”며 “강남구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섬처럼 돼버렸다. 강남구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구청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안심하기에는 일러 보인다. 재건축이나 세금 등 예민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박씨 등에 따르면 강남구 안에서도 크게 테헤란로 북쪽과 테헤란로 남쪽으로 나뉜다. 박씨는 “대치동, 역삼동, 도곡동에는 아이 교육 때문에 잠시 들어온 사람들 비중이 높다. 반면 청담동, 압구정동, 삼성동 쪽에는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며 “여기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파구, 8년 전부터 서서히 변했다
강남구청장이 ‘이변’이라면 민주당 송파구청장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18년 전이지만 송파구는 민선 1기와 2기에 민주당이 구청장을 가진 경험이 있다. 송파구는 강남3구 중 서초구와 강남구에 비해 보수색이 옅은 곳으로 분류된다. 이는 18대 대선에서 나타난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격차는 강남구(20.6%), 서초구(17.6%), 송파구(4.6%) 순이었다.
박춘희 자유한국당 후보가 3선에 도전한다는 사실도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박성수 당선인 캠프 관계자는 “현장을 다녀보면 박춘희 구청장 8년 동안 송파구가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면서 “심지어 박춘희 전 구청장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주민들도 세 번이나 연이어 구청장을 한다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송파구 삼전동에 거주하는 최대만씨(80)는 “박춘희 전 구청장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른다”면서도 “박춘희는 오래 하셨으니까 이제는 박성수가
해봐야 한다. 오래 했으면 후대로 넘겨주는 게 이치다”라고 말했다. 이혜민씨(42·가명)는 “후보들 이름은 모른다. 투표소 가서 봐야 알 것 같다”면서도 “특별한 기준은 없고 너무 오래 한 사람은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9일, 송파구 석촌동 석촌호수 교차로에서 열린 박성수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던 김명자씨(71)는 “박춘희 후보가 야무지고 지난 8년 동안 일도 잘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힘을 실어주고 싶다”면서도 “자유한국당은 지지하지 않는다. 지난 정부에서 박근혜가 버려놨고 홍준표가 말을 함부로 하니까 당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송파을 보궐선거까지 합쳐서 송파구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최씨는 송파을 보궐선거를 두고 “최재성(민주당 후보를) 찍었다”며 “최재성밖에 안 나왔다”고 말했다. 배현진 자유한국당 후보와 박종진 바른미래당 후보가 그만큼 존재감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보궐선거에서 최재성 당선인은 54.4%, 배현진 자유한국당 후보는 29.6%를 획득했다.
“민주당, 문재인만 강조해서는 한계 있을 것”
반면 서초구는 서울 25개구 중에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됐다. 현역 구청장이 조은희 당선자다. 조은희 당선인은 52.4%를 획득해 이정근 민주당 후보(41.1%)를 11.3% 앞섰다. 여기에는 조은희 당선인 개인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주간경향>이 만난 서초구민 대부분이 자유한국당에 대해서는 실망을 표했지만 조은희 당선인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줬다.
50대 초반인 서동규씨는 서초구에만 20년을 거주했다. 지금은 잠원동에 산다. 서씨는 “그동안 보수정권이 서초구민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믿음이 깨졌다. 보수정당이 주민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는커녕 자기들 살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조은희 구청장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는 민주당 지지자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직장과 집이 모두 서초구에 있는 강진구씨(32·가명)는 민주당 지지자지만 구청장 투표를 두고는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강씨는 “민주당이 제 정치성향과 맞고 이정근 후보도 여성후보라서 공보물을 자세히 봤다”며 “하지만 경력이나 공약이 부족했고, 공보물 상당수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강조하고 있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어 강씨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금이 강남3구의 ‘보수불패’ 신화를 깰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대통령 지지율이나 당 지지율만 믿고 공천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조은희 후보는 보수당이지만 서리풀원두막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많이 냈다. 이정근 후보가 조은희 후보에 비해 경력이 밀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나아가 주민들은 조은희 당선자의 선거운동도 높게 평가했다. 방배동에 거주하는 권지인씨(36)는 조 후보의 선거운동 차량을 자주 만났다. 권씨는 “차량이 작아서 시의원이나 구의원 유세차량인 줄 알았는데 조은희 후보 차였다”며 “아이가 깰까봐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 시간 내내 음악을 틀고 춤추는 유세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권씨는 조은희 당선자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