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Live 고재열 기자 입력 2015.10.01. 14:22
남자가 요리를 사랑할 때 여자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것은 새로운 문제와의 만남을 예고한다. 그는 각종 팬의 코팅을 다 긁어놓을 것이다. 가스레인지 주변에는 여기저기 기름이 튀어 있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꺼낸 재료는 그대로 밖에 방치될 것이고 설거지통에는 평소보다 곱절의 냄비와 그릇이 쌓일 것이다. 그가 요리한 음식의 양은 너무 많고 간은 너무 맵거나 짜고 조미료 맛으로 얼룩져 있을 것이다. 요리하는 내내 조리도구와 양념의 위치를 묻느라 귀찮게 한 그는 요리가 끝나면 맛있었다는 답을 강요하고 요리한 것에 대해 몇 날 며칠 생색을 낼 것이다.
차승원·백종원 같은 남자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유는 이런 평범한 남자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남자들이 착각을 한다. 넘치는 쿡방을 보고 전국의 ‘요리맹’들이 ‘나도 할 수 있다’며 갑자기 프라이팬과 냄비를 들고 덤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백하건대 앞서 열거한 민폐는 모두 기자가 직접 경험했던 것들이다. 이런 ‘어둠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나름 인정을 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최근 아이 학교에서 열린 ‘아빠는 요리사’ 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다. 비결은? 요리 방송에서 나오는 팁과 주변 셰프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요리하는 남자’를 괴로워하는 이유는 기본도 모르면서 ‘나만의 요리’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요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넘치는 자신감이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자중시키면서 진정한 요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유명 셰프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요리를 산으로 보내지 않고 추석 때 온 가족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들어보았다.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미국 CIA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가 최근 요리법을 배워가 화제가 된 양용진 셰프는 요리에 대한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요리책을 보면서 따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실력이 늘 것이라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만큼 일취월장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감각이 무뎌서 그런가 보다 하며 포기하거나 요리학원을 찾게 되기도 한다. 요리를 기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리는 기능이나 암기 과목이 아니다. 요리는 이해력을 필요로 하는 자연과학이고 새로운 발견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모험과 탐험의 세계다. 또한 요리는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는 고고학이고 자연 물질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물리·화학의 실험실이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요리할 준비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 부암동의 명소 ‘일루’를 운영하는 이정민 셰프는 요리의 순서에 대해 조언했다. '우선 만들 요리의 재료를 모두 꺼낸 후 씻을 것은 씻고 다듬을 것은 다듬어서 넓은 접시에 펼쳐놓는다. 팬이나 냄비 등 조리도구도 미리 준비한다. 칼을 써야 할 때는 색이 묻어나지 않거나 향이 강하지 않은 야채·과일의 순서로 자르고, 이후 고기와 생선을 손질한다. 재료를 손질할 때 큰 접시나 쟁반을 준비해서 재료별로 분류해서 모아놓는다. 이후 굽거나 볶거나 튀기며 요리를 하는데 이때도 야채를 먼저 하고 육류나 생선을 나중에 조리한다면 하나의 팬으로 조리가 가능하다.'
식재료의 선택과 관련해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요즘 가장 ‘핫’한 파인 다이닝(정식 차림)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도전하기 쉬운 것부터 만들어보라고 충고했다. '오버쿡의 위험이 크거나 맛을 내기 어려운 재료보다는 새우나 조개처럼 맛내기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닭가슴살이나 오리처럼 테크닉을 요구하는 부위보다는 대충 구워도 맛있는 쇠고기 안심 같은 부위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고기의 경우 시간이 충분하다면 여러 재료를 넣고 저온에서 오랜 시간 끓이면 누구든 맛을 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리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마무리하는 것이다.'
튀김은 ‘밀계빵’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제는 조리법이다. 음식 관련 책을 가장 많이 낸 요리사 박찬일 셰프는 튀기고 볶는 조리법과 관련해 이런 팁을 주었다. '음식은 튀기면 맛있어지고 볶으면 그럴듯해진다. 튀길 때는 온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온도계를 사둘 필요가 있다. 팬에서 연기가 막 나기 시작하면 불에서 떼었다가 1분 후 중불에서 튀기면 된다. 튀김은 ‘밀계빵’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재료에 밀가루-계란-빵가루 순서로 묻힌다는 뜻이다. 간은 가장 마지막이다. 국물 음식은 되도록 육수를 쓰고 국물의 간은 좀 싱겁다 싶게 해라.'
양용진 셰프는 불 조절 요령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재료의 상태와 용기, 조리법에 따라 불 조절의 정도가 다르다. 불을 사용해서 음식을 익히는 것은 식재료가 본래 가지고 있던 수분을 증발시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결국 원리만 이해하면 불 조절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바로 증발시키는 수분의 양과 반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증발시킬 수분의 양이 많을수록 낮은 불을 이용해서 장시간 조리하고, 증발시킬 수분이 별로 없다면 강한 불에서 잠깐 가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의 경우 육즙을 가둬서 증발시키지 않으려면 강한 불에서 겉면이 빨리 익혀지도록 굽고, 갈비찜이나 곰국처럼 뼈나 고기의 육즙을 충분히 뽑아내야 하는 요리는 약한 불로 오래 가열해야 하는 식이다.'
다음은 간 맞추기다. 동료 요리사들과 함께 출전한 2015 상하이 세계요리왕대전에서 단체전 특금상을 수상한 워커힐호텔 김순태 조리장은 간 맞추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단 국물 있는 요리의 간 맞추는 것을 연습하라. 간장을 넣을지, 소금을 넣을지, 된장을 넣을지 알아야 한다. 소금은 맑은 국물에 색을 변하지 않게 하고 싶을 때 좋다. 하지만 소금을 이용하면 맛이 갈라진다. 이때 설탕을 넣어주면 갈라지는 맛을 잡아준다. 육수가 없을 때 간장은 대체재 구실을 한다. 하지만 진간장·조림간장·국간장의 용도를 알고 사용해야 한다. 된장을 풀 때의 효과도 파악해두어야 한다. 이렇게 어느 포인트에 어떤 양념을 넣을지 아는 것이 요리의 출발이다. 계속 맛을 보면서 변화를 느껴야 한다. 그래야 양념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이번 추석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전 팁이다(더 많은 추석 요리 레시피는 100·102쪽 기사 참조). 음식 전문 기자 출신으로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박준우 셰프는 남자들이 전 부치기를 도울 때 유용한 팁을 귀띔했다. '전을 부칠 때에는 기름도 자신감도 과유불급이다. 팬 전체를 기름으로 뒤덮을 필요는 없다. 전이 기름을 먹어가며 노릇하게 되면 그때그때 수시로 기름을 보충해주면 된다. 또 하나는 온도다. 성급해서도 안 되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 팬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을 올리면 재료가 기름을 많이 먹고, 온도에 욕심을 내어 팬을 너무 달구게 되면 재료 안까지 익기도 전에 겉면이 까맣게 타버린다. 양식 요리사들의 스테이크 굽기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차가운 팬을 처음 달굴 때는 강불에 올려도 좋다. 팬에서 열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 싶을 때 중불로 바꿔 굽는다. 팬이 제대로 달궈졌는지 궁금하다면 젓가락이나 뒤집개에 반죽을 묻혀 기름이 있는 부분에 떨어뜨리거나 찍어보면 된다. 반죽이 구워지는 정도를 보고 온도를 가늠할 수 있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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