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동통역언어지능연구부 책임연구원
입력 : 2016.12.03 07:00
[인공지능 기술 어디까지 왔나]
1950년대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과학자들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동기계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존 매카시 교수는 1955년 당시로서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이 자동기계에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인공지능은 '인식·이해·학습·추론·예측 등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기계와 전자 기기는 사람의 '육체'를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사람의 머리를 대신하는 기술입니다. 인공지능이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딥 러닝 기술로 비약적인 발전
올해 초 인터넷 기업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는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모든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알파고는 '딥 러닝(deep learning·심층학습)' 기법을 활용한 인공지능입니다. 2000년대 중반 캐나다 토론토대 제프리 힌턴 교수가 집대성한 '딥 러닝'은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스스로 규칙을 찾도록 학습시키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수많은 고양이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서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고양이의 특징을 찾아내고 고양이를 다른 사물이나 동물과 구분하는 것입니다. 특히 딥 러닝은 수많은 데이터를 새롭게 분류하고 숨은 인과(因果)관계를 찾아내는 '빅데이터' 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딥 러닝을 적용한 인공지능에 빅데이터를 제공해 주면 그 안에서 스스로 규칙이나 해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수만 장을 알아서 분류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후변화처럼 복잡한 요인이 얽혀 있는 문제도 해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가속도를 붙입니다. 컴퓨터의 연산 속도 등 하드웨어의 비약적인 발전과 수많은 서버를 연결할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은 인공지능의 두뇌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계산할 수 있으면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더 많아집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사람과 두뇌 대결을 해보는 것입니다. IBM은 1997년 인공지능 수퍼컴퓨터 '디퍼블루'로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겼고, 2011년 디퍼블루의 아들 격인 '왓슨'으로 미국 CBS의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해 퀴즈왕이 됐습니다. 기존의 컴퓨터나 인공지능은 문제를 주면 검색할 수는 있어도,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결정하지 못한 채 검색 결과만 나열했습니다. 하지만 왓슨은 컴퓨터의 명령어가 아닌 사람의 언어를 분석해 정답을 뽑아냅니다.
美 퀴즈쇼 출연 퀴즈왕 된 '왓슨'
왓슨은 현재 금융, 의료, 법률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병원에는 '왓슨 종양학과'도 개설됐습니다. 환자의 증상을 입력하면 왓슨이 전 세계의 의료 논문과 병원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가장 유사한 증상을 찾아 의사의 진단을 돕습니다. 정확도가 80% 정도로 경험 많은 전문의 수준입니다. 얼마 전에는 2주 이상 병명을 찾지 못한 한 어린아이의 증상을 왓슨이 2시간 만에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한국도 길병원에 왓슨 시스템이 다음 달 도입됩니다.
전 세계 대형 금융사들도 가장 빠른 시간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공지능 컨설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법률·특허 분야에서는 이미 변호사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로봇·자동차에도 인공지능 활용
자율주행차에도 인공지능이 속속 적용되고 있습니다.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미리 프로그래밍해 컴퓨터에 입력할 수는 없습니다. 차가 스스로 판단하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려면 인공지능을 탑재해야 합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의 물체나 차선을 인식하고 길을 찾는 과정 모두 인공지능의 영역입니다.
제조업 분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로봇은 '뇌'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조작하거나 프로그램을 짜서 넣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을 결합하면 인간 노동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습니다. 지치지도 쉬지도 않는 인공지능 로봇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서비스 시장에서도 인공지능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등을 분석해 완벽히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조업과 서비스업 같은 데서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일자리 부족 현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시급히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다만 현재의 인공지능은 사람이 원하는 특정 분야에서 그 일만 잘하도록 최적화된 '약(弱) 인공지능'입니다. 약 인공지능은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강(强) 인공지능'은 아직 아무도 만드는 방법을 모릅니다. 현재 단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갖거나 인간을 공격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합니다.
◇중국보다 뒤처진 한국
2019년 인공지능 시장 36조원대
美·中·日·유럽 등 10년 계획,
수조원대 투자… 적극 개발 중
시장조사 기관인 IDC에 따르면 인공지능 시장은 2014년 35억3400만달러에서 2019년 312억3700만달러(약 36조7000억원)로 10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평균 54.7%에 이르는 성장률입니다. 미국은 지난 2013년 4월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정책을 발표하고 인공지능 기초연구에 10년간 총 30억달러(약 3조5325억원)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올해 인공지능 연구전략센터를 설치하고 10년간 1000억엔(약 1조4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럽에서는 2013년에 시작한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통해 10년간 10억유로(약 1조2500억원)를 투자하고, 중국은 스마트홈·스마트카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각종 기술을 개발하는 데 1000억위안(약 16조9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한국 기술, 중국보다 1.6년 늦어…
하루빨리 투자 나서 차이 좁혀야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분석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인공지능·인지컴퓨팅 분야의 기술 수준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비교할 때 약 2.4년 뒤져 있습니다. 중국보다도 1.6년 늦습니다. 인공지능은 기술력 향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속하는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먼저 앞서간 나라나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더 빨리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이 지금 이 시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영원히 해외 기술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마트폰에 질문하면 척척 대답
[실생활 속 인공지능의 활용]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 '시리' 등
검색 수준 넘어 대화하듯 답변
실생활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입니다. 구글이 지난달 선보인 스마트폰 '픽셀'에는 대화형 음성 비서 인공지능인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돼 있습니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사용자와 대화하듯 질문·답변을 주고받으며 원하는 정보를 찾아줍니다. 예컨대 "영화 '레버넌트' 감독은 누구지?"라고 물으면 감독의 이름을 알려주고, 이어 수상 실적을 질문하면 받은 상의 목록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도 내년 초 선보일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S8에 인공지능을 탑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삼성전자는 TV·세탁기·냉장고 등을 스마트폰과 연결하고 인공지능으로 제어하는 기능을 탑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애플의 '시리',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코타나'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 비서 프로그램입니다.
구글·아마존이 이미 판매 중인 스피커 형태의 '홈 허브(home hub)' 제품에도 인공지능이 들어갑니다. 홈 허브는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된 가전제품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기기로, 인공지능을 통해 사용자의 말을 알아듣고 명령을 척척 수행합니다. 사용자가 방에 놓인 스피커를 향해 "주방 불 좀 켜줘"라고 말하면 무선 연결된 주방의 형광등이 자동으로 켜지는 식입니다. 검색을 통해 사용자의 질문에 답을 주거나 스마트폰에 입력된 일정을 확인해 알려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반복해 사용할수록 똑똑해집니다. 가령 인공지능을 사용해 식당 예약을 여러 번 하게 되면 나중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으로 예약해 줘"라고만 해도 어느 식당인지 인공지능이 맞힐 수 있게 됩니다.
엔씨소프트, 게임에 AI 도입…
이용자 실력 맞춰 설정 달라지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지난 4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화면을 '읽어 주는'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숲 사진이 올라왔다면 "야외에서 촬영했고 나무와 식물·구름이 나온다"고 음성으로 알려줘 사용자가 머릿속에서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내용에 대한 정보를 별도로 입력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사진 속 물체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게임회사 엔씨소프트는 내년 초 출시할 PC게임 '리니지 이터널'에 인공지능을 도입했습니다. 이용자의 실력이나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 게임의 배경이나 주어지는 임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생활 속 구석구석을 파고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인공지능이 일상의 모든 것을 도와줄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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