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박기원 박사의 CSI 파일]유전자 분석으로 추가범죄 드러난 절도범 "난 당시 감옥에 있었다"…그럼 범인은 누군가?

Shawn Chase 2015. 9. 20. 15:37

 

  • 박기원
  • 김도원


 

입력 : 2015.09.20 07:34

서울 강서구의 모 빌라 1층. 누군가 만능 열쇠꾸러미로 출입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집주인은 잠에서 깼지만 너무 무서워 이불 속에서 벌벌 떨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범인은 여기저기 뒤진 뒤 무엇인가를 호주머니에 넣고 달아났다. 그제서야 집주인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현금 약 30여만원과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은 침입하자마자 정확하게 돈이 들어 있던 서랍만을 뒤진 뒤 그곳에 있던 현금과 귀금속만 훔쳐 달아났다. 돈을 훔쳐 나가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으로 경찰은 판단했다.

범행 현장에 대한 감식을 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범인을 단정할 만한 증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피해자 집 인근의 골목으로 가는 곳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했지만 너무 흐려서 범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윤곽으로 보아 범인은 30대 정도의 남성인 것으로 추정됐다.

수사 범위를 넓혀 인근 귀금속상에도 범인 인상착의를 보여주고 신고를 부탁했다. 하루가 채 지나가기도 전에 한 귀금속상에서 긴급 호출이 왔다.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귀금속상 주인은 시간을 끌며 용의자를 잡아 놓고 있었다. 붙잡힌 용의자가 팔려던 귀금속은 피해자가 절도 당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범인은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범행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평소 그 집을 유심히 살펴본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마스터키로 쉽게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구강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이렇게 경찰서에서 의뢰되는 용의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이 된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이미 일어났던 미해결 사건과 일치하는지를 검색한다. 일치하는 사건이 나오면 바로 경찰서로 통보한다.

이 사건 범인은 2006년 12월과 2007년 1월, 2009년 3월에 각각 강간 및 성폭력 사건을 더 저지른 것으로 통보됐다. 절도사건 용의자인데 이전에는 계속 성범죄를 했다는 것이 좀 의아했지만 유전자형이 정확하게 일치하였기 때문에 일치 결과를 통보했다.

검색 결과를 통보한 후 며칠이 지나서 해당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범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진술한다고 했다. 특히 유전자형이 일치했던 2006년 12월, 2007년 1월에는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험 과정에 실수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같이 실험을 했던 용의자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때서야 담당자는 범인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것을 얘기했다. 다른 쌍둥이 형제가 저지른 범죄였다면 그런 결과가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형이 정확하게 같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두 사건은 이 사건 범인이 아니라 다른 쌍둥이 형제가 한 것이었고 나머지 한 건은 이 사건 범인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범죄는 유전적인가’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이글은 읽는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이 어떤지도 궁금하다. 이와 관련해,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으로 유전적인 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유전적 요인설과 태어난 후 환경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환경적 요인설이 있다.

이탈리아 형법학자 베카리아(C. Beecaria)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개인 의지에 달려 있다며 환경적 요인설을 주장했고, 이탈리아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oroso)는 1876년에 발간한 ‘범죄인론’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그 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며 유전적 요인설을 주장했다. 최근엔 범죄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증명하려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범죄가 어느 한 가지 원인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범죄는 범행을 한 개인에게 그 책임이 귀착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가 없는 세상은 없는 것 같다. 사회에 탐욕과 갈등이 존재하는 한 범죄는 일어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해 범죄를 줄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