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 입력 2017.08.25. 17:20
◆ 멸종 기로에 선 꿀벌
살충제 사용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생명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꿀벌'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은 꿀벌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멸종위기종 보호법에 따라 하와이 토종 꿀벌 7종과 꿀벌의 일종인 호박벌은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USFWS)이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는 종이 됐다.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지구온난화, 전염병 바이러스, 전자파 등으로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니코틴계의 신경 자극성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성분이 주범으로 꼽힌다. 지난 6월 3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벼룩잎벌레 등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가 꿀벌 집단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영국 연구진의 논문이 실렸다. 영국과 독일, 헝가리에서 20㎢ 면적의 농장에 살충제를 뿌렸더니 헝가리에서 일벌이 24% 줄어드는 등 꿀벌 개체 수가 급감했다는 대규모 실험 결과였다. 면역력이 약해진 꿀벌들이 겨울을 나지 못해 줄줄이 죽어난 것이다.
10여 년 전인 2006년부터 이 살충제를 꿀벌들이 하나둘 실종되는 '꿀벌 군집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연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온 벌들이 비행 도중 방향감각을 잃고 돌아갈 집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벌통에서 벌이 사라지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탓이다. 꿀벌들이 치매를 앓듯 '내비게이션 고장'으로 끝없이 헤매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살충제에 직접 노출되지 않아도 토양 등에 머물러 있던 화학 성분이 어디로 스며들지 모른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 벌의 위기, 인류의 위기
폴란드 바르샤바공대도 지난해 꿀벌을 모방해 꽃가루를 전달하는 B-드로이드 로봇을 개발했다. 지난해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발표한 '수분 및 수분매개체 평가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인류의 식량작물 107종 가운데 91종이 벌과 같은 수분매개 곤충을 통해 번식한다. 매개곤충이 자취를 감추면 곧바로 곡류와 과일 등 인간 먹거리가 감소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 50년간 지구상에서 식량 생산에 도움을 주는 벌의 개체 수는 37% 줄었고,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40% 이상의 벌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바이엘, 신젠타, 수미토모의) 살충제 3종이 행동장애, 발달장애, 생리적 장애를 일으킨다고 기정사실화하고 아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며 "무조건 한국이 똑같이 따라 하자는 게 아니라 최소한 우리나라 환경과 농업 형태에 맞는 꿀벌 유해성 평가를 해서 살충제 사용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영구 금지까지 검토 중이며,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환경보호를 위해 한 일도 1900년대 후반부터 90% 이상 사라진 호박벌을 보호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려 살충제 퇴출 근거를 만드는 일이었다.
◆ 퇴출되는 살충제, 한국은
국내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광범위한 지역과 개화기에 한해' 살포를 주의하도록 권고할 뿐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단위면적당 살충제 사용 면적이 가장 높은 나라고, 국내에서 사용되는 살충제 3분의 1이 네오니코티노이드일 정도로 사용량이 많다"며 "꿀벌들이 농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는 게 분명한데, 해외와 달리 유해성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증명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권형욱 인천대 매개곤충자원융복합센터장은 "우리나라도 농약을 많이 치기 때문에 봄철마다 적화제를 맞은 꿀벌들이 벌통 앞에 비실비실대거나 죽은 채 발견된다"며 "살충제를 직접 맞기도 하고 살충제가 뿌려진 꽃에 앉았다가 독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살충제가 '꿀벌 군집 붕괴'의 원인이라는 연구가 국내에서 진행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살충제와 꿀벌 죽음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까닭은 미국, 유럽과는 다른 농약 사용법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살충제를 씨앗 표면에 코팅한 뒤 대단위 면적 농장에 심는 유럽, 미국과 달리 한국은 파종을 통해 농약을 처리하는 비율이 작아 피해가 크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간접적 경로 등을 통해 해를 미칠 수 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잠사양봉소재과장은 "우리나라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공중에서 뿌리는 항공방제를 실시하기도 하고 과수원에서 사용한다"며 "물론 꿀벌 반수치사량(생물의 절반이 죽게 되는 섭취량) 등을 따져 독성을 확인하고 품목별로 안전성을 평가해 인허가를 내주지만, 피해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피프로닐 살충제가 꿀벌 번식도 막았다
수벌 생식기능 떨어져 개체수 급감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살충제에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살충제 계란'에서 처음으로 검출된 성분 '피프로닐' 역시 꿀벌 군집을 붕괴시키는 또 다른 축으로 꼽힌다.
지난 17일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는 기생충 감염과 살충제 '피로포닐' 성분에 동시에 노출됐을 때 수벌(drone)의 생식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교미 성공이 위태로워진다는 프랑스 연구진의 논문이 발표됐다. 꿀벌 군집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수벌의 기능 저하가 꿀벌들의 종 번식을 가로막는다는 연구 결과다. 그동안 피프로닐로 인해 여왕벌이 연거푸 짝짓기에 실패하고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실태조사는 있었다. 다만 피프로닐이 수벌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연구진은 꿀벌들이 주로 감염되는 기생충인 '노제마(Nosema ceranae)균'과 농약에 포함된 공기중 농도 0.1ug/ℓ의 피프로닐이 동반 작용하면 수벌의 생존 능력이 저하된다고 밝혔다. 통상 여왕벌이 20마리의 수벌과 짝짓기를 하는데, 정자의 품질과 다양성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군집이 해체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피프로닐이 꿀벌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국내에서도 '리전트' '리베로' 등 시중에서 판매되는 피프로닐 살충제가 꿀벌의 대량 폐사 원인으로 밝혀진 적이 있다. 2010년에는 서산 간척지 인근 양봉농가에서 700군 이상의 벌통에서 꿀벌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 원인이 항공방제에 사용된 피프로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피프로닐이 꿀벌에 대한 급성독성이 매우 강하고 장기간의 잔류 독성이 있어 약제를 살포하면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는 농촌진흥청 연구도 나왔다. 앞서 1999년 5~6월에도 부석·인지면 일대 양봉농가 83가구의 꿀벌에서 1081통이 집단폐사한 사례가 있다. 서산시가 이 일대 꽃과 꿀벌 사체, 벌통 주변 토양 등을 채취해 농업과학기술원에 기술 검사를 의뢰했더니 이들에서 모두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됐다. 특히 제품 겉면에는 "야생조류·생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하라"는 경고 문구도 등장한다. 애초부터 닭을 비롯한 조류에 대한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경고도 표시돼 있었다는 얘기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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