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Science &] DNA 고고학..3500년전 미라의 死因을 밝히다

Shawn Chase 2017. 11. 3. 18:31

김윤진 입력 2017.09.22. 16:32 수정 2017.09.22. 19:22


고고학의 과학화 '고유전체학'
DNA와 만난 고고학 "널 만난 건 행운이야"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바이킹의 섬'으로 불리는 스웨덴 비르카 마을에서 10세기 전사의 무덤이 발견됐다. 긴 창과 도끼날, 은제 투구, 화살이 관통한 갑옷, 값비싼 암말과 종마가 함께 묻힌 전형적인 장군의 묘지였다. 무덤의 주인이 강력한 군 지도자였음을 암시하는 부장품이 줄줄이 따라 나왔고, 그 누구도 전사가 지배계층 '남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후 1970년 골반 뼈의 생김새가 여성 골격과 흡사하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역사적 상식에 비춰볼 때 무기 등 단서가 일제히 남성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혹은 금세 잠잠해졌다.

그런데 최근 고고학계에서 이 무덤 주인의 정체를 둘러싸고 때아닌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다름 아닌 전사의 DNA였다. 송곳니와 왼팔 뼈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해독했더니 '키 170㎝의 30대 여성'으로 신상이 확인된 것. X염색체만 발견됐을 뿐 Y염색체를 찾을 수 없었다. 연구 결과는 지난 8일 '아메리칸 신체인류학 저널'에 실렸다.

 DNA로 고대인 정체 밝혀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앞에 고고학자들은 이 주인공이 '실제 바이킹 부대를 이끈 게 맞는지' '전투에 참여하긴 했는지' '전사처럼 꾸며진 것은 아닌지' 각종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에 논문의 저자인 헤든 스티나존슨 스웨덴 웁살라대 교수는 "140년 전부터 지금까지 무덤 주인이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한 바이킹 지도자였음을 의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고고학은 그대로인데, 여성 DNA가 나왔다고 다른 가설을 제기하는 것은 역사적 선입견에 따른 이중 잣대"라고 반발했다.

무덤에서 발굴된 지 한 세기 반이 지나서야 문제의 유골이 주목받은 까닭이 무엇일까. 불과 15~20년 전만 해도 유전체 데이터를 이용해 죽은 사람의 생전 모습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개념조차 생소했다. 기껏해야 탄소 동위원소를 분석해 언제적 조상인지 연대를 추정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수천 년에서 수만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고대인의 뼈에서 성별을 비롯한 특징들을 감별해내기 시작한 것은 지놈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부터다.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옛사람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고고학이 첨단 기술을 만나기 시작했고, '고유전체학(paleogenomics)'이란 새로운 학문의 세계가 열렸다. 역사책을 펴듯 유전체 염기서열에 저장된 정보를 되살리면 멸종된 고인류까지도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무얼 먹었는지, 어디로 이동했는지 다 알려준다. DNA 분석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셈이다. 세계적인 고유전체학의 선구자이자 올해 초 지놈 분석으로 한국인의 유전적 뿌리를 밝혀낸 박종화 울산과기원(UNIST) 게놈산업기술센터장은 "유전체 분석 기술을 본격 활용한 '고고학의 과학화'가 이뤄진 지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흩어진 고대인의 DNA 조각을 맞춰 X염색체의 양과 비율을 분석하면 여성(XX)인지 남성(XY)인지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각조각 끊긴 퍼즐 맞추기

현대인과 고대인의 DNA를 분석하는 과정은 같은 듯 다르다. 인간의 세포에는 핵마다 길이 1.8m에 이르는 DNA가 꼬불꼬불 엉켜 있다. 현대인의 경우 침 한 방울, 머리카락 한 올이면 2~4㎛(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의 세포핵 안에 꽁꽁 응축된 DNA에서 30억개 염기쌍을 들여다보고 쉽게 유전 정보를 캐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인류에서 DNA를 찾는 일은 '보물찾기'를 방불케 한다. 오랜 기간 바람과 열을 견뎌내고 뼈 깊숙이 남아 있는 티끌만 한 흔적까지 뒤져야 한다. DNA 가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는 약 521년. 700만년이 지나면 완전히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기온이 높아지면 더 짧아지기도 하고, 산성도가 높은 땅에서는 금방 산화돼 자연 상태에서는 평균 30만~40만년이면 자취를 감춘다. 수십만~수백만 년 전 DNA가 남아 있으려면 서늘하고 물이 흐르는 석회굴같이 저온에서 냉장 보관돼 있든지, 석회를 바른 미라관처럼 공기나 미생물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혀 있어야 한다. 박 센터장은 "조상들도 주로 기후가 따뜻한 평야나 강가에 살았을 텐데 DNA는 추운 동굴 등에 남아 있기 때문에 전체 고대인을 대표하기엔 표본이 편향된 게 사실"이라며 "다만 동시대에 지리적으로 가까이 살았다면 유전적 형질과 생활양식이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DNA는 생화학 처리를 통해 곰팡이, 미생물 등 불순물을 모두 걸러낸 뒤 추출된다. 연구자의 DNA와 섞이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무균실에서 정제한다. 그러나 깨끗하게 뽑아내더라도 오래된 DNA는 1.8m는커녕 잘게 토막이 나 있다. DNA 사슬이 뚝뚝 끊겨 있어 길이도 짧고, 양도 적다. 이 같은 DNA 조각 퍼즐을 맞추려면 통계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양을 늘려야 하는데, 이때 쓰이는 게 DNA 양을 수백만 배 증폭하는 'PCR(중합효소연쇄반응)' 기술이다. 하나의 원본을 갖고 복사기로 여러 부를 찍어내듯 자가 복제하는 것이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적 흔적이 남아 있음을 밝힌 연구에서는 PCR 기술로 먼저 양을 뻥튀기한 뒤 박테리아와 결합해 대량으로 복제하는 과정을 거쳤다.

 슈퍼컴퓨터로 인간 계보 완성

충분한 DNA 샘플을 얻어내면 비로소 '차세대 지놈 해독 기술(Next-Generation Sequencing·NGS)'로 지놈 해독이 가능하다. 17세기 조선시대 아낙네가 성인병인 동맥경화를 앓았는지, 3500년 전 이집트 미라가 심장병 환자였는지 사인도 찍혀 나온다. 30억개 염기쌍을 완전 해독한 '인간 지놈 표준'을 기준으로 비교·분석하면 손상된 DNA도 보정이 가능하며, 파편화된 조각이 의미를 띤 서열로 탈바꿈한다. 박 센터장은 "가령 고대인의 DNA를 해독했는데 지놈 표준과 다르다면 화학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간주하고 표준과 똑같이 바꿔준다"며 "컴퓨터로 이런 오류들을 인지해 교정한다"고 말했다. 염기서열의 특정 부위에서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유전자를 보면 혈액형부터 당뇨, 탈모 등 질병까지 유추할 수 있다. 녹말을 분해하는 효소 등에서 농업에 의존했는지 등 식생활까지 엿볼 수 있다.

인류의 계보와 진화의 역사, 이동 경로는 데이터가 쌓이고 생정보학(Bioinformatics)이 발달할수록 더욱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슈퍼컴퓨터로 수백, 수천 개의 지놈을 동시에 계산하면서 여러 민족 간의 복잡한 관계망을 파악하고 촘촘한 지도를 완성하는 게 고유전체학자들의 임무다. 아프리카인 동아시아인 표준과 비교해가며 '유전 변이'를 파악하고 인종 간 시간적 관계를 추적한다.

 진화하는 고유전체학
흙먼지에서도…DNA 뽑아낸다

현생인류는 순종이 아닌 잡종이다.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현대인의 DNA에는 4만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지분이 1.5~2.1% 남아 있다. 오세아니아와 아시아 일부 민족에서는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흔적도 0.2~6% 발견된다. 어느 시점에 호모사피엔스와 이들 종 간의 이종교배가 이뤄졌고 이는 현생인류는 '혼혈'이란 것을 의미한다.

2014년 이 같은 인류의 진화 과정이 '네이처' '사이언스'에 발표되기까지 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의 동굴을 누비며 작은 새끼손가락 뼈 하나 놓치지 않고 DNA를 뒤져야 했다. 그중에서도 계통 연구에 중요하게 쓰이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핵 바깥에 1만6000개 염기쌍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추출이 더 어려웠다.

고인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aDNA(ancient DNA) 단서는 뼈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걸까. 2000년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후손들이 언제나 조상의 유골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손길이 닿은 연장과 도자기 등은 쉽게 발견되지만, 유전적 흔적이 남아있는 뼈는 희귀하다.

그런데 최근 뼈나 치아 등 단단한 조직이 없이도 유적지 주변의 흙먼지로부터 인간 지놈을 끄집어내 분석한 사례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식물, 동물이 아니라 인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널려 있는 퇴적물에서 추출된 첫 사례였다. 지난 4월 27일 '사이언스'에는 유골이 모두 소실된 호미닌(Hominin·사람과에 속하는 인류와 그 조상) 동굴에서 고인류의 DNA를 찾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1985년 이집트 미라의 DNA를 처음 분석하고, 1997년 네안데르탈인 미토콘드리아 DNA를 확보해 고유전체학의 서막을 열었던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연구진이었다.

연구진은 벨기에, 크로아티아,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에 퍼진 7곳의 유적지를 누비며 아홉 개의 퇴적물 샘플을 수집했다. 일부러 많이 끊기고 화학적으로 변형된 DNA 조각들만 낚아챘다. 현대인의 유전물질과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55만년 전부터 1만4000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시대를 아우르는 흙더미인 만큼 고대 포유동물의 유전자들도 분리해냈다. 거르고 거른 결과 여덟 개의 샘플로부터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검출됐고, 시베리아 남부 동굴에서 나온 한 개 샘플에서는 데니소바인의 DNA까지 나왔다. 심지어 수년간 상온에서 방치됐던 표본에도 DNA가 남아 있었다.

막스플랑크 소속 스반테 파보 박사는 "흙먼지에서 DNA를 회수함으로써 그동안 뼈가 없어 집단생존을 입증할 길 없었던 유적지에서조차 고인류 역사를 복원할 수 있게 됐다"며 "미래에는 일상이 될 유용한 고고학적 연구방법"이라고 내다봤다.

[김윤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