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코끼리와 용, 히말라야 국경 둘러싸고 으르렁

Shawn Chase 2017. 8. 27. 14:07

중앙선데이] 입력 2017.08.27 01:57 | 546호 14면

                                        




[글로벌 뉴스토리아] 중국 vs 부탄·인도 험악한 삼각관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16일 인도 고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양국은 올해 6월 시작된 히말라야 대치로 불편한 관계여서 오는 9월 3~5일 중국 샤먼에서 열릴 브릭스 정상회의가 순항할지 우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16일 인도 고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양국은 올해 6월 시작된 히말라야 대치로 불편한 관계여서 오는 9월 3~5일 중국 샤먼에서 열릴 브릭스 정상회의가 순항할지 우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여름에도 만년설을 머리에 쓰고 있는 히말라야의 준봉들은 대자연의 경이를 보여준다. 말없이 서서 우리에게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겸허해지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히말라야가 ‘느림의 미학’과 ‘힐링 관광지’로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이 아름다운 산악지대에서 험악한 군사 대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용(중국)과 코끼리(인도)의 군대가 출동해 대치 중인 것도 모자라 ‘무역 보복’ ‘원조 매수’ 등 거친 세속 언어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히말라야의 아이러니’다.
 

중국, 부탄 도카라에서 도로공사
부탄 후견국 인도, 군대 보내 제지
대중 무역보복 카드까지 검토
중국 입김 막기 강력한 선제 조치
동북 요충 ‘실리구리 회랑’ 보호도

인도와 중국의 군대는 6월 18일부터 인도-중국-부탄의 국경지역인 도카라(중국명 둥랑(洞郞), 부탄명 도클람)에서 대치하고 있다. 군대끼리 대치 중인 것은 인도와 중국이지만 분쟁은 사실 부탄과 중국 사이에서 처음 발생했다. 사건은 대치 이틀 전인 6월 16일 도카라 지방의 드램 고원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이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현장을 부탄 정부가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이 지역은 중국과 부탄이 동시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를 통보받은 인도는 이틀 뒤 인근 시킴 주에서 군대와 불도저를 현지로 출동시켜 도로 건설 저지에 나섰다. 현지에서 마주친 중국과 인도의 군대는 서로 대치하면서 으르렁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도 군인들이 중국 땅에 무단으로 들어와 도로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악화하면서 인도가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 카드도 만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부탄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100억 달러(약 11조3000억원)의 원조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부탄은 1984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상주 공관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만 양국 사이의 국경이 불분명한 곳이 많아 조정을 위한 협상을 계속해 왔으며 1998년 국경협정을 맺고 일단 현상 유지를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2005년에도 부탄이 영토라고 주장한 지역에 들어와 도로나 다리를 만드는 등 토목공사를 벌였다. 당시 부탄의 항의에 중국은 서부지역 개발의 일부라는 답변을 내놨다. 중국이 토목공사를 벌인 지역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주하는 주민이 거의 없고 왕래하는 사람도 드물며 자원도 없는 오지 중의 오지다. 이러한 토목공사를 통해 장차 국경을 확정할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용도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 맞서는 ‘히말라야 전선’ 체제 가동
사태를 살펴보면 인도는 부탄을 ‘대리’해서 중국과 맞서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러는 걸일까? 그 기원은 1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티베트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불교국가인 부탄에 1907년 현재의 왕조가 들어서자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은 이를 승인하고 초대 국왕 즉위식에 인도 근무 고위 관리를 보내 축하했다. 대신 부탄은 외교권을 영국에 위임했다. 직접적 배경은 양국이 1947년 8월 15일 인도 독립부터 지금까지 70년 동안 맺어온 ‘특별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부탄은 인도가 독립하자 가장 먼저 승인하고 축하했다. 47년 양국은 부탄-인도 우호조약을 맺고 ‘특수한 관계’를 시작했다. 부탄은 인도로부터 내정불간섭을 약속받고 외교와 국방에서 인도의 ‘지도’에 따르기로 했다. 인도가 부탄의 외교적 후견인이 된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탄에 위기가 찾아왔다. 49년 중국을 통일하고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이 50년 티베트를 합병하면서 히말라야 산맥을 사이에 두고 양국이 국경을 맞대게 된 것이다. 그러자 부탄은 인도·네팔·시킴왕국(75년 왕정을 폐지하고 국민투표로 인도와 합병) 등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히말라야 전선’을 결성했다.
 
인도는 58년 자와할랄 네루 총리가 부탄을 방문한 직후 의회에서 ‘부탄에 대한 공격은 인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선언을 했다. 인도와 부탄은 동맹국으로서 상호방위 체제를 구축했다. 인도가 중국에 대고 히말라야 지역은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셈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나토 헌장 제5조에서 “한 나라에 대한 군사 공격은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즉각 개별 회원국 또는 집단으로 대응한다”고 명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인도는 이번 히말라야 대치를 ‘동맹 보호’와 ‘자국 안보 확보’라는 양날의 칼로서 활용하고 있다. 해상은 물론 육지에서도 인도에 압박을 가해 오는 중국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가 있다. 인도와 중국이 동시에 체면을 살리고 사태를 해결하는 묘안이 절실하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도 국경을 침범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쪽의 일방적 철수 외에 뾰족한 해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닭의 목’을 지켜라-실리구리 회랑 방어작전
인도가 부탄에 정성을 쏟고 이 지역의 작은 국경 분쟁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히말라야 방어’ 외에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실리구리(닭의 목이라는 뜻) 회랑’의 보호다. 서벵골주에 위치한 실리구리 회랑은 인도 동북부와 나머지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다. ‘닭의 목’이라는 이름처럼 좁고 가늘다. 길이가 22㎞이며 폭이 좁은 곳은 27㎞에 지나지 않는 지상 통로다.
 
실리구리 회랑을 통해 연결되는 동북부 지역은 중국과 방글라데시·미얀마에 둘러싸인 내륙 지역이다. 차와 실크로 유명한 아삼(인구 3120만)을 비롯해 트리푸라(370만), 메갈라야(300만), 마니푸르(286만), 나갈랜드(200만), 미조람(200만), 아루나찰프라데시(140만)의 7개 주가 위치하고 4500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거주한다. 특히 동부 히말라야 지역의 아루나찰프라데시는 중국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인도로선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게다가 이 지역에선 일부 분리주의자들의 게릴라 활동도 벌어지고 있어 인도 정부로선 항상 긴장하고 주시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이렇듯 인도에서 가장 예민한 지역인 실리구리 회랑은 방글라데시와 네팔, 그리고 부탄 및 이번에 분쟁이 발생한 도클람에 둘러싸여 있다. 그야말로 인도 안보의 핵심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75년 국민투표에 의해 독립 왕정국가를 폐지하고 인도와의 합병을 선택한 히말라야 접경 지역 시킴과도 가깝다. 시킴이 인도 땅이 되면서 인도는 실리구리 북쪽에서 중국과 좁게 국경을 맞대게 됐다. 바로 이번에 문제가 된 도클람 지역이다. 인도는 시킴을 얻음으로써 좁디좁은 실리구리 회랑을 방글라데시로부터 방어하는 데 약간의 여유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 실리구리 회랑은 47년 8월 15일 인도의 독립과 동시에 탄생했다. 하루 전 분할 독립한 파키스탄의 한 부분이던 동파키스탄(71년 방글라데시로 독립)이 인도 동북부와 나머지 지역을 대부분 가로막으면서부터다. 이에 따라 유사시 이 지역의 방어는 인도 정부의 핵심적 안보 문제가 됐다.
 
부탄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인도는 부탄의 외교·국방은 물론 경제도 떠받치다시피 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23억 달러에 불과하며 1인당 GDP는 2870달러로 세계 130위의 가난한 나라인 부탄은 인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탄의 주요 수출품은 인도가 건설해준 히말라야 계곡의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이다. 향신료를 재배하고 목재를 생산하며 수공예품을 만들고 천연석을 보석으로 가공하는 것 말고는 변변한 산업도 없다. 연료·곡물·섬유를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다.
 
부탄이 74년 국왕 주도로 국민총행복위원회를 설치하고 국민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GNH)을 더 중시한다는 정책을 편 것도 이 같은 사정 때문으로 짐작된다. 부탄은 ‘가치 있는 개발’을 앞세우고 건강, 심리적 만족감, 환경 등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부탄을 ‘행복한 나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부탄을 강제적·일률적·규제 일변도의 나라로 보는 시각도 있다. BBC방송에 따르면 부탄의 체링 톱게 총리는 2013년 8월 “GNH 개념이 과용돼 가계부채의 증가, 만성적 실업·가난, 그리고 부패 등 나라가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들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포증’이 ‘폐쇄 국가 부탄’ 원인 제공
부탄은 정치적으로는 98년 입헌군주제 헌법을 마련해 의회에 권력의 일부를 넘기기 전까지는 전제군주제 국가였다. 행복을 중시하는 정책도 전제군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59년까지 노예제가 남아 있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후진적이었다. 74년 비로소 외국인 관광을 허용할 정도로 폐쇄 국가이기도 하다. 외국인 관광도 국가가 지정하는 가이드를 반드시 대동해야 하는 제한적 방식으로만 진행된다. 북한 등에서 시행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50년 티베트를 합병한 중국의 입김을 우려해 쇄국 정책을 편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히말라야 대치’의 원인은 부탄의 ‘중국 공포증’에서 나온 셈이다. ‘히말라야 대치’로 부탄의 맨얼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