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유 잠그면 反中 돌아설텐데, 알거지 되란 말인가”

Shawn Chase 2017. 9. 8. 01:10
                                        


1964년 중국의 핵실험 성공 이후 인도ㆍ파키스탄으로 핵도미노가 일어났다. “북한의 핵무장이 성공하면 핵보유국 북한과 인접한 중국의 안보는 여전히 ‘맑음’ 일까.” “핵무장국 북한을 달래면서 국제사회에서 후견인 역할을 해야 하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는 괜찮은걸까.” 요즘 중국 학자들이 언론 매체에 등장해 자주 받는 질문들이다. 꼬리를 무는 이런 질문 세례는 북한의 속전속결식 핵·미사일 고도화로 중국도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음을 시사한다.       

3중 딜레마 빠진 중국 上

중국은 단둥시와 북한 평안북도 피현군을 잇는 송유관을 통해 북한에 유무상으로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은 단둥시와 북한 평안북도 피현군을 잇는 송유관을 통해 북한에 유무상으로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6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겨냥, 국제사회의 대응 움직임이 빠르다. 논의의 핵심은 대북 원유공급 중단이다. 북한의 생명줄을 조여 핵도발과 정권의 생존 사이에서 김정은이 실존적인 고민을 하도록 압박하자는 의미다. 
문제는 북한 원유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중국이 과연 송유관 폐쇄에 나설 수 있느냐다.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ㆍ기업ㆍ금융기관 제재) 카드를 좀더 중국 면전으로 끌고 오고 있다. 안보리 차원의 원유 공급 중단 등 초강력 대북 제재가 다시 한번 중국의 반대로 막힐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세컨더리 보이콧 도입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의 투먼과 북한의 남양 사이를 흐르는두만강위에 건설된 두만강대교. 북중 경제 교류를 상징한다.

중국의 투먼과 북한의 남양 사이를 흐르는두만강위에 건설된 두만강대교. 북중 경제 교류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원유 공급 중단을 전면 수용할 지는 불투명하다. 송유관을 통해 북한에 경제ㆍ안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계산이 복잡할 수 밖에 없다.  
 
 

① 송유관 폐쇄의 부메랑, 제2의 베트남化 두려움

 

 
정부 소식통은 5일 “유엔 제재로 북ㆍ중간 공식ㆍ비공식 물류 비용이 치솟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공식적인 압록강 도강 비용만 4배가 올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만 소식통은 “현재 수준의 제재에선 가격만 올릴 뿐 필사적으로 뛰어드는 북중간 교역 수요를 차단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석탄 철광석 등 규모가 큰 교역품의 거래를 막는 등 김정은 정권의 주수입원에 대한 차단 조치는 시작됐지만 실효를 거두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송유관을 잠그면 어떻게 될까. CNN머니는 “대북 원유 수출 차단은 북한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가 폭등에 이은 생활물가 급등 등 파장이 경제 전반에 퍼질 것이란 점에서다. 실제 800여개로 알려진 크고 작은 '장마당'이 지탱하는 북한 실물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중국 입장에서 고민스러운 것은 송유관 폐쇄의 부메랑이다. 
중국 국제정치학계 한 인사는 “북한의 민족감정이 크게 자극을 받을 것”이라며 “반중 정서가 치솟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북한에 대해 '피로써 지킨 안보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반중 민족감정이 본격적으로 불 붙으면 중국은 빈털털이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 입장에선 북한과 인접한 동북3성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이후 반중으로 돌아선 베트남처럼 안보상 최우방인 북한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 중국으로선 걱정이다. 접경 지역에서 북중 분쟁 가능성도 있어 사태의 파장을 예견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부담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영자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중국이 완전히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거나 혹은 아예 국경을 폐쇄한다고 할지라도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억제할 수 있을 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둘 사이의 대립은 불가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종연구소 정재흥 박사는 “한반도 동향에 민감한 중국 전문가들은 원유 공급 차단은 과도한 제재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며 “원유 금수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게 중국이 보는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오크루즈노에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가 트럭에 실려 중간 정유시설로 수송되고 있다. 최근 북한은 휘발유 등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 석유전문지-시베리아와 동러시아]

러시아 오크루즈노에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가 트럭에 실려 중간 정유시설로 수송되고 있다. 최근 북한은 휘발유 등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 석유전문지-시베리아와 동러시아]

②북, 러시아로 도입선 바꿀까 생각 복잡
중국의 계산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러시아의 존재다. 북한이 중국의 송유관 차단에 대비해 러시아로 도입선을 바꿀 경우 제재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미국과의 충돌을 피해 기껏 협조했지만 생색도 못내고 북한만 등 돌리는 최악의 외교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가 대북 레버리지를 차지하기 위해 북한에 유조선을 띄우면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 카드로 쓸 경우 사태가 복잡해진다”고 분석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에서 송유관 차단 이후 상황에 대해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론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 인터넷판이 사설에서 원유공급 중단 불가 입장을 밝혔다가 이 사설을 삭제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도 중국 당국의 복잡한 심사를 짐작하게 한다.
연세대 국제대학원 한석희 교수는 “중국으로선 안보를 위협받고 있는 미국의 압력에 무작정 버티기로 갈 수는 없을 것”이라며 “미국과 충돌할 것인지 북한의 핵폭주를 차단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중국이
원유 공급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릴 경우 귀책 사유가 북한에 있다는 점을 공고히 하는 선행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원유 잠그면 反中 돌아설텐데, 알거지 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