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이다비 기자
입력 : 2017.08.07 06:00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이 ‘시뮬레이션’이나 ‘몰입감’을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산업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과 영상물 관련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이고 의료·헬스케어, 건설업, 엔지니어링, 관광·여행, 유통·쇼핑, 시뮬레이션 산업, 제조업 등에도 활용 가치가 크다.
- ▲ VR 존 신주쿠에서 VR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현실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 / 도쿄=이다비 기자
아직 콘텐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중·고급 이상 VR 기기의 가격대가 40만~50만원 선 정도로 비싸고 기기를 들고 다니기에는 무겁지만, 대중화 바람이 불고 생태계가 형성되면 기존 산업의 방정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령, VR과 AR 기술을 이용하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미국 오하이오의 놀이기구 ‘파이어볼' 사고와 같은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7월 기계 오작동으로 탑승자들이 놀이기구에서 튕겨져 나가는 바람에 남성 1명이 숨졌고 7명이 다쳤다. 부상자 가운데 3명은 부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앞으로는 값비싸고 위험천만한 물리적 기계 대신 VR과 AR 기반 놀이기구가 붐을 일으킬 수 있다.
◆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견인하는 VR·AR…투자 확대
- ▲ 마이크로소프트는 점차 확대되는 비전 컴퓨팅 시장 공략을 위해 홀로렌즈 외에도 보급형 VR기기를 저렴하게 내놨다. /시애틀=김범수 기자
그동안 VR·AR 콘텐츠 부문에서는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주로 스타트업이나 중소업체가 앞장서 왔다. 수익창출 모델이 불분명하고 혁신적인 시도가 필요한 신시장의 특성상 대기업들의 태도가 다소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기반으로 VR 콘텐츠 성장세가 높아지면서 최근 들어 세계적인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대기업의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 ▲ 매직리프가 체육관에서 선보인 고래가 뛰어오르는 3차원 입체 영상 캡처화면. / 매직리프 캡처
월트디즈니는 VR 스타트업 ‘전트(Jaunt)’, 타임워너는 ‘매직리프(Magic leap)’, 20세기 폭스는 바오밥 스튜디오에 각각 투자했다.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세계 미디어 기업의 AR·VR 스타트업 투자는 지난 2015년 7건에서 지난해 38건으로 1년 새 5배이상 증가했다. 스타트업에 이어 대기업도 매트릭스 사회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것이다.
미국 영화산업의 메카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VR 생태계가 움트고 있었다. VR 전용 사운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현지업체 가우디오의 VR 헤드셋을 테스트해 보니, 멀리서 들리는 공룡 발소리부터 공룡 때문에 긴장한 주인공 캐릭터의 호흡 소리가 생생했다. 멀리서 날아드는 새의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입체적 소리가 압권이었다. 시선과 관계없이 소리만으로 소리의 방향, 즉 음원(音原)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 ▲ VR 콘텐츠의 소리 위치값을 정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시현해보이는 오현오 가우디오랩 대표. /LA=김범수 기자
오현오 대표는 “VR 플랫폼의 등장으로 LA의 여러 스튜디오가 관련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어, 이에 따라 사용자 시선 변화에도 일정한 위치에서 소리를 내주는 효과를 내는 소프트웨어 수요가 커져 우리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VR·AR 콘텐츠 기업의 절반 이상이 게임 등 영상 엔터테인먼트 관련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ETRI는 관련 보고서에서 “VR 기술은 현재 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 활용되고 있으나 향후 의료, 쇼핑, 커머스 등 다양한 산업에 융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VR 콘텐츠 시장이 올해 5억달러에서 2020년 245억달러로 성장해 2020년에는 159억달러인 기기 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VR 시장이 2018년을 기점으로 하드웨어(기기)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의 시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 엔지니어링·건설산업, MR과 홀로렌즈 이용해 변화
엔터테인먼트·영화 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에도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5월 10일 미국 시애틀 워싱턴컨벤션센터(WSCC)에서 열린MS의 개발자회의 ‘빌드 2017’에는 미국 시카고의 3D 엔지니어링 기업인 ‘와이어스톤(Wire Stone)’가 부스를 마련했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R기기인 ‘홀로렌즈’ 통해 여객기 보잉 737기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비행기 내부의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각 클래스의 구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 MS의 ‘빌드 2017’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홀로렌즈를 시연해보고 있다. 디자인이 완성되지 않은 트럭을 홀로렌즈를 착용해서 보면 작은 사진처럼 완성형으로 볼 수 있고 디자인에 따른 기류와 풍압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시애틀=김범수 기자
건축설계회사 스튜디오 216은 AR을 활용해 완성된 건물의 조감도를 세부적으로 살필 수 있게 해주고 건물이 완공된 후의 인테리어와 외부 풍경도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눈길을 끌었다. 기존에는 시제품과 설계만으로 제품을 제작했다면, VR과 AR 기술이 완성품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바꾼 것이다.
- ▲ 스튜디오 216은 AR을 활용한 마케팅도 선보인다. 이들의 앱을 실행시키면 판촉물로 나눠준 빈 종이 위에 3D 건물이 AR로 나타나 방향을 돌려가며 전체적인 조경을 살펴볼 수 있다. /시애틀=김범수 기자
버나드 샬레(Bernard Charles) 다쏘시스템 최고경영자(CEO)는 “3D 기술을 통해 AR과 VR로 제품을 시연해보이는 것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가세해 설계를 추천해주는 단계까지 올라왔다”며 “많은 산업에서 물리적인 시제품을 3D로 대체해 나가고 설계·제조 과정에 3D 그래픽을 차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의료 분야 활용가능성도 무궁무진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의료 영역에서 보호자가 VR이나 AR을 통해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의사와 환자를 대면할 수도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예견대로 공간을 뛰어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VR 기기를 착용하면 보호자가 환자의 병실로 직접 간 것처럼 재현해주고, 병실에는 보호자의 형상이 3D로 구현되며 환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되는 형태다. VR과 AR을 조합해 ‘워프’를 구현하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의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진료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은 실제로 MS가 홀로렌즈를 통해 연구중이다. 공간과 사물, 사람을 스캔하고 3D로 재현해 전혀 다른 공간에 재현해내는 것이다. 단순히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세계적인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엔지니어들이 기기를 착용하면 3D 결과물을 함께 보면서 원거리에서도 함께 회의를 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 ▲ 사진처럼 이미지 스캐닝, 이미지 인식, 3D 재현, 홀로렌즈 등 기술을 종합해 다른 공간에 있는 인물을 홀로그램으로 재현하고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전망이다. /MS 제공
알렉스 킵맨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은 “MR은 의학, 교육, 산업 전반에 큰 혁신을 가져올 미래 컴퓨팅이며, MR을 통한 기회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이라며 “인간이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모든 일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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