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태양광 발전

‘원전 제로’ 일본 요금 급등, 전기 먹는 공장들 한국으로

Shawn Chase 2017. 7. 16. 22:45

중앙선데이] 입력 2017.07.16 00:05 수정 2017.07.16 01:58


해외 사례로 본 탈원전의 기회비용
지난 14일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5, 6호기 건설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가동을 멈춘 채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15일 한수원 노조는 이사회의 공사 일시 중단 결정을 전면 거부하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5, 6호기 건설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가동을 멈춘 채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15일 한수원 노조는 이사회의 공사 일시 중단 결정을 전면 거부하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일본 산업계는 자국의 절반 수준인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에 위협을 느꼈다. 한국의 산업용 전력 요금이 인상되면 화학·철강 등 일본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日 굴뚝·첨단 산업 경쟁력 약화
전기료 50~60% 싼 한국이 수혜

에너지 정책은 안정적 공급도 중요
스위스에 전기 수출하는 독일도
흐린 날 이어지며 블랙아웃 위기

핵폐기물 처리 비용 감안하면
원전 발전 단가가 더 비싸다지만
“외부 비용 포함 단가 계산 안 해”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탈(脫)원전 정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분석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사고 이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민주당 정부는 즉시 ‘원전 제로(0)’를 선언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가 일본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급히 꺼낸 정무적 카드였다. 전체 전력 생산량(1조64㎾h) 가운데 29%(2878억㎾h)를 담당했던 원자력발전소 60기는 모두 가동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업체들의 해외 이전이 이어졌다. 도레이첨단소재·데이진·미쓰비시화학 등 일본 화학기업들이 속속 한국에 공장을 지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11월 소프트뱅크는 KT와 합작해 신규 데이터센터를 경남 김해에 지었다. 서버 1만 대를 돌릴 수 있는 6000㎾ 규모였다. 데이터센터는 데이터 저장과 냉방을 위해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당초 일본을 선택했던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들도 한국에 거점을 마련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부산에,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서울에 각각 데이터센터를 지었다.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은 “현재 공산품 및 서비스 가격 가운데 30%가량이 전기요금”이라며 “탈원전은 직접적인 전기요금 인상뿐 아니라 물가 상승과 수출 감소 등의 간접적인 악영향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오르고 온실가스 배출 늘 수도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원자력발전을 포기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h를 생산하는 발전단가는 원전(67.9원)이 가장 싸고 이어 석탄화력(73.9원)·액화천연가스(LNG·99.4원)·신재생에너지(186.7원) 순이다. 탈원전 측에서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료를 인용해 사고나 핵폐기물 처리비용 등 위험회피비용으로 ㎾h당 3~203원을 포함하면 원전의 발전단가는 54~254원으로 오히려 비싸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사고처리비용 등 외부비용을 포함해 단가를 계산하는 방식은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채택하지 않는다”며 “석탄이나 LNG발전도 이산화탄소 배출 등의 외부비용을 계산하면 단가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탈원전 정책이 진행되면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환경에너지팀장을 맡았던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 공약이 계획대로 이행될 경우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25% 안팎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5만5080원인 4인 가구 월 전기요금(350㎾h 사용 기준)이 13년 동안 1만3770원 정도 오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가정용 전기요금이 2010년 ㎾h당 20.37엔에서 지난해 24.21엔으로 19% 올랐다. 독일의 경우 2011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전기요금이 MWh당 244유로에서 2015년 295유로로 21% 상승했다.
 
독일의 원전 비중은 2000년 29.5%를 정점으로 2015년 15%까지 낮아졌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논의가 시작됐고 90년부터 신재생에너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자 논의를 시작한 지 25년 만에 탈원전을 최종 결정한 것이다. 독일의 탈원전은 2022년까지 마무리된다. 하지만 FIT가 지난해에만 270억 달러(약 30조원)에 달할 정도로 늘어나면서 전기요금은 2000년 대비 두 배로 올랐다. 주한 독일대사관에 따르면 월 333kWh를 썼을 때 독일의 전기요금은 104유로(약 16만원)로 한국의 세 배 수준이다.
 
에너지 정책에서는 비용뿐 아니라 안정적 공급도 중요하다. 실제로 독일은 에너지 수출국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충분히 확보해 평소에는 스위스·네덜란드 등에 전기를 수출한다. 하지만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5~7월에는 프랑스로부터 수입해 부족분을 메운다. 하지만 지난 1월 함부르크 등 독일 북부 지역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직전 상황까지 내몰렸다. 한 달 내내 흐리고 바람 없는 날이 이어지면서 태양광·풍력발전량이 평소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성풍현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독일의 탈원전 정책은 원전 비중이 70%에 달하는 프랑스로부터 전력을 사 올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연중 가동률이 16%에 그쳐 원자력(83%)·석탄(81%)보다 효율이 낮기 때문에 사실상 섬과 같은 한국에서는 필요 전력의 여섯 배 용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원전 정책 벤치마킹 대상인 대만도 이달 들어 원전 2기를 재가동했다. 지난해 취임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2025년까지 핵 없는 대만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지만 지난달 초 35도를 넘는 폭염으로 전력예비율이 3.7%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후쿠시마 사고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원전 가동을 늘리기 시작했다. 간사이전력은 지난달 후쿠이현 원전 미하마 3호기에 대해 20년 추가 운영을 공식 발표했다. 76년 가동을 시작해 설계수명 40년은 지났지만 지난해 말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내진 성능을 개선하고 사용 후 연료 저장소 보강 등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조건으로 20년 연장 운영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원전 관련 인력, 수출길 막히는 문제도

원자력을 대신할 LNG 역시 기회비용을 초래한다. 발전단가가 오르는 것을 감수한다고 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에너지원 가운데 18.8%인 LNG 비중을 2030년 37%까지 높일 계획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원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는 ㎾h당 10g에 불과하다. 석탄(991g)과 비교할 때는 100분의 1, LNG(549g)의 55분의 1 수준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원자력이 바이오·신재생에너지 등과 함께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이익환 전 사장은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원전을 LNG발전소로 대체하면 한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상임대표인 박진희 동국대 교수는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기 위해 도입하는 천연가스가 전부 원전을 대체한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계산”이라며 “공약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2075년 이후에나 모든 원전이 가동을 중단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원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까닭은 안전성에 대한 의심 때문이지 온실가스나 미세먼지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탈원전은 단기적으로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신고리 5, 6호기 공사 관련 종사자는 지난 5월 말 기준 1만2800명에 달한다. 시공·설계·협력업체 등을 포함한 수치다. 협력업체 수는 1700곳이다. 한수원이 건설 중단을 결정하면서 이 일자리가 불안해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원자력 산업 인력 가운데 20대(5478명·15.5%)와 30대(1만2306명·34.8%)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원전 수출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한국전력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짓고 있는 바카라 원전의 경우 지난해 60년간 운영권을 추가로 따냈다. 매년 1000명의 인력이 투입돼 총 494억 달러(약 54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과 체코 등에서 추가 원전 수주에도 나섰다. 하지만 국내에서 원전 건설이 중단될 경우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가 전문인력 공급이 끊기면서 경쟁력을 잃었고 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비슷한 상황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정책을 가속화할 경우 한국이 보유한 20~30대 우수 인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한병섭(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그동안 원전 진흥을 위해 원자력공학과를 급속도로 늘려 왔지만 결국 이익을 얻은 이들은 극소수의 학계 관계자와 산업계 종사자들”이라며 “극소수 업계 관계자에게 집중됐던 경제적 이익이 사라져 반발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황일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전 반대론자에 둘러싸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전 6기를 착공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환경론자와 논쟁 끝에 원전 4기를 지었다”며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탈핵이나 반핵 같은 정치적 논쟁 대신 원자력·태양열·풍력 등 각종 에너지원을 가장 적합하게 조합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