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 특파원
입력 : 2017.06.17 08:00
147년 역사 도이체방크 최대 주주된 HNA그룹 창업자
147년 역사의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 최대 주주가 5월 초 바뀌었다. 2015년 이후 500억달러를 해외 인수합병(M&A)에 쏟아부은 중국 기업 하이항(海航·HNA)그룹이 주인공이다. 중국 자본이 월스트리트 빅 플레이어의 최대 주주가 된 건 처음이다.
HNA그룹은 1993년 중국 남부 하이난(海南)의 지방 항공사인 하이난항공으로 시작했다. 이어 힐튼호텔의 최대 주주가 되고, 세계 1위 컨테이너 리스 회사와 1위 IT 물류 업체, 3위 항공기 리스 회사 등을 보유한 그룹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중국 HNA 그룹 성장 신화의 한가운데에 천펑(陳峰·64) 회장이 있다. '하늘의 심부름꾼'이라고 자처하는 천 회장은 하이난성(省) 정부가 지원한 1000만위안(약 16억3000만원)과 민간에서 유치한 2억5000만위안(약 407억원)을 종잣돈으로 하이난항공을 시작해 자산 규모 1조위안(약 163조원) 그룹으로 키웠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천펑과 HNA를 3차례나 케이스 스터디 소재로 삼았다.
독일·네덜란드·미국에서 공부
천 회장은 산시(山西)성에서 공산당 중간 간부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주로 베이징에서 자랐다. 문화혁명 때 인민해방군 공군에서 근무한 뒤 민항총국에서 일하고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운수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하늘과 연을 맺었다. 중국 개혁 개방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중국 반부패 사령탑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밑에서 세계은행 차관을 중국 농촌에 투입하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일찌감치 국제 자본의 흐름을 익혔다. 그는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운수대학을 나온 뒤에도 일을 하면서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각각 MBA 학위를 받았다. 이 해외 경험이 천 회장 국제화 전략의 뿌리가 됐다.
천 회장은 "기회와 도전은 늘 병존한다. 기회는 영원히 준비된 자의 몫"이라고 얘기한다. 2000년 중국 당국이 3대 국유 항공사 중심으로 구조 조정에 나설 때, 천 회장은 창안(長安)항공 등 지방 항공사를 잇따라 사들여 하이난항공을 중국 4대 항공사로 키웠다. 이후 호텔·공항 등을 보유한 그룹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미국과 유럽의 자산이 싸졌다. (HNA가) 세계의 모든 곳에 있겠다"며 해외 M&A에 속도를 냈다. 2012년엔 프랑스의 저가 항공 아이글 아주르 지분 48%를 인수했다.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유럽 항공사에 투자한 것이다. 천 회장은 작년 2월 하버드대 강연에서도 "중국이 해외 기업을 사들일 파워를 가진 적이 지난 100년 동안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해졌다"고 자신했다. 1억명 이상 중국인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흐름에서 시장을 본 천 회장은 항공기 리스부터 기내식·면세점·호텔·여행까지 항공 관련 글로벌 산업 사슬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사업 영역을 키우고 불필요한 사업들은 정리했다. 그 결과 최근 3년 새 자산 규모는 4.5배 커졌다.
항공 제국 넘어 금융 제국 도전
HNA의 도이체방크 투자는 천 회장과 헤지펀드 거물 조지 소로스(Soros)의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천 회장은 하이난항공을 세운 지 2년 만인 1995년 뉴욕으로 날아가 소로스에게서 2500만달러를 유치했다. 중국 1호 외자(外資) 합작 항공사로 변신시킨 것이다. 소로스는 이후 투자 규모를 5000만달러로 늘렸다. 소로스는 자의든 타의든 도이체방크 지분을 HNA가 싼값에 사들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도 듣는다.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직후 소로스의 공매도 타깃이 돼 이후 주가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도이체방크의 지분(3.04%)을 확보했다고 올 2월에 처음 발표한 HNA는 3월 4.8%, 5월 9.92%로 지분을 늘려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5.9%)을 제치고 도이체방크 최대 주주가 됐다. 중국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제조 강국 독일이 금융과 어떻게 시너지를 내왔는지를 배우고, 월스트리트 메이저리그의 고급 정보에 접근할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최재용 팀장은 "미국발 금융 위기로 쓰러진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한 일본의 노무라가 초기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월스트리트에서 활발히 영업하고 있다"며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도이체방크 투자로 HNA가 향후 M&A를 더 활발히 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최영진 한화자산운용 중국법인장은 "중국 기업과 금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기회"라고 분석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신용평가회사인 S&P는 "HNA가 높은 레버리지(부채비율)를 사용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뱀이 코끼리를 삼킨다"는 평가도 나온다. HNA 해외 투자의 가장 큰 자금줄은 중국계 은행들이다. HNA가 중국 은행들에서 받은 대출 한도는 5월 말 기준 890억달러. 중국 국유기업이나 받을 수 있는 '큰 혜택'이기 때문에 정경유착설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천 회장을 "자본과 정치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기업인"이라고 평가한다.
HNA는 당(黨)과의 유착설을 부인한다. 매출의 절반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데다, 전체 자산 중 해외 자산이 30%에 달해 이 해외 자산을 담보로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HNA가 힐튼호텔 지분 25%를 65억달러에 매입할 당시 이 지분을 담보로 해외 자금을 조달해 사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월스트리트 IB들의 차입 매수 기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내 글로벌 10대 기업" 야심
천 회장은 서구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했지만 불교와 유교 등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경영을 한다. 하이난성 하이커우(海口)에 부처 모양 사옥을 지었다. 그 자신은 술과 담배를 일절 안 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자 서예가이다. "전통문화를 이해 못 하면 미래 성장의 기초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매일 뭘 배웠는지를 400자로 정리한다. 이때가 자기 깨달음에 이르는 명상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관리층에 불교와 유교 고전을 읽히고, 분기마다 배움의 결과를 손으로 직접 쓰도록 하는 엄격한 경영자다. 천 회장이 직접 검사하는 숙제에서 3번 낙오하면 직급이 떨어진다. 천 회장은 "사회와 타인과 자신, 3자의 이익을 일체화하는 조화가 중요하다"며 "최근 100년 동안 기업은 환경과 사회복지에 신경 쓰기보다는 수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자원이든 먹어치우는 괴물이 됐다"고 지적한다.
천 회장은 1993년 하이난항공 첫 비행 때 식음료 카트를 직접 밀면서 기내식 서비스를 했다. 22년이 지난 2015년 HNA는 처음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에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111계단 상승해 353위에 올랐다. 천 회장은 2014년에 "2030년까지 글로벌 50대 기업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2025년까지 글로벌 10대 기업이 되겠다"고 목표를 높였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9/2017060901972.html?main_hot1#csidx290bb352e6b38ae8c41150bef15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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