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가리니 비로소 들렸다

Shawn Chase 2015. 9. 8. 01:22
입력 : 2015.09.07 03:07

 

[복면 속 가수 추리하는 MBC 예능 '복면가왕' 시청률 14.3% 기록]

가면으로 얼굴 가린 가수들, '스펙' 떼고 가창력으로만 겨뤄
솔지·여은… 아이돌가수 발굴도 "공정한 경쟁에 공감하게 돼"

얼굴을 가리자 가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못 부른다는 편견에 시달린 아이돌도, 이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가수도 가면 안에서는 평등했다. 지난달 30일 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이 시청률 14.3%(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한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0.1%포인트 차이로 '시청률 경합' 중이다. 한 주 전인 23일 방송에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꺾고 일요일 예능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왼쪽)와 ‘모기향 필 무렵’은 각각 가수 김연우와 임세준으로 밝혀졌다. 추리를 통해 복면 속 가수가 누군지 밝혀내는 재미도 있지만, ‘스펙’을 무시하고 가창력으로만 우위를 가린다는 콘셉트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왼쪽)와 ‘모기향 필 무렵’은 각각 가수 김연우와 임세준으로 밝혀졌다. 추리를 통해 복면 속 가수가 누군지 밝혀내는 재미도 있지만, ‘스펙’을 무시하고 가창력으로만 우위를 가린다는 콘셉트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MBC 제공

'복면가왕'의 기획안은 3년 동안 방송사 예능국에서 줄곧 거절을 당했다. "어떤 가수가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겠느냐"거나 "시청자들이 얼굴 가린 가수들에게 관심을 갖겠느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방송을 시작하자 가면을 쓰고라도 노래를 부르겠다는 가수는 많았고, 시청자는 얼굴 가린 가수들의 노래를 기꺼이 들었다. 지난 설 연휴 때 특집 프로그램으로 출발한 '복면가왕'은 대중의 뜨거운 반응 덕분에 정규 편성이 됐다.

'복면가왕'이 처음 방영됐을 때 화제가 된 인물은 '솔지'였다. 골반을 앞뒤로 격렬하게 움직이는 '위아래춤'과 '하니'라는 멤버로 유명해진 아이돌 그룹 'EXID'의 보컬이지만, 그가 노래를 잘 부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음악 팬은 많지 않았다. 가왕으로 장기 집권한 '고추아가씨'의 정체는 이름마저 생소한 걸그룹 '멜로디데이'의 여은이었다. 2012년 데뷔했지만 다른 연예 프로그램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다. 아이돌이나 주류 무대 진입에 실패한 가수들도 가면만 쓰면 가창력 하나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외모, 인지도, 소속사 등 모든 '스펙'을 다 떼고 가창력만 겨루게 하는 가면의 매력에 대중이 열광했다. 반전(反轉)이 화제로 이어진 것이다.

‘고추 아가씨’로 출연했던 걸그룹 ‘멜로디데이’의 여은 사진
‘고추 아가씨’로 출연했던 걸그룹 ‘멜로디데이’의 여은. /MBC 제공

지난달 22일 방송한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의 출연 가수들도 '복면가왕'을 패러디해서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지드래곤과 태양, 아이유와 같은 아이돌이나 윤상과 같은 1990년대 가수, 인디에서 활동하던 '혁오밴드'는 가면 안에서 모두 동등한 취급을 받았다. 인지도 면에서 떨어졌던 혁오밴드는 오히려 가면을 통해서 이들이 왜 기존의 인기 가수들과 나란히 한 무대에 설 수 있는지 입증했다. '복면가왕'이나 '무한도전 가요제'의 공통적인 인기 비결은 인지도나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가수를 발굴해 낸다는 점이었다.

방송계에선 "'스펙 만능주의' 덕분에 '복면가왕'이 떴다"는 얘기가 있다. 학벌이나 외모, 부모의 직업 같은 조건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거꾸로 가면을 쓴 채 가창력만으로 노래 실력을 겨루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익명성을 상징하던 가면이 지금은 공정한 경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인터넷에는 '복면가왕'에 대해 이런 댓글이 달려있다. '내 인상 비호감인데… 차라리 면접 볼 때도 가면을 썼으면 좋겠다.'(jel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