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공항

직장 사표내고 "조종사 되겠다" 항공유학 열풍…홍준표 아들까지 가세

Shawn Chase 2017. 4. 10. 21:19

권순완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10/2017041001303.html


입력 : 2017.04.10 11:43 | 수정 : 2017.04.10 11:45


/항공 유학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국내 대형 백화점의 마케팅팀 3년차 사원이었던 김모(33)씨는 4년 전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며 퇴사하는 그를 두고 주변에선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말렸지만, 퇴사 후 곧장 미국 LA로 건너가 비행학교에 등록하더니 8개월간 이론교육을 받고 300시간 넘게 비행실습을 한 뒤 사업용 비행 면장(免狀)을 따서 국내에 돌아왔다. 이후 김씨는 한 저가항공사(LCC)의 여객기 조종사로 취직했다. 지금은 2년차 부(副)기장이다. 보잉737기를 몰고 1년에 800시간 이상 하늘을 난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캐나다 등 외국으로 가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딴 뒤 국내 항공사에 재취업하는 ‘직장인 항공 유학생’이 늘고 있다. 연봉 5000만원 이상의 내로라하는 대기업 사원이 수년간 모은 돈을 유학비로 고스란히 쓰며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좇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항공 유학 전문’ 유학원이 생겨났고, 이런 유학원 문을 두드리는 직장인 지원자들만 한 달에 수백명일 정도로 젊은층의 항공 유학은 거의 ‘열풍’이라고 할 만하다.

자유한국당 대선 주자로 확정된 홍준표 경남지사의 둘째 아들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미국에서 항공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유학원 대표는 “요즘 항공 유학 상담자 중 80%가 번듯한 직장인”이라며 “최근엔 경쟁자가 많아져 이 (유학) 루트도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AAA 비행학교 홈페이지 캡처



◇저가항공사 등장으로 불붙은 ‘항공 유학’ 열풍

국내에 항공 유학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2010년쯤부터다. 2000년대 중·후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기존 대형 항공사 외에 제주항공·진에어·이스타항공 등 저가항공이 생기면서 여객기 조종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항공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학 가서 1년만 고생하면 당신도 조종사’라는 식의 광고가 등장했고, 외국 현지 비행학교와 제휴 맺은 유학원의 도움으로 한 해에 수백명씩 태평양을 건넜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외국 비행 면장을 국내용으로 전환한 건수는 2012년 212건에서 작년 374건으로 4년간 76% 증가했다. 특히 작년엔 전체 신규 면장의 30%가 이런 ‘전환 면장’이었다. 업계에선 이들 중 대부분이 직장을 관두고 간 ‘재취업 유학생’일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면 보통 항공대·한서대(항공운항과) 등 항공 관련 대학을 가거나 군(軍)에 들어가 조종사로 10년 넘게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이미 대학을 나와 직장을 가진 사람으로선 쉽게 도전하기 어렵다. 최근 사설 비행교육원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으나, 교육 환경은 외국보다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의 중평이다. 우선 한국의 기상(氣象) 조건이 좋지 않아 1년 365일 중 비행 가능한 일수는 180여 일에 그치고, 보통 비행기 1대당 수십명의 교육생이 배치돼 한 사람당 돌아가는 실습시간이 적다. 결과적으로 항공사 취직에 필요한 사업용 비행 면장을 따려면 2~3년 이상 걸린다.

◇1년에 1억 이면조종사 자격 취득

이에 비해 미국·캐나다 등 외국 비행학교에선 좋은 날씨 덕분에 1년 정도면 면장 취득이 가능하다. 비행기 1대당 배치되는 교육생도 10명 미만이다. 4년 다닌 직장을 나온 뒤 작년 1년 4개월 만에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비행학교에서 면장을 취득한 이모(32)씨는 “국내에선 연습용 비행기를 몰고 이·착륙 가능한 공항이 양양·무안·울진공항 등 몇 곳밖에 없는데, 미국에선 50곳이 넘어 경험의 폭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 난다”고 말했다.

유학을 가면 국내보다 주거비·생활비가 더 들어가지만, 항공 교육비는 저렴해진다. 교육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비행 실습비인데, 미국·캐나다에선 저렴한 항공유 가격 덕택에 비행 1시간당 실습비가 국내(약 25만원)의 70% 수준(약 17만원)이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사에 조종사로 취직하려면 최소 250 시간(저가항공사)에서 1000시간(대한항공)의 비행시간이 필요하므로, 면장 취득까지 총 비용을 따지면 유학을 다녀오는 게 오히려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통 항공 유학 비용은 생활비 포함 1억원 전후다.

/국내 한 항공 전문 유학원 홈페이지 캡처




직장인들이 항공 유학의 길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 안정성이다. 사기업에선 50세가 되기 전에 ‘자의 반 타의 반’ 퇴직하는 경우가 많으나, 전문직인 여객기 조종사가 되면 큰 결격 사유가 없는 한 60세 넘어서까지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여도 초봉이 7000만~8000만원 수준이다. 근무 분위기도 한결 자유스러워진다고 한다. 한 유학 출신 부기장은 “일반 직장 생활에선 모셔야 하는 상사가 층층시하(層層侍下)인데, 여객기에 부기장으로 탑승하면 오직 기장 한 분만 보필하면 되니 편하다”고 말했다. 유학생 중엔 학창시절 막연히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품다가, 부모의 반대나 성적 미달 등의 이유로 항공 관련 학과에 진학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한 유학업체 관계자는 “항공 유학은 어릴 적 동경(憧憬)을 실현하는 ‘꿈의 유학’”이라고 말했다.

◇조종사 자격증은 예선, 취업이 본선

최근 유학생들 사이에선 “이제 항공유학도 더는 ‘블루오션(blue ocean)’이 아닌 ‘레드오션(red ocean)’”이라는 말이 나돈다. 한 해에 수십명을 뽑는 각 항공사 조종사 공채 시험에 수백명의 지원자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작년 A 항공사의 부기장 공채엔 49명을 뽑는데 860명의 조종 자격증 보유자가 지원해 17.5: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한 지원자는 “미국 비행학교 동기 10명 중 8명이 면장을 따고도 2년간 취업을 못하고 있다”며 “예전엔 면장만 따면 바로 취업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면장은 예선, 항공사 취업이 본선’이란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 유학생 출신 부기장 김씨는 “직장 후배들이 ‘나도 항공 유학하고 싶다’며 전망을 묻는 경우가 있는데, 이젠 취업된다는 보장이 없어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학 전문가들은 “본인의 스펙(spec)을 고려하고 항공 유학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군 조종사 출신으로 10년째 항공 유학 사업을 하고 있는 한창호(53)씨는 “전(前) 직장에서 번 돈을 몽땅 쏟아부어 ‘조종사 타이틀’을 따고도 항공사 공채 서류전형의 문턱조차 못 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며 “이제는 항공 유학도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본인의 학벌·학점과 영어실력을 고려한 뒤 재취업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AAA 비행학교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