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커진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20조원 이상 베팅도 나왔다"

황민규 기자

입력 : 2017.03.30 11:48 | 수정 : 2017.03.30 13:47

도시바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마감한 가운데 일본 현지에서는 20조원 이상을 제안한 업체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도시바 인수를 위한 SK하이닉스, 웨스턴디지털(WD), 마이크론, 홍하이정밀공업 등 입찰 기업들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의미다. 비싸게 샀다가 회사 전체가 부실해지는 ‘승자의 저주’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3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에 10여개의 기업이 응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오는 5월 중 우선협상자를 결정하고 내년 3월까지 매각을 끝낸다는 방침이다.

▲ 지난 29일 메모리 반도체 사업 매각을 위한 1차 예비 입찰을 마감한 도시바는 오는 5월 중 우선협상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블룸버그 제공

이날 마이니치는 "2조엔(약 20조원) 이상을 제안한 응찰이 있었다"고 전했지만 정보의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올해 초 반도체 부문 매각을 결정할 당시 도시바는 경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며 19.9% 미만의 지분만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19.9% 인수 가격은 2조~3조원 정도였다.

이후 채권은행나 입찰자 등이 19.9% 매각만으로는 도시바의 부실을 해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도시바는 반도체 부문 지분 100%를 매각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이에 따라 3조원대에서 논의되던 도시바 지분 인수 가격은 현재 지분 100%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반영돼 20조원대를 넘나드는 상황이 됐다.

일본 현지에서는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다. 요미우리 신문은 "관계자들 사이에는 도시바의 욧카이치공장에서 반도체를 공동생산하고 있는 웨스턴디지털이 유력하다는 설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샌디스크를 인수하는데 거액을 쏟아부은 웨스턴디지털이 2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추가적으로 투입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시바 메모리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홍하이정밀공업은 일본 정부의 반대에 부딪쳤다. 도시바가 매각하려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사업은 안보 관점에서도 중요성이 큰데 인재나 기술 유출 우려가 있다며 중국계 기업으로의 매각 반대 입장을 흘린 것이다.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인 SK하이닉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일본은 한때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름 잡다가 1990년대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게 주도권을 뺏긴 바 있다. 특히 자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오래전부터 한국 기업으로 유출돼 왔고 결국 이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에게 밀리기 됐다는 여론이 형성돼 왔다.

한편 업계에서는 20조원 이상의 금액을 주고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어떤 기업이든 만만치 않은 후폭풍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입찰 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큰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시가총액이 30조원대인데 20조~25조원을 주고 도시바를 구매하는 건 엄청난 모험"이라며 "인수에 성공한 이후 심각한 재무구조 악화에 시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바 인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마이크론의 시장 점유율도 지난 2012년 엘피다 인수에 성공한 이후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 사례를 포함해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기업 간 결합을 살펴보면 1+1이 2가 아니라 1.5 정도가 되는 사례가 많았다"며 "기술 통합과 설비 가동 측면에서 제약이 많다는 의미이며 이 과정에서 적지않은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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