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행

여행자를 페루로 불러들이는 일등공신

Shawn Chase 2017. 3. 26. 18:30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여행자를 페루로 불러들이던 일등공신은 세계의 불가사의로 꼽히는 '마추픽추'였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음식을 맛보기 위해 페루에 가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입력 : 2017.03.26 07:00


한국에서 지구 정반대에 위치한 대륙 남미, 그중에도 페루.

페루는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로, 우리나라 면적의 13배가량 된다.
페루의 넓은 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이 사막 지대인 태평양 연안, 평균 3,000∼4,000m의 고산 지대인 안데스 지역, 그리고 열대 우림인 아마존 지역 등이다. 지역에 따라 기후도 다양하며 이 때문에 다양한 음식 재료를 이용한 요리 문화가 발달했다.


/조선DB

'최고 미식 여행국가'로 만들어준 식재료

페루는 최근 세계 미식가들이 주목하는 나라다. 뉴욕, 런던,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주요 도시마다 페루 레스토랑이 성업 중이다.


페루는 국제 관광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이 '여행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표현한 월드 트래블 어워즈(WTA) '최고의 미식 여행국가(Best Country for Gastronomy)' 부문에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1등을 차지했다. ▶WTA Culinary Destination


1전통빵 차플라스 2리마 ‘엘 포풀라초’ 레스토랑 해산물 요리 3리마 ‘센트랄’의 선인장·고구마잎·와랑고나뭇잎 등으로 만든 ‘데저트 플랜트’ 요리

페루는 음식 강국이 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2000년대까지 그 잠재력을 발현하지 못했다. 음식은 문화의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와 안정이라는 토양에서 피어나는 꽃. 1990년대 들어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성장하자 음식도 발전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세계 음식·외식업계 전문가들이 뽑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는 센트랄(Central·4위)과 마이도(Maido·13위), 아스트리드&가스톤(Astrid&Gaston·30위) 등 페루 레스토랑이 세 곳이나 포함됐다.
2016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페루 수도 리마 ‘산이시드로 시장’ 청과상 진열대에 놓여있는 카카오 열매(오른쪽) / 김성윤 기자

시장을 둘러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요리의 기본인 식재료가 엄청나게 풍부하다. 태평양과 접한 해안에서부터 해발고도 5000m에 이르는 안데스산맥, 아마존 열대우림에 이르는 자연환경의 다양성 덕분이다.

페루 수도 리마에 있는 산이시드로(San Isidro) 시장. 카무카무·루쿠마·아구아헤·마카·유카·오카 등 맛보긴커녕 보기도 처음인 과일·채소로 가득했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열매도 있었다. 페루관광청 이본 파라(Parra)씨는 "카카오를 사다가 과육은 그대로 먹고 씨는 볶아서 가루로 빻아 초콜릿을 끓여 마신다"고 했다. 초콜릿을 집에서 직접 만든다니,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수퍼 곡물'로 각광받고 있는 퀴노아, 아마란스는 페루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다. 커피는 세계 8위 생산국이다. ▶기사 더보기


산이시드로 시장에서는 흔하디흔한 감자도 20여 가지가 판매되고 있었다. 

페루는 전 세계 감자의 고향이다. 감자는 안데스산맥 알티플라노(Altiplano) 고원에서 8000년 전 처음 재배됐다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페루 수도 리마에 있는 국제감자센터(CIP)에 따르면, 페루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4000여 개 감자 품종을 보유한 나라다.

잉카제국 수도 쿠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자동차 1시간 거리에 있는 우루밤바(Urubamba) 계곡은 페루 감자의 중심. 이곳 주민들은 2300여 품종의 감자를 재배한다. 트리니다드는 "감자마다 먹는 방법이나 때가 다르다"고 했다. "구워 먹는 감자가 있고, 쪄 먹는 감자가 있어요. 얼려서 가루를 내거나, 술을 담가 먹는 품종도 있죠. 결혼식에 내는 감자, 장례식용 감자도 구분해서 사용하죠."

다국적 종자기업들은 우루밤바를 수시로 찾는다. 자신들이 특허 내 독점 판매할 감자 품종을 '사냥'하기 위해서다.



'감자공원(Parque de la Papa)'은 이러한 다국적 종자기업들의 생물자원수탈(biopiracy)을 막기 위해 케추아족 주민들이 비영리단체 안데스(ANDES)와 함께 설정한 보호구역. 우루밤바 계곡 일대 12000헥타르(120㎢)가 지난 2000년 감자공원으로 설정됐다. 이 지역 6개 케추아족 마을이 공동 설립한 자치기구는 감자공원 내에서 감자를 포함 어떤 종류의 유전 정보 특허도 반대한다. 하지만 환경 변화를 이겨낼 새로운 감자 품종 개발을 위해서는 200가지 이상 토착 감자 품종을 과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품종을 수천년 동안 이어온 전통 농업 방식으로 재배함으로써 감자 품종 다양성은 물론 케추아족 문화와 삶의 방식도 보존하고 있다.  ▶기사 더보기


페루 "감자 건드리면 못참아"

다양한 식재료, 세계적인 음식

식재료만 다양한 게 아니다. 인디오 원주민을 비롯해 스페인·독일·이탈리아 등 유럽계 백인, 인디오·백인 혼혈 메스티소, 흑인, 중국·일본 등 아시아계가 공생한다. 이들이 뒤섞이며 빚어낸 독특한 식문화. 혹자는 "페루 음식이야말로 최초의 퓨전요리"라고 평하기도 한다. 세비체가 대표적 사례다.


세비체는 한국의 김치처럼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페루 음식. 생선살을 뭉텅뭉텅 잘라 고춧가루와 라임즙, 다진 양파, 실란트로(고수)에 무친 '페루식 생선회'다. 우리 생선회에 식초를 살짝 친 듯한 맛으로, 한국인 입에도 잘 맞는다. 원래 해안가에 살던 모체(Moche) 원주민의 음식이다. 모체족은 페루에서 '툼보(tumbo)'라고 부르는 바나나 패션프루트(banana passionfruit) 열매즙으로 신맛을 냈다. 하지만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감귤류의 일종인 라임(lime)을 들여왔고, 툼보를 라임즙으로 대체한 버전이 오늘날 전 세계가 즐기는 세비체로 완성됐다.


페루 대표 음식 ‘세비체’. 생선회에 식초를 살짝 친 듯한 맛이다. / 김성윤 기자


세비체, 집에서 이렇게 만들어 드세요

페루에는 원주민의 전통 방식이 남아있는 투박하고 독특한 음심들이 많다. 페루인들이 맵고 짠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입맛에도 잘 맞는 편.


쿠스코 ‘리모’의 기니피그 콩피 / 김성윤 기자

가장 대표적인 전통 음식으로 꾸이 차타도(Cuy Chatado)를 꼽을 수 있다.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잉카시대부터 전해져 온 귀한 음식으로 기니피그를 구워낸 요리다. 오랫동안 안데스 원주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나, 바비큐 통구이의 모습에 질려 먹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꾸이는페루 쿠스코 성당에 있는 최후의 만찬 그림에도 꾸이가 그려져 있다고 하며, 예로부터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별미나 제사 등 의식에도 쓰였다고 한다. ▶기사 더보기


페루 등의 안데스 산지에서 널리 알려진 음식으로 소의 염통을 양념해 꼬치에 끼워 구운 것이다. 잉카 제국 시절 부터 전해졌으나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쳐 양념이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은 길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소의 염통 뿐만 아니라 생선이나 채소 등을 꼬치에 꽂아 먹기도 한다.


엘 포풀라초 생선 안티쿠차블레(꼬치) / 김성윤 기자


알코올 도수 40도가 넘는 페루의 포도 브랜디 피스코에 레몬주스, 달걀 흰자, 설탕을 넣어 만든 페루 대표적 음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료 중 하나로 꼽힌다.


'페루'의 국민 술 피스코 사워 / 김성윤 기자



한때 테러집단 '빛나는 길'의 폭파 참수 암살 등으로 악명 높았던 이 나라는 2000년대 들어 요리를 앞세워 이미지 탈바꿈에 성공했다.  2013년 페루 정부 통계를 보면, 페루 관광의 40%가 음식을 맛보기 위한 것이었다. 남미 최대의 요리축제 '미스투라' 외에도미식 관광으로 그해 페루가 벌어들인 돈은 7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페루'의 마추픽추 / 김성윤 기자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포함된 리마의 최고급 레스토랑들 이전에 페루의 맛은 리마의 재래시장에선 아마존 민물고기로 만든 4000원짜리 회 샐러드 세비체가 코를 자극하고, 산페드로 시장의 감칠맛 나는 3000원짜리 닭국수가 협공으로 방문객을 끊임없이 불러들이고 있다. ▶기사 더보기


마추픽추도… 식·후·경



입력 : 2015.09.24 04:00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페루 요리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페루 요리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잇는 잉카레일 일등석은 달리는 레스토랑이다. 철길과 나란히 흐르는 빌카노타 강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식전주 피스코사워를 마시고 향긋한 송어 요리에 백포도주를 곁들이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강을 따라 1시간 30분간 북서쪽으로 달리면 하늘의 도시 마추픽추에 도착한다. / 잉카레일 제공


남미 겨울의 끝자락인 9월, 페루 수도 리마는 낮게 깔린 잿빛 구름 아래 잔뜩 웅크린 모습이었다. 페루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장편 '새엄마 찬양'에서 리마의 겨울을 이렇게 설명했다. '커튼을 걷자 축축하고 음산하며 희뿌연 리마의 9월 햇빛이 방 안을 덮쳤다. 겨울은 참으로 냉혹하고 모질다고 루크레시아 부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리마의 겨울에 짓눌린 이 귀부인을 위로하는 게 있었다. 바로 하녀가 쟁반 가득 담아다 그녀 앞에 펼친 요리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페루 요리


리마의 왼쪽, 태평양과 맞닿은 백사장에서 하필이면 9월에 남미 최대의 요리축제 미스투라(MISTURA)가 펼쳐진 이유도 겨울에 신물 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을까. 리마 최고의 고급 주택가 미라플로레스와 지척인 이곳에서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열린 미스투라 축제는 마음껏 먹고 마시며 우중충한 겨울 날씨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이들로 붐볐다. 9월에 리마를 찾는 이들은 이제 잿빛 하늘보다 미스투라 180여개 요리 부스와 군침을 돌게 하는 '페루의 맛'을 떠올린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이 요리 축제엔 페루는 물론 남미 전역에서 해마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행사를 주관하는 페루 요리협회(APEGA)는 올해 예상 방문객 수를 50만명으로 잡았다. 지난해에는 42만명이 이 행사를 찾았다.

페루 퀴진(Peruvian Cuisine)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요리다. 미 공영 라디오(npr)는 지난 4월 "최근 수년간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페루 레스토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레스토랑연합회는 2011년 이미 페루 요리를 '최고의 푸드 트렌드'로 꼽았다. 이런 결과는 절로 나온 것이 아니다. 페루 정부와 페루의 국민 셰프로 불리는 가스통 아쿠리오(Acurio) 같은 스타 셰프들이 손잡고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페루 요리 세계화에 나서고 있다. 7개의 서로 다른 고도와 기후대에서 생산되는 엄청나게 다양한 농수축산물 식재료는 이런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훌륭한 원자재 노릇을 했다. 미스투라 행사장에서 만난 셰프 아쿠리오는 "안데스산맥과 아마존, 태평양 연안 등 넓은 지역에 펼쳐진 다양한 기후대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생산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매일 4개의 페루 음식점이 새로 생기고 있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페루는 지난 세기 말 정치투쟁과 테러로 얼룩졌던 국가 이미지 변신의 동력도 요리에서 찾고 있다. 한때 좌익 테러집단 '빛나는 길'의 폭파 참수 암살 등으로 악명 높았던 이 나라는 2000년대 들어 요리를 앞세워 이미지 탈바꿈에 성공했다. 미스투라 외에도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해마다 2~3개의 페루 레스토랑이 포함된다. 2013년 페루 정부 통계를 보면, 페루 관광의 40%가 음식을 맛보기 위한 것이었다. 미식 관광으로 그해 페루가 벌어들인 돈은 7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50에 포함된 곳 위주로 리마의 최고급 레스토랑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페루의 맛은 리마의 멋진 레스토랑에만 있지 않았다. 리마의 재래시장에선 아마존 민물고기로 만든 4000원짜리 회 샐러드 세비체가 코를 자극했다. 빌카노타강을 끼고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 레일 열차에서의 한 시간 반 짧은 탑승 시간에도 어김없이 식전주(食前酒) 피스코사워가 식탁에 올랐고 향긋한 송어요리가 관광객의 배를 불렸다. '마추픽추도 식후경'이었다.


김태훈 기자
이현수 소설가
박돈규 기자
글·사진=김태훈 기자
정유진 기자
글·사진=임호준 헬스조선 대표
김태훈 기자
김태훈 주말매거진 3.0 팀장
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