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및 건축

[서울 빌딩 스토리]㉔ 경회루 빼닮은 전통 문화예술의 산실…장충동 '국립극장'

Shawn Chase 2016. 10. 16. 15:00


  • 김수현 기자

  • 이상빈 기자


  • 입력 : 2016.09.07 15:59 서울의 상징 중 하나인 남산은 서울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꼭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만큼은 고층 오피스 빌딩이나 성냥갑 아파트 대신 푸른 숲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어디에서 보더라도 존재감을 자랑하는 N서울타워(옛 남산타워)는 이런 남산을 상징하는 대표 건물로도 유명하다.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전경. /국립극장 제공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전경. /국립극장 제공

    남산의 볼거리로 N서울타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거진 녹지에 가려져 차를 타고 가면서는 언뜻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수십년 간 한국 전통 문화예술의 산실로서 은은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건물도 있다. 경회루를 빼닮은 외관에서 전통의 품격이 느껴지는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이다.

    ◆ 경회루 판박이 외관…2년간 공사 중단되기도

    국립극장은 1950년에 시작됐다. 같은 해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3년 대구로 이전했고, 1957년 서울 명동으로 거점을 다시 옮겼다. 지금의 자리에서 문을 연 건 1973년이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동양 최고의 건물을 지으라”면서 1960년대 직접 건축 지시를 했다고 전해진다.

    건축가 이희태씨가 경회루를 모티브로 삼아 극장 설계안을 만들었다. 당시엔 본보기로 삼을 마땅한 건물이 없어 1966년 개관한 일본 도쿄 국립극장을 많이 참고하기도 했다.

    윤준호 국립극장 시설관리팀 주무관은 “국립극장 1층이 일반적인 건물의 2층에 해당하도록 높이 설계됐고 건물 주변은 회랑(건물의 주요 부분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 형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이희태 건축가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건축 양식”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500여석 규모의 중극장인 ‘달오름극장’ 1층 회랑과 ‘해오름극장’ 기둥. /김수현 기자
    왼쪽부터 500여석 규모의 중극장인 ‘달오름극장’ 1층 회랑과 ‘해오름극장’ 기둥. /김수현 기자

    설계안이 완성된 후 1967년 야심차게 공사가 시작됐지만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 했다. 설계안대로라면 기둥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야 했지만 예산이 충분치 않았다. 지반 다지는 작업을 하면서 나온 암반을 인부가 일일이 잘게 쪼아 비슷한 질감을 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물자가 부족해 기본적인 장비는 물론, 알루미늄 막대와 같은 자재부터 벽지까지 모두 일본에서 수입해서 써야 했다. 이마저도 돈이 부족해 2년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착공 후 6년 만인 1973년 1500여석의 해오름극장(당시 대극장)과 500여석의 달오름극장(당시 중극장)으로 구성된 국립극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로는 혁신적이었던 회전무대와 슬라이드 무대 시설도 갖췄다. 별오름극장(2001년) 등 후속 건물도 뒤따라 들어서고 건물마다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해오름극장 내부에 있는 소품실(사진 왼쪽)과 회전무대. 회전무대는 내년 리모델링을 거쳐 정비가 진행될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해오름극장 내부에 있는 소품실(사진 왼쪽)과 회전무대. 회전무대는 내년 리모델링을 거쳐 정비가 진행될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개관 후 첫 공연은 국립극단의 ‘성웅 이순신’이었는데, 여기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공연 중 회전무대에 이상이 생겨 멈춰버렸던 것. 직원들이 모두 동원돼 회전무대를 밀면서 겨우 공연이 재개됐다.

    ◆ 국립극장은 현재진행형…내년 말 대대적 리모델링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 서울에서 1000석 이상을 갖춘 대형 극장이 대부분 서울 도심에 있는 것과 달리 국립극장은 남산 자락에 있어 접근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3호선 동대입구역인데, 역에서 극장까지 걷기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약간의 불편함은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기도 하다. 이락희 국립극장 시설관리팀 주무관은 “공연장을 지을 때 관건은 주변의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국립극장은 이런 점에서 최적의 공연장”이라면서 “남산에 둘러싸여 있어 도심에서 느끼기 어려운 정취와 공간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라고 말했다. (해오름극장 지상 5층 360도 사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부 곳곳에 전시된 미술품과 대형 북. /김수현 기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부 곳곳에 전시된 미술품과 대형 북. /김수현 기자

    국립극장은 2012년부터 시즌제를 도입, 매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공연을 진행한다. 공연 시작에 앞서 주변을 산책하는 관람객들이 많다는 것이 극장 측의 설명이다. 건물 내부에도 관람객들이 둘러볼 만한 미술품과 조형물 등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해오름극장 1층 로비 360도 사진)

    국립극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하에 국립창극단과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3개 전속단체의 통합 연습실을 만드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고, 내년 말부터 해오름극장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앞두고 있다.

    건립 과정에서 일본 국립극장의 가부키 전용극장을 참고함에 따라 한계로 지적됐던 완만한 객석 기울기를 적당한 수준으로 손보는 것이 핵심이다.

    윤준호 주무관은 “지금의 해오름극장 객석 배치는 현대극에 어울리지 않고 관람객들이 불편해한다는 지적에 따라 내년 말부터 공사에 나서게 됐다”면서 “2019년 새 시즌이 시작하는 8~9월 전에 공사를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