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30년 함께한 그들, 경조사 부부로 남았다

Shawn Chase 2016. 10. 16. 13:33

김민정 기자  



    입력 : 2016.10.13 03:00

    [황혼이혼 30% 시대… 자녀 때문에 결혼식 등 함께 참석]

    - 부모 이혼으로…
    명절엔 아버지 집·어머니 집 등 찾아뵐 곳 늘어 강행군해야
    갈라선 장인·장모 사이 안 좋아 돌잔치 아예 포기하기도


    증가하는 황혼 이혼 그래프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모(36)씨는 지난 추석 당일에 차를 몰고 경기 양평, 인천, 경기 파주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강행군을 했다. 양평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차례를 지내러 갔는데, 얼마 전 이혼한 아버지(67·인천)와 어머니(65·파주)가 큰댁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가 파주에 있는 어머니 댁을 나선 시간은 오후 9시가 다 돼서였다. 할 수 없이 처가는 다음 날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길이 막혀 세 곳 방문하는 데 운전한 시간만 9시간이 넘는다"며 "앞으로 명절마다 길에서 시간 버릴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가 이혼하는 '황혼(黃昏) 이혼'이 증가하면서 명절이나 경조사(慶弔事) 풍경도 변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5)씨는 올해 초 둘째 아이 돌잔치를 포기했다. 2년 전 이혼한 장인, 장모의 사이가 좋지 않아 한자리에 모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장인, 장모를 따로 만나 식사를 했다. 김씨는 "한 분만 돌잔치에 모시면 다른 한 분은 서운하실 것 아니냐"며 "두 분 모두 같은 서울에 사시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황혼 이혼'은 199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이지만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법원행정처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은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황혼 이혼'으로, 결혼 4년 이내에 이혼하는 것을 '신혼 이혼'으로 분류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2016사법연감'에 따르면 작년에 황혼 이혼한 부부가 3만2626쌍으로 전체 이혼 부부 가운데 29.9%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2007년 20%를 넘어선 뒤 2010년 23.8%, 2012년 26.4%, 2014년 28.7%로 증가했다. 2012년부터는 황혼 이혼이 '신혼 이혼'보다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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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는 부모의 이혼 결정을 존중하지만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 골치 아프다고 호소한다. 직장인 여모(33)씨는 지난 추석 황혼 이혼한 어머니에게 용돈을 더 드렸다가 이를 안 누나들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혼 후 재혼한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일정한 소득이 없어 용돈을 더 챙겨 드렸던 것인데 누나들이 "왜 엄마만 챙기냐"며 "아빠한테도 잘하라"고 한 것이다.

    여씨는 "아내는 재혼한 아버지 내외와 어머니까지 시부모가 셋인 셈"이라며 "더 큰 행복을 위해 이혼을 택하신 것에 찬성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형식과 체면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신경 쓸 일도 많고 시간도, 돈도 두 배로 들어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황혼 이혼 비율이 높아져도 이혼 가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아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일부 부부는 이혼이 자녀에게 흠이 될까 봐 자녀의 결혼식 이후로 이혼을 미룬다. 황혼 이혼을 하고 서로 연락도 않고 지내다가 자녀의 경조사에서만 만나는 '경조사 부부'도 있다. 황혼 이혼을 한 주부 손모(여·63)씨는 "사돈 보기에 집안 체면도 있고, 자녀에게까지 피해를 주기 싫어서 경조사에는 애들 아빠와 함께 참석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서는 자녀도 생기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황혼 이혼으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들을 언급하며 '부모님이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겠냐'는 문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 며느리가 시부모 사이를 좋게 만들기 위해 신체 접촉이 잦은 스포츠댄스 학원을 대신 등록해주기도 한다. 돌잔치를 포기했던 김씨는 "다섯 살 첫째 아들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따로 사는 이유를 묻기에 '엄마를 다 키워주시고 새로운 다음 목표를 세우신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황혼 이혼도 개인의 선택인 만큼 부모님 뜻을 존중해드려야 하지만, 대신 불필요한 체면치레를 줄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