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자살.. 4년만에 심리부검 자청한 40대 부인
동아일보 입력 2015.08.22. 03:09
본보 취재팀은 심리부검을 받은 40대 여성 유족 A 씨를 인터뷰해 심리부검을 받기 전과 받은 후의 변화를 들어봤다. 심리부검을 받은 유족이 언론에 직접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씨는 “나의 변화를 보고 더 많은 유족들이 심리부검을 통해 치료받기를 바란다”며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왜?’라는 질문에 갇혀 있던 4년의 시간
“경찰서인데요. ○○○ 씨 부인이시죠? 정말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2011년 어느 가을날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했다. A 씨는 다급히 병원으로 뛰어갔다. 남편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만나 평생의 반려자가 된 남편이었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자살했다.
그 뒤부터 A 씨는 그날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캐한 향냄새와 주변을 오갔던 검은 상복과 처연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A 씨의 손을 잡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과 부질없는 말들. 그리고 그 속에 덩그러니 놓인 A 씨. 아마도 A 씨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을 꼽으라면 주저할 것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날이었다.
A 씨는 그날부터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멍하게 한참을 서 있는 일이 반복됐다.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지만 졸음이 몰려와 한참을 자는 일도 여러 차례 벌어졌다. 남편의 죽음을 전화로 알게 된 기억 때문인지 A 씨는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있다가도 남편의 기억은 끊임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그를 괴롭혔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남편이 자살한 주된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A 씨는 “왜 나는 남편의 자살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혹시 내가 남편에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라며 수백 번, 수천 번 자책만 했다. A 씨는 남편이 왜 죽음을 택했는지 알고 싶었다.
A 씨가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남편의 이상 징후는 여러 가지였다. 남편이 자살하기 한 달 전쯤 A 씨의 가족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며 끝말잇기를 했다. 평소 아이들과 끝말잇기를 하면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하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이날 남편은 어렵지 않은 단어도 떠올리지 못하고 끝말잇기에서 완패했다. A 씨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돌이켜 보면 남편은 그때 정상적인 사고를 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 그맘때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보였던 행동도 자살의 이상 징후였다. 남편이 매일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쫓아간 A 씨에게 남편은 마치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대했다. 남편은 A 씨에게 “내가 죽으면 당신 슬프겠지?”라고 말하고는 치료를 받지 않으려 했다. A 씨의 완강한 설득에 남편은 결국 치료를 받았지만 A 씨는 아직도 그때 처연했던 남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남편이 죽기 전 갑자기 시골에 살 곳을 알아보러 다니던 일도 떠올랐다. 남편은 터를 잡으려 마을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지금 힘이 없고 그래서 병약한 인상을 줘서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떨군 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남편은 늘 쾌활한 사람이었다. 그날 자기소개처럼 나약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A 씨는 그렇게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남편의 생전 기억 하나하나를 홀로 곱씹으며 4년의 시간을 보냈다.
심리부검, 털어놓으니 정리됐던 시간
남편의 죽음에 매몰돼 살던 A 씨는 올해 5월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우연히 알게 됐다. 심리부검의 개념도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해 처음 알았다. 늘 남편의 죽음에 ‘왜?’라는 의문부호를 가지고 살던 A 씨는 센터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에 대해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A 씨가 남편에 대해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은 늘 “죽은 사람 얘기는 웬만하면 하지 마라”며 A 씨를 만류했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남편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A 씨는 남편이 죽기 직전 얘기만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남편과 행복했던 시절 얘기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마저도 거부했다. A 씨는 ‘자살이라는 선택 때문에 남편이 40년 넘게 세상을 살면서 만들어왔던 추억마저도 모두 부정당하는 경험’을 늘 하고 있었다.
굳게 마음을 먹고 5월 말 경기도에서 서울 서초구 중앙심리부검센터까지 갔지만 A 씨는 입구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낯선 이에게 남편의 죽음을 털어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1시간이나 동네를 맴돌았을까. A 씨는 결국 센터로 들어가 심리부검을 받았다.
심리부검은 3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A 씨는 상담원 앞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얘기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A 씨는 그저 마음에 품고 있었던 말들을 토해냈다. 남편과 처음 만났던 순간에서부터 시작해 자살하기 전 남편의 모습까지 설명했다. A 씨가 남편이 생을 마감한 후 처음으로 남편과의 기억을 차근차근 정리해본 날이었다. 그 중간에 심리검사도 진행됐다.
심리부검 뒤 요즘 A 씨는 부검을 받기 전보다 훨씬 홀가분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거나 멍해지는 일도 최근에는 겪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이제 쓸 수 있게 됐다.
사실 A 씨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센터 측으로부터 명쾌한 답을 들은 것은 아니다. 센터 측은 유족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따로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답해 주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A 씨는 “그렇게 남에게 남편과의 기억을 전부 다 털어놓고 정리하며 스스로 답을 얻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센터에서 추천해준 ‘너무 이른 작별’ ‘슬픔의 위안’ 같은 책들도 A 씨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됐다. 책을 읽으며 A 씨는 자신이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많이 벗어났다는 사실을 더 명확히 깨닫게 됐다. 그 때문에 A 씨는 더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의 죽음을 한 걸음 더 정리해 나간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활발한 심리부검
심리부검은 1958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드윈 슈나이드먼에 의해 처음 명확하게 규정됐다. 슈나이드먼은 “자살자 유가족을 인터뷰할 때 면담자가 고인의 삶에 대한 방식을 재구성해야 하고, 갑자기 사망에 이르는 순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리부검을 통해 자살한 이의 사망 원인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심리부검이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역사도 길다. 기초적 심리부검의 출발은 미국이었다. 1934∼1940년에 뉴욕 경찰 93명이 연이어 자살하자 원인 규명을 위해 미국 정부에서 주변인들의 얘기를 듣는 심리부검을 진행했다.
심리부검을 통해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국가로는 핀란드가 꼽힌다. 1980년대 중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던 핀란드는 1987년에 1년 동안 심리부검을 실시했다. 총 1397건의 사례를 심리부검한 결과 자살한 사람의 3분의 2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이들 중 85%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방치됐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후 핀란드는 의료기관을 찾는 모든 환자에게 우울증 검사를 했다. 그 결과 1986년 인구 10만 명당 30.3명이었던 핀란드의 자살률은 2011년에는 2분의 1 수준(인구 10만 명당 16.4명꼴)으로 줄었다.
아시아 국가에서도 심리부검은 활발한 편이다. 1993년 일본을 시작으로 1995년 대만, 1999년에는 인도, 2002년 중국으로 확대됐다. 일본은 1993년 93명에게 심리부검을 처음 시행한 이후로 2000년대 중반에 후생노동성 산하에 있는 국립정신보건연구소에서 전국 단위 심리부검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심리부검 첫 발걸음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5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심리부검은 이제 발걸음을 막 뗀 상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2명의 망자를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진행한 것이 가장 많았다. 복지부는 이 연구를 통해 자해를 2회 이상 시도했거나 자살 시도가 1회 이상인 사람, 최소 2회 이상의 반복적인 자살 의도를 표현한 사람,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을 1회 이상 받은 사람을 한국 사회에서의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자살률을 감안하면 72명만의 사례로는 정확한 자살 대책을 수립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한 해 1000명 정도의 심리부검 대상자가 있어야 정교한 대책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심리부검을 의무화하자는 법안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복지부가 올해 4월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열어 심리부검을 체계화하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적은 미미한 형편이다. 센터 측의 목표 심리부검 수는 200명이지만 현재까지 32명의 망자만이 심리부검 대상자가 됐다.
A 씨처럼 자진해서 센터를 찾아와 심리부검을 진행하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시도 단위의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자살한 이의 유족에게 권유를 해 심리부검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족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망자에 대해 말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심리부검을 통해 A 씨가 겪은 것처럼 유족의 마음이 치료될 수 있다는 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족 2, 3명의 얘기를 들어 정교하게 사인을 밝혀내는 심리부검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협업체계 구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심리부검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기 힘들다면 자살과 관련된 기관들이 협동해 심리부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한 사람이 생기면 경찰이 망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간략한 자살 동기를 알아보는 선에 그쳐 왔다. 변화는 있다. 경찰은 6월부터 만 19세 이상 성인의 변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인이 자살일 때 유족의 동의를 얻어 중앙심리부검센터에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류양지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해 심리부검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살 예방 대책을 수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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