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찬 기자
입력 : 2016.06.24 03:07
실리콘밸리 연고 워리어스팀 인수한 조 레이콥
선수 심장박동·움직임·무릎에 가해지는 힘 등 분석 기기
작년 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NBA(미국 프로농구)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Golden State Warriors·이하 워리어스)의 원정 경기. '간판 스타' 스티븐 커리와 클레이 톰슨은 모두 벤치에 머무른 채 출전하지 않았다. 경기는 패했다. 비싼 돈을 내고 온 팬(fan)들은 화를 냈다.
한 팬은 트위터에 "아들의 생일 선물로 250달러나 내고 이 경기를 보러 왔다"며 불평했다. 다른 팬은 "커리를 보려고 사우스다코타에서 가족들과 함께 8시간이나 차를 몰고 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 ▲ 2010년 만년 하위팀이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인수해 5년 만에 정상으로 이끈 벤처투자자 조 레이콥(Lacob). / 블룸버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은 성난 팬에게 직접 이메일을 써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이유'란 호주의 캐터펄트(Catapult)란 회사가 만든 자그마한 IT(정보기술) 기기였다. 길이 10㎝ 남짓한 이 기기에는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GPS)을 비롯해 평형계, 가속도계, 자력계, 안테나 등이 탑재돼 있다. 워리어스 선수들이 연습 경기를 뛸 때마다 등의 어깨뼈 부분에 부착하면 순간적인 가속, 멈춤, 미세한 동작 변화, 심장박동, 무릎과 발목에 가해지는 힘 등을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기기 내부에 탑재된 반도체는 초당 1000개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워리어스는 일찌감치 캐터펄트의 기기를 선수 분석에 활용하고 있었다.
그는 이 데이터를 통해 커리와 톰슨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그날 저녁 경기에서 쉴 것을 지시한 것이다. 워리어스는 그날 밤 덴버에서의 한 경기에선 패했지만, 그해(2015년) NBA에서 4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워리어스의 연고지는 캘리포니아주(州) 오클랜드다. '미국 벤처의 산실(産室)' 실리콘밸리에서 불과 60여㎞ 떨어진 곳이다. 워리어스는 작년 NBA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20일 열린 올 시즌 결승 7차전에선 상대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4점차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워리어스는 올해 NBA 역사상 시즌 최다승(73승)과 준우승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준우승팀이 올해 우승팀보다 조명받는 이유는 워리어스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결승전은 고사하고 서부 리그에서조차 바닥을 맴도는 하위권 팀이었기 때문이다. 30여년 경력의 벤처투자자 조 레이콥(Lacob)이 2010년 4억5000만달러(약 5200억원)라는 거액을 들여 팀을 인수한 후 워리어스는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感)보다 숫자를 믿는 그는 실리콘밸리식(式) 경영기법과 첨단 IT를 팀 운영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만년 하위팀 워리어스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워리어스는 NBA에서 가장 IT를 잘 활용하는 팀으로 꼽힌다. 캐터펄트뿐만 아니다. 홈구장인 '오라클 아레나'의 지붕에는 '스포트뷰(SportVU)'라는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6대의 카메라로 이뤄진 이 장비는 경기장 내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초당 25장의 사진을 포착한다. 공을 드리블하고 패스하는 선수의 세세한 동작들, 코트를 얼마나 누비는지, 팀 동료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를 모두 기록·분석한다. 워리어스는 NBA 리그에서 가장 먼저 스포트뷰를 활용한 팀 중 하나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코치는 선수들의 컨디션, 부상 위험도를 더 잘 알게 됐다.
-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홈구장 ‘오라클 아레나’에서 지난 20일 결승 7차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 구장의 지붕에는 선수들의 세세한 움직임을 읽는 첨단 카메라가 달려 있고, 중앙의 대형 전광판에는 팬들의 트위터 메시지 등 응원 문구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 연합 AFP
데이터 전문가를 채용해 분석에 나서자 50%에 못 미치던 승률이 치솟기 시작했다. 2013년 57%, 이듬해 62%, 2015년엔 82%로 올라섰다. 올 시즌 승률은 89%(73승9패)다. 10번 싸우면 9번 이기는 경이로운 수치다.
워리어스의 IT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엔 핀란드 기업 '오메가웨이브'와 함께 선수들의 얼굴에 전극(電極)을 부착해 심장박동과 같은 신체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선수들이 잘 때 마스크를 씌워 수면의 질(質) 분석에도 나섰다.
- ▲ ① 워리어스 선수들이 연습경기 때마다 등에 부착하는 IT 장비 ‘캐터펄트’. 초당 1000개 이상의 신체 움직임, 충격 등을 기록·분석해 선수 관리에 활용한다. ② 농구 경기장 지붕에 설치한 6개의 ‘스포트뷰(SportVU)’ 카메라. 경기 중 선수들의 미세한 움직임, 이동 경로, 위치 등을 초당 25회 촬영한다. ③ 스포트뷰를 통해 분석한 농구 경기의 모습. 한 선수가 경기 내내 몇 ㎞를 달리는지, 팀 동료들과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세세하게 분석한다. / 캐터펄트·NBA 제공
실리콘밸리와의 끈끈한 유대도 워리어스의 탄탄한 자산(資産)이다. 벤처투자자 출신인 조 레이콥은 구단을 인수한 뒤 홈구장 내부에 '브리지 클럽(Bridge Club)'이란 공간을 만들고 소액주주들과 손님들에게 개방했다. 레이콥을 구심점으로 이곳은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 벤처기업가들의 사교장이 됐다. 명사(名士)가 모이자 미디어의 관심이 쏠렸고 자연히 팀의 위상도 올라갔다. 애플의 에디 큐 수석부사장, 실리콘밸리의 '큰손'으로 통하는 벤처투자자 벤 호로위츠 등이 워리어스 관중석에 앉은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자주 포착됐다.
워리어스도 트위터 본사에서 새로운 유니폼을 발표하는 등 실리콘밸리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간판 스타 스티븐 커리는 '스포츠스트림'이란 스타트업(신생 기업)의 소셜미디어 앱 파트너가 돼 서비스를 앞장서 홍보하기도 했다. 미 포브스지는 '워리어스와 실리콘밸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빠지게 됐는지'를 분석하는 기사까지 냈다. 올해 우승컵을 놓친 패자(敗者) 워리어스에 더 큰 기대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연고지 :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홈구장 : 오라클 아레나
―창단 : 1946년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주요 전적 : 우승 4회, 시즌 최다승(73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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