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랜시스코 박성우 기자
입력 : 2016.06.20 06:01
- ▲ 아마존 에코의 모습 /박성우 기자
“알렉사, 지금 몇시야?(Alexa, What time is it now?)”
6월 14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버클리에 사는 스타트업 대표 A씨의 초대로 8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한창 요리 중이던 A씨가 갑자기 허공을 향해 시간을 물었다. 그러자 약 2m(미터) 정도 떨어진 컴퓨터 책상 위에 있던 스마트 스피커 ‘아마존 에코(Amazon Echo)’에 불빛이 들어오더니 “지금은 8시 30분입니다(It is eight thirty)”라고 답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우와’, ‘신기하다’, ‘대박’ 등 감탄사를 연발했다. 10여명의 사람이 웃고 떠드는 시끄러운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사용자의 목소리를 정확히 인식해 반응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마존 에코의 핵심은 기기에 탑재된 인공지능(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알렉사다. 알렉사는 사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에코에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정보를 수집해 그 결과를 전달한다. 날씨를 묻는 말에는 현 위치를 파악해 해당 지역의 날씨를 알려준다.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달라고 요청하면 음악이 흘러나왔고 “알렉사 스톱”이라고 말하면 즉각 음악재생을 멈췄다. 에코는 심지어 차량공유서비스 ‘우버’나 ‘도미노피자’를 주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와이언 피자 주문해줘”라고 말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도미노피자 점포에 주문을 넣는 식이다.
◆ 아마존 에코, “사람 말, 찰떡같이 알아들어”…美소비자 만족도 ‘최고’
최근 미국 시장에서 아마존 에코의 반응이 뜨겁다. 6월 17일 기준 아마존의 에코 홈페이지에는 3만7773개의 리뷰가 달렸으며, 평균 평점은 5점 만점에 4.4점이다. 응답자의 67%가 제일 높은 점수인 5점을 줬다. 평점이 높을수록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인텔리전스리서치파트너스(CIRP)에 따르면 에코는 올해 3월말 기준 미국에서 4백만 대가 판매됐다.
에코의 가장 큰 강점은 높은 음성인식률이다. 에코는 원거리음장(far field) 음성 인식 기술을 적용해 주위에 소음이 있어도 6∼7m 거리에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A씨는 “에코는 사용자의 영어 발음 패턴을 인식하는 기능이 있어 발음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말도 잘 알아듣는다”며 “에코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장비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에코의 성능을 체험하기 위해 3m쯤 떨어진 화장실 입구에서 조용하게 알렉사라고 말했다. 설마 ‘반응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에코에 불빛이 들어오며 지시를 기다렸다. 좀 더 욕심을 내서 고음과 저음, 알렉사가 아닌 알렉스, 알렉, 렉스 등으로 불러봤다. 에코는 소름이 돋을 만큼 훌륭하게 반응했다. 그동안 애플 시리, 구글 나우, 마이크로소프트(MS) 코타나 등 다양한 비서 서비스를 사용해 봤지만, 음성 인식률로는 정말 최고였다.
에코를 호출하기 위해서는 알렉사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한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면 알렉사를 대신해 본인의 이름이나 특정 단어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여자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팬이라면 ‘스위프트’라고 설정해 호출할 수 있다.
- ▲ 아마존 에코 디자인과 하드웨어 사양 소개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에코의 기능은 알람, 시간·날씨 확인 등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14년 출시된 에코의 기능은 매주 업데이트된다. 최근에는 주요 뉴스와 스포츠 게임의 결과를 음성으로 말해주는 기능도 등장했다. 만약 조명, 가전 등 스마트홈 기능을 탑재한 제품들과 연동할 경우 해당 제품을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다. 잠자리에 누웠다가 조명을 끄기 위해 다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조명 꺼(turn the light off)”라고 말하면 된다.
이 밖에도 에코는 구글 캘린더와 연동해 사용자의 스케줄도 관리해준다. “다음 스케줄이 뭐니?”라고 물으면 현재 시각을 파악한 뒤 구글 캘린더에 등록된 스케줄을 음성으로 알려줬다. 또 “내일 오후 6시 시내에서 저녁약속”이라고 말하면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등록했다. 에코를 사용해보는 동안 똑똑한 개인 비서를 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생태계 구축으로 웃은 아마존…SDK공개·인수로 맹추격하는 애플·MS
에코의 또 다른 강점은 활용도다. 현재 에코 기능은 1000여개로 애플 시리 등 경쟁 제품을 압도한다. 애플은 2011년 시리라는 강력한 비서 서비스를 내놨다. 당시만 해도 시리는 높은 음성인식률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애플은 보안을 이유로 시리를 서드파티(제3의 협력자)에게 공개하지 않았고 앱스토어처럼 막강한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반면 아마존은 알렉사를 선보인 직후부터 알렉사 개발자도구(SDK)를 공개했다. 많은 개발자들이 알렉사를 활용해 다양한 기능을 내놨다. 알렉사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에코가 우버를 부르고 피자를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아마존이 우버, 도미노피자,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핏빗 등과 협력체계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알렉사 AI와 아마존 에코를 개발하는 인력만 1000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 ▲ 아마존이 에코의 다양한 기능을 위해 협력 중인 기업들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아마존은 알렉사의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1억 달러(약 1100억원) 수준의 ‘알렉사 펀드’도 조성했다. 펀드의 초기 투자 대상으로 요리 기구, 가정용 보안 시스템, 원격 감시 시스템, 아동용 장난감, 운동 관리 앱, 스마트 자동차 앱 등을 개발하는 신생기업 7곳을 선정했다.
아마존은 알렉사의 사용처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최근 아마존은 에코에 이어 외부 스피커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에코닷(Echo Dot)’과 휴대용 에코인 ‘아마존탭(Amazon Tap)’을 출시했다. 에코닷은 블루투스 무선 통신이나 오디오 케이블을 이용해 외부 스피커와 연결해서 사용한다. 크기가 작아 침실 등의 알람시계용으로 유용하다. 아마존탭은 말 그대로 손가락으로 터치해야 음성 명령에 반응한다. 외부에서도 최대 9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아마존의 에코가 인기를 끌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애플과 MS다. 애플은 6월 13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시리의 SDK를 공개했다. 애플은 아마존 에코처럼 가정 내에서 IoT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제품을 새롭게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시리SDK 공개와 함께 시리의 사용처를 PC, 노트북, 애플TV 등으로 확대했다.
- ▲ 스마트폰에서 애플 시리, 구글 나우, MS 코타를 사용하는 모습 /구글 이미지 캡처
MS는 6월 15일 비즈니스계의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링크드인’을 261억달러(약 30조원)에 인수했다. 전문가들은 MS가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 링크드인을 인수한 이유에 대해 코타나와 결합해 시너지를 내려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코타나, 중국 스마트폰 전문가 좀 알려줘”라고 물으면 링크드인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답하는 식이다.
결론적으로 에코는 그동안 등장한 시리, 나우, 코타나 등 수많은 비서 서비스 가운데 가장 쓸만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에코는 현재 아마존에서 179.9달러에 판매 중이다. 다만 에코의 모든 기능과 소통이 영어로만 해야한다는 점은 아쉽다. 한국어 명령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또 스마트홈 기기를 일일이 에코와 연동시켜줘야 한다는 점도 불편하다.
[WWDC 2016] 애플, 인공지능 '시리' SDK 공개...중국 시장 대대적 강화 예고(종합)
입력 : 2016.06.14 06:38 | 수정 : 2016.06.14 09:13 애플이 인공지능(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시리(Siri)’에 대한 정책을 확 바꿨다.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폐쇄주의 전략을 고집했던 애플이 시리 개발자를 위한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전격적으로 공개하는 등 대대적인 시리의 저변 확대에 나섰다.
13일(현지시각) 오전 10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세계개발자대회(WWDC) 2016에서 애플은 “스마트폰 뿐 아니라 데스크톱PC ‘맥북’에도 시리를 탑재하는 등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인공지능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WWDC는 애플이 주최하는 연례 최대 행사로 올해에는 애플이 보유한 4개 OS ‘맥OS’, ‘iOS’, ‘와치OS’, ‘TVOS’의 전략이 집중적으로 발표됐다. 새로운 하드웨어 기기 발표는 없었다.
이날 행사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제안으로 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최악이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 ▲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최신 운영체제(OS) 4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박성우 기자
◆ 시리 SDK 공개...터치 기반의 앱 생태계가 음성 인식 앱 기반으로 전환 예고
SDK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 시스템, 운영체제(OS), 데이터 등을 제공하는 집합체를 말한다. 애플은 서드파티(제3의 협력자) 개발자들이 시리를 응용한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시리의 SDK를 공개했다.
그동안 개발자가 음성인식 앱을 개발하려면 복잡한 음성인식·처리 기술을 확보하고 음성 데이터베이스(DB)도 구축해야 했다. 하지만 시리 SDK가 공개됨에 따라 앞으로 개발자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시리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팀 쿡 애플 CEO는 “애플 생태계는 애플 혼자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며 개발자와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 ▲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부사장이 13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WWDC 2016에 참석해 시리 SDK를 소개하고 있다. /애플 제공
예를 들어 기존에는 스케줄 앱에서 음성으로 일정을 입력하는 기능을 만들어도 광범위한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약속된 명령어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리 SDK를 활용할 경우에는 “15일 점심 스케줄 넣어라”, "15일에 점심 일정", "15일 12시 점심약속" 등으로 말해도 일정을 등록할 수 있다.
그동안 애플은 프라이버시 문제를 이유로 시리 SDK의 공개를 꺼려왔다. 애플은 사용자가 시리를 사용하면서 말한 질문과 메시지, 명령 등의 음성정보를 최대 2년간 저장하고 있다. 애플이 주춤한 사이 아마존의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알렉사'가 치고 나오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우버, 도미노피자 등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알렉스를 통해 차를 부르거나 피자를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시리는 올해 9월 출시될 예정인 아이폰7의 흥행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프루언트에 따르면 아이폰 사용자 가운데 42%가 시리 기능이 크게 향상될 경우 차기 아이폰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애플은 WWDC 2016에서 시리를 PC, 노트북 운영체제인 ‘맥OS’에도 넣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가을 출시 예정인 ‘맥OS 시에라’에는 시리가 탑재된다. 그동안 시리는 아이폰, 아이패드 등 iOS가 탑재된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바일 기기에서만 작동했다.
국내 한 앱 개발자는 “과거 터치 기반의 앱 생태계가 음성인식으로 바뀌는 등 시리는 향후 아이폰7과 애플워치, 애플TV 등 애플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 편리해진 ‘워치OS3’ 눈에 띄네...TV OS엔 싱글사인온 기능
- ▲ 애플TV OS에 적용된 신기술의 모습. (왼쪽에서 두번째) 시리를 상징하는 물결 무늬의 아이콘 /박성우 기자
애플이 이날 공개한 애플워치 전용 OS인 ‘워치OS3’는 애플리케이션(앱) 로딩 속도를 대폭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앱을 실행하면 0.1초 만에 실행된다. 케빈 린치 애플 스마트워치 담당 부사장은 “앱 로딩 속도가 7배 빨라졌는데, 마치 100만배 빨라진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치OS3에는 SOS 기능도 추가됐다. 사용자가 911을 불러야 할 때 시계 옆 버튼을 길게 누르면 긴급 전화로 연결하기 전 카운트다운 숫자가 나타난다. 또 비상연락처로 사용자의 위치를 전송하거나, 사용자의 건강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애플TV 전용 OS인 tvOS는 사용자가 쉽게 조절할 수 있는 리모트 앱을 지원한다. 리모트 앱은 쉽게 말해 앱 형태의 리모컨이다. 사용자는 손가락 터치로 쉽게 리모트 앱을 조작할 수 있다. 또 애플TV에 시리가 탑재됐기 때문에 사용자는 음성으로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중복 로그인을 줄여주는 ‘싱글사인온’ 기능도 탑재됐다. 애플TV에 한 번 로그인하면 맥, 아이패드 등 애플의 다른 기기에서도 자동 로그인이 이뤄지는 기능이다. 사용자가 아이폰에서 내려받은 앱이 애플TV 화면에 곧바로 표시되기도 한다. tvOS는 올 가을에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맥 컴퓨터 전용 OS의 이름은 15년 동안 ‘OS Ⅹ’였다. 애플은 이번에 OS X란 이름을 ‘맥OS’로 바꾸고, ‘맥OS 시에라’를 올해 가을 출시한다고 전했다. 맥OS 시에라는 사용자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잠금을 해제하는 오토 언락(Auto Unlock) 기능을 지원한다. 가령 사용자가 맥북을 덮었다가 다시 열 경우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더라도 맥OS 시에라가 주인임을 파악해 잠금을 풀어준다.
◆ 애플, 중국 시장 대대적 강화 예고
- ▲ 애플와치의 스크리블 기능을 이용해 한자를 적는 모습 /박성우 기자
WWDC 2016는 애플이 중국 시장을 얼마나 신경쓰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애플은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을 시연할 때마다 중국의 인기 앱으로 시연하거나 중국 앱을 언급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애플은 애플와치의 새 기능 ‘스크리블(scribble, 휘갈려 쓴 글씨)’을 소개했는데, 발표자는 조그마한 애플워치 스크린 위에 손가락으로 영어 ‘Starbucks(스타벅스)’와 중국어 ‘八点(피디엔, 8시)’을 입력하는 것을 시연했다. 스크리블 기능은 영어와 중국어만 된다. 아이폰 운영체제 iOS10은 중국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를 지원한다. 애플은 또 중국의 텐센트시큐리티와 협력해 스팸 전화번호를 걸러주는 서비스를 중국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애플이 연례 최대 행사인 WWDC에서 ‘친(親) 중국 행보’를 이어간 것은 중화권에서 애플 매출의 4분의 1 이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애플에는 중국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최근 화웨이, 오보, 비포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잇따라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5위권에 진입하는 등 애플을 맹추격하고 있다. 애플이 중국 시장에 이래저래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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