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입력 : 2016.06.06 20:52:02 수정 : 2016.06.06 20:54:40
갑작스럽게 대권 레이스에 불이 붙은 느낌이다. 총선 직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여당은 총선패배로 차기 운운할 형편이 아니었다. 총선에서 선전한 야권에서는 개인 욕심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초래해 모처럼 얻은 좋은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분위기를 바꾼 전환점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이었다. 올해 1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그는 예상과는 달리 대권에 대한 야망을 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갑자기 여권에 유력후보가 등장한 셈이다. 그 이후 야권에서 잠재적 차기 후보들이 대권을 향한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흐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기적으로 이들의 움직임이 겹치면서 여론의 관심을 대권경쟁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 것은 사실이다.
반기문만이 후보로 전면에 부상해 있는 여권에 비해 야권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이 무대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의외의 인물들은 아니다. 다만 현역 자치단체장이거나, 당내 기반이 약하거나, 정계은퇴를 선언한 적이 있는 등 이들에게 각자 대권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주춤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있다. 또 이미 문재인과 안철수가 유력한 후보로 자리하여 세를 양분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후보군이 이처럼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들의 움직임이 여론 떠보기에 그칠 수 있지만, 당분간 이들의 탐색은 적극적으로 진행될 조짐을 보인다. 문과 안이 유력한 차기 후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들이 승리할 수 있는 후보인가라는 점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 반기문이 차기 후보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야권에서 다른 후보들이 나설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반기문이 이 지지율을 본선까지 유지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당분간 야권 후보들에게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이들 중 과연 누가 경선국면까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변화는 야권에 긍정적이다. 최근 두 차례의 대선에서 야권 후보군의 스펙트럼은 지나치게 좁았다. 대부분 참여정부 출신이었다. 대권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은 다소 싱겁게 끝났다. 손학규나 안철수 등 정치인으로서의 성장 경로가 다른 후보들이 등장했으나 경쟁에서 막상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하거나 물러났다. 그 결과 야권이 참여정부의 연속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지지층을 넓히는데 제약을 받았다. 야권이 좋은 분위기에서 출발했던 2012년 양대 선거에서 패배한 데에는 그런 원인 역시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인물군이 후보로 나설 조짐이고 각자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모처럼 야권에서 지도자 풀을 확대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여러 후보가 무대에 오르면 이에 따른 부담도 있다. 야권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후보군의 증가가 원심력을 증가시키고 야권 분열을 더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이다. 문과 안의 양자구도가 강화되는 것이 오히려 분열을 더 고착화시킬 수 있다. 이 경쟁구도는 그동안 쌓인 사연과 감정들로 인해 정서적 대립과 배제의 논리의 지배를 받기 쉽다. 이 점이 야권이 더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여러 후보가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대결구도를 비전의 경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더 많은 유권자가 그 경쟁에 참여할 수 있고 여기서 승리한 후보는 야권을 폭넓게 묶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또 대권경쟁을 조기에 과열시킨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막 몸을 풀기 시작한 경쟁자들에게는 적절한 비판이 아니다. 내년 대선은 누가 봐도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주요 선거이다. 한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서로 경쟁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다. 현재의 유력한 후보들끼리의 경쟁으로 대권 경쟁이 굳어지는 것이 더 문제이다.
물론 여러 야당들에서 선출된 후보들이 어떤 식의 합종연횡을 할지는 불분명하다. 꽤 오랫동안 마지막 퍼즐이 맞추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정치에서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행동을 결정할 수는 없다. 당장은 물을 고이게 하기보다는 물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이 만들어내는 힘을 통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더 많은 잠룡들의 기지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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