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who] "하늘에서 죽음이…" 연설문 쓴 오바마 측근

Shawn Chase 2016. 5. 31. 01:37


입력 : 2016.05.30 03:00 | 수정 : 2016.05.30 09:12

[벤 로즈 NSC 부보좌관]
히로시마 방문 권하고 총지휘, 문학 전공… 감성적 표현 능해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벤 로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벤 로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백악관

"71년 전 어느 맑은 아침,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져 내렸다(Seventy-one years ago, on a bright cloudless morning, death fell from the sky)."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7일 첫 원폭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이날 연설은 감성적 표현과 유려한 필치로 '핵 없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연설문을 쓴 사람이 벤 로즈(39)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이라고 2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그가 오바마 대통령과 상의해 초고(草稿)를 쓰고, 이를 일선 부서에 보내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로즈 부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2009년), 카이로 연설(2009년) 등 주요 연설문을 담당했다.

미국 남부의 명문대인 라이스대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꿈이 작가였다. 대학 졸업 후 작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대 대학원 창작학과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2001년 9·11 테러를 뉴욕 현장에서 목격한 이후 정치에 뛰어들었고, 2008년 오바마 대통령 선거 캠프에 합류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연설문 작성뿐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히로시마 방문을 사실상 총 지휘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히로시마 방문을 권한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행(行)을 고민하며 로즈 부보좌관을 포함한 데니스 맥도너 대통령 비서실장,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밸러리 재럿 선임고문 등 측근 4인방에게 자문을 했다. 라이스 보좌관은 한국과 중국 의 반응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로즈 부보좌관을 포함한 나머지 세 명은 적극 찬성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결정된 후, 핵무기 사용에 대한 '사과'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직접 해명에 나선 이도 그였다. 그는 블로그에서 "이번 방문이 2차 세계 대전을 끝내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한 결정에 대해 다시 논의하려는 건 아니다"고 했다.


오바마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져 내렸다"… 原爆 희생자에 71년만의 애도


입력 : 2016.05.28 03:00 | 수정 : 2016.05.28 09:46

[묵념 때 고개 안 숙였지만… "일본엔 사죄로 비칠 것"]

- 美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
위령비에 헌화, 사과는 안해
한국인 희생도 언급했지만 따로 위령비 들르지는 않아
- 오바마 "하늘에서 죽음이 내렸다"
"일본인 10만, 한국인 수천명 등 그들의 영혼이 우리에게 말해" 핵 없는 세상·美日 동맹 강조
- 꼿꼿하게 선 채 눈만 감았지만
日우익에 면죄부 준다는 비판도
평화기념관은 전쟁 피해만 강조… 한국 피폭자들은 초대 못 받아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 2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 2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 투하 71년 만에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EPA 연합뉴스


27일 오후 5시 38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 흰 카네이션 화환을 바쳤다. 1945년 8월 6일 미군 폭격기가 히로시마 상공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한 지 71년 만에 처음으로 현직 미국 대통령이 그날 죽은 사람들을 위해 10초간 묵념했다.

그는 이날 묵념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꼿꼿하게 선 채 눈을 감았다 뜬 뒤 위령비 앞에 모인 일본인 피폭자와 각계 인사 100명을 향해 "71년 전 맑은 아침,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져 내렸다. 우리는 그날 숨진 십만명의 일본인, 수천명의 한국인, 십여명의 미군 전쟁 포로를 애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가 이곳 히로시마에 왔는가"라고 반문한 뒤 "그들(희생자들)의 영혼이 우리에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묵묵히 들었다.

그는 서두에 한국인을 언급했지만 불과 150m 떨어진 조선인 위령비엔 가지 않았다. 우리 외교부는 "현직 미국 대통령이 최초로 히로시마 현장에서 한국인 희생자를 명시적으로 애도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누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는지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18분 분량 연설 대부분을 '핵 없는 세상'에 할애했다. 그는 "미국을 포함해 핵무기를 가진 나라들이 핵 없는 세상을 만들 용기를 내야 한다"고 했다. "핵무장이 새로운 국가로 확산되거나 광적인 집단이 위험 물질을 손에 넣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북한을 겨냥한 경고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 방문에 앞서 야마구치(山口)현 이와쿠니(岩) 미군 기지에 들러 장병들을 격려하고 "미·일 동맹은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기반"이라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G7 정상회의가 열린 미에(三重)현 시마(志摩)시를 떠나 전용기와 헬기를 갈아타며 히로시마에 왔다. 공원 주변 평화대로에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펄럭거리고, 히로시마 시민들이 길가에 나와 손을 흔들고 박수를 쳤다. 열한 살 때 원폭 투하를 겪었다는 이케가미 기누요(83)씨가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27일 오바마 대통령 히로시마 동선


오바마 대통령 이전에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왔다. 하지만 닉슨은 당선 전, 카터는 퇴임 후였다. 현직인 오바마는 "전후 미·일은 동맹을 맺었고, 양국 국민은 전쟁보다 우정을 통해 훨씬 많은 것을 얻었다"며 "희생자들의 영혼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일에 앞서 베트남을 찾아 50년 넘게 이어진 무기 금수 조치를 풀었다. 미국 내 일부 반대 여론을 거스르며 히로시마 방문을 결단했다. 과거의 적국인 베트남을 끌어안고, 미·일 동맹을 한 단계 강화하는 구도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히로시마 방문을 쿠바 국교 회복과 이란 핵 합의 등과 함께 재임 중의 주요 레거시(legacy·정치적 유산) 중 하나로 규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 방문이 '핵 군축 이니셔티브'라고 강조했지만, 그가 임기 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칫 일본 우익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상을 강조해 왔지만, 그의 재임 기간 중 미국의 핵 군축 속도는 오히려 더뎌졌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문이 사죄로 비치지 않게 조심했지만, 상당수 일본 국민에게는 '사실상 사죄'로 비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이달 초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결과 "원폭 투하는 비인도적인 행위로 용서할 수 없다"는 의견이 31%, "비인도적이지만 이제는 그렇게 깊은 원한은 없다"는 의견이 33%에 달했다. 일본인의 3분의 2가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히로시마 방문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끝낸 '종전(終戰)'에 대한 사과로 해석될까 봐 피해국들이 염려하고 있다"고 썼다.

특히 중국이 반발했다.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오바마가 일본 우익에 이용당했다"면서 "국력이 약해진 미국이 (미·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베 정부 환심을 사려 이벤트를 벌였다"고 썼다.

1945년 9월 7일 미군 군복을 입은 한 남성이 부서진 건물 잔해 위에 서서 뼈대만 남은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원폭을 투하한 나라와 원폭 피해를 입은 나라의 지도자가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데는 71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1945년 9월 7일 미군 군복을 입은 한 남성이 부서진 건물 잔해 위에 서서 뼈대만 남은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이 촬영되기 한 달 전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14만명이 사망했다. 원폭 투하 지점에서 580m 거리인 이 건물 안에 있던 30명도 목숨을 잃었다. /Getty images 이매진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오후 5시 25분에 도착해 6시 13분 떠날 때까지 48분간 평화기념공원에 머물렀다. 그중 10분을 할애한 공간이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이다.

이 자료관에는 원폭 투하로 숨진 중학생의 교복은 물론 원폭 투하로 백혈병에 걸린 10대 소녀가 1955년 죽기 전에 접었다는 1000마리 종이학까지 히로시마 사람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하지만 히로시마가 일본의 군수 산업 기지 중 하나였고, 일본 군부가 연합군의 거듭된 항복 제의를 무시하며 무모하게 '일억총옥쇄'를 고집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료는 좀처럼 없다.

이날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는 일본 피폭자 대표로 쓰보이 스나오(91)씨와 마스오카 세이시치(85)씨가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두 사람과 악수하고 포옹했다. 그러나 한국 피폭자들은 끝내 초대받지 못해 공원 안에 못 들어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헌화와 연설을 마친 뒤 원폭 돔 앞으로 자리를 옮겨 설명을 듣고 곧바로 차에 올라 현장을 떴다.




오바마의 착각


최원석 기자



입력 : 2016.05.28 03:00

[오늘의 세상]

한국 희생자 3만인데 "수천명"


오바마는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가진 연설에서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한 사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 뒤 일본인 사망자를 10만명, 한국인 사망자를 수천명이라고 말했다.

이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이나 일본·한국 정부가 밝힌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망자의 공식 자료와 차이가 있다. 우선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망자는 14만명으로 나와 있다. 이 가운데 3만명이 한국인 사망자다. 따라서 일본인 사망자를 10만명이라고 말한 것은 공식 발표 자료보다 다소 적다. 특히 오바마가 한국인 사망자를 수천 명이라고 말한 것은 실제 사망자 수 3만명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이다.

오바마가 언급한 숫자와 공식 자료가 다른 것은 오바마의 연설문 작성시 사용한 자료가 일본 정부 등의 공식 자료가 아니라 과거 자료 또는 다른 자료를 참조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해도 한국인 사망자 수를 실제보다 크게 낮춰 말한 것은 '오바마의 착각'이라 부를 만하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