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5.30 03:00 | 수정 : 2016.05.30 09:11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역경 딛고 정착한 탈북민들, 대부분 작은 도움에서 출발
우리 사회서 조금만 손잡아주면 어엿한 일원으로 설 사람 많아
통일 후엔 고향으로 돌아가 멀어진 南北주민 연결 역할
탈북민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의 손광주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 안착한 탈북민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북한)에 돌아가 남한에서 배운 것들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한다"며 "3만 탈북민은 통일 이후 남북의 멀어진 관계를 연결하는 사다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통일이 되면 2400만 북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남에 먼저 온 3만명의 탈북민은 남북이 하나가 되는 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 공간)다. 조선일보는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통일 미래 시대'를 준비하는 일환으로 탈북민들이 어떻게 자유민주·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가를 고민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손 이사장은 "'고기 잡는 법(정착 방법)'을 배워야 하는 탈북민과 이를 가르쳐줄 우리의 단체·개인을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 개인들 차원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름 모를 공무원 총각·버스회사 회장이 도와줘 운전대 잡아"
입력 : 2016.05.30 03:0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자격증으로취업한 탈북민들
버스기사 유금단씨
"고용부 총각, 학원비 받게해주고, 버스회사 회장은 용기주며 채용…
10년째 남한 사람들 태워나르니 남한 사람들 삶에 일부가 됐다"
함경북도 산골 마을에서 6·25전쟁 납북자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난 유씨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농사일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 혼자 넘어온 뒤 몇 년간은 대부분의 탈북민들처럼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 식당 서빙, 수퍼마켓 점원 등 몸을 쓰는 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차를 몰며 땅콩 장사도 해봤다.
그러나 하루 벌이로 살던 유씨에게 버스 운전에 필요한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 드는 학원비가 문제였다. 이때 그에게 힘이 돼준 사람이 유씨가 '잘생긴 총각'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한 직원이었다. 유씨는 2006년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정부에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만든 학원비 지원 프로그램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지원 대상자가 정해져 더 이상 지원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유씨는 담당자였던 '총각'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꼭 성공할 테니 지원을 해달라"고 했다. '총각'은 유씨가 다시 찾아오자 "그럼 지원을 받도록 해 드릴 테니 꼭 원하는 바를 이루시라"고 격려했다. 유씨는 "그때 그 총각 아니었으면 지금 운전대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버스 운전 자격은 갖췄지만 버스 회사 취직은 훨씬 더 어려웠다. 유씨는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지원했으나 번번이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그러던 중 회사에 여러 번 찾아온 유씨를 본 한 운수회사 이사장이 경기도의 마을버스 회사를 소개해줘 1년간 시흥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할 수 있었다.
2008년 유씨는 마을버스 경력을 가지고 서울 시내버스 회사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취직이 쉽지 않았다. 유씨는 "탈북자에 여성이라 편견이 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씨의 사정을 전해 들은 실향민 출신의 풍양운수 회장은 "그동안 한국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것 같다. 용기가 대단하다"며 그를 채 용했다. 그 뒤 풍양운수가 오케이버스로 합쳐지면서 유씨는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계속 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다. 유씨에게 남쪽 삶의 희망이었던 아들은 현재 서울의 모 대학 행정학과에 다니면서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유씨는 "고용노동부 직원부터 실향민 회장까지, 이런 분들의 도움 덕에 이렇게 번듯하게 사회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자격증 10여개 따며 준비… 누구도 무시 못하더라
입력 : 2016.05.30 03:00 | 수정 : 2016.05.30 03:5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자격증으로취업한 탈북민들
관광 통역 안내원 장문혜씨
"자격증 따게 도움 준 학원 원장, 안내원 면접때 배려해준 면접관
편견 없이 도와줘 정말 고마워"
빨간색 유니폼을 갖춰 입은 탈북민 장문혜(39)씨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 거리에서 중국인 관광객 가족에게 유창한 중국어로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칼국수를 파는 유명 음식점 위치를 묻는 한국 학생들의 질문에는 한국어로 막힘 없이 안내했다.
북한 강원도 출신으로 2013년 한국에 온 장씨는 2014년 10월부터 서울시관광협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길목에 서있다가 길을 묻는 중국인 등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명동 지리를 익히기 위해 처음 몇 주간은 근무 시간 외에도 골목골목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장씨는 "처음에는 길이 헷갈리기도 하고 말투도 어색해 '북한에서 왔냐'고 농담처럼 묻는 분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 안 듣는다. 이제 진짜 한국 사회 구성원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한동안 이런 자격증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장씨는 "하나원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취직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주변 동료 중에는 당장 돈을 벌려고 무턱대고 막노동 등에 뛰어들다 좌절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다 2014년 소개받은 컴퓨터 학원 원장 A씨의 조언으로 장씨는 '자격증'에 눈을 떴다. A원장은 장씨에게 "무작정 취업하려 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준비가 필요하다. 자격증을 따라. 실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면 누구도 문혜씨를 무시 못 한다"고 했다. 장씨는 이때부터 A원장의 학원에서 PC 정비사, 네트워크 관리사 과정을 듣는 한편 중국어 실력을 살려 HSK 시험과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을 준비했다. A원장은 틈틈이 장씨를 따로 불러 진로 상담을 해줬다. 장씨는 "원장님에겐 별것 아닌 일이었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한마디 한마디가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됐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장씨는 10여개 자격증을 취득했고, 목표로 하던 관광 통역 안내원에 도전할 수 있었다. 면접 과정에서는 난관도 있었다. 장씨는 "면접 때 '추 억의 한국 관광지를 소개해보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해하자 면접관님이 '대신 중국의 관광지를 소개해도 된다'고 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며 "작은 배려였지만 나에게는 잊지 못할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큰 틀에서의 정부 탈북자 정책도 중요하지만, 탈북자들을 마주하는 개인과 고용주들의 편견 없는 태도가 탈북자들에게는 더 큰 희망이 된다"고 말했다.
"정규직 30%를 탈북민으로… 기술 가르쳐 뽑습니다"
김강한 기자
입력 : 2016.05.30 02:57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 교육으로 취업 돕는 기업들
- 탈북민 취업프로그램 운영 '바오스'
이동왕 대표, 본지 기사 읽고 탈북민에게 일자리 주기로 결심
"업무능력 南직원 못지않고 성실"
탈북 직원들 "살길 막막했는데 기술 배우고 돈 벌고 희망 생겨"
이 대표는 지난해 조선일보의 '탈북민 3만명 시대' 기획 기사를 읽고 난 뒤 이 같은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채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채용한 탈북민의 능력이 남한 사람과 별 차이가 없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매일 기사를 스크랩해가며 직원들에게 탈북민 채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탈북민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한 바오스는 남북하나재단 쪽에 먼저 전화를 걸어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했다.
영어 알파벳부터 가르치며 골프 캐디로 키워
입력 : 2016.05.30 03:0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 교육으로 취업 돕는 기업들
탈북민 '눈높이 교육' 골프존카운티
영어 몰라 골프 용어 어려워해… 北 사투리 고치는 발음 교정도
연봉 4000만원… 만족도 높아
골프존카운티는 사회 공헌 차원에서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탈북민 캐디 지원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거쳐 교육생을 뽑고 12주 동안 골프 규칙, 골프 코스, 골프 용어, 서비스 정신 등을 교육한다. 교육을 모두 마치고 실전에서 업무 테스트를 통과하면 정식으로 캐디가 될 수 있다.
탈북민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골프 용어와 골프 규칙이다. 북한에서 전혀 골프를 접해보지 못했고, 영어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프존카운티 관계자는 "12주 만에 교육을 수료하는 탈북민이 거의 없어서 추가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존카운티는 아예 영어 알파벳부터 가르친다. 북한 사투리를 고치기 위한 발음 교정도 한다. 그 결과 일반 캐디 교육보다 2~4주 정도 교육 기간이 길다. 그동안 13명이 교육 수료를 했다. 교육비는 무료다. 골프존카운티는 교육 기간 동안 기숙사와 식사, 유니폼도 무료로 제공했다.
캐디로 일하는 탈북민들의 직업 만족도도 비교적 높다. 연봉 기준으로 3500만~4000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3개월째 캐디로 일하는 조미경(41)씨는 "북한에서 경보·필드하키 선수로 일했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운동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며 "나이도 많은 편인데 받아줘서 정말 고맙고 수입도 많기 때문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서 의욕이 생긴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인 2009년 탈북한 김지영(27·가명)씨는 11개월째 캐디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소개로 취업을 했다. 골프 용어를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눈높이 교육을 해주고 배려해줘 서 정말 고맙다"며 "북에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기 위해서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탈북민들은 충성도가 높아 다른 골프장으로 가지 않고 대부분 골프존카운티에서 캐디로 일한다. 김준환 골프존카운티 대표는 "앞으로 골프장 코스 관리, 카운터 담당, 식당 관리 등 골프장 내 다양한 일자리에 탈북민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리·중장비·컴퓨터… "직업 교육, 원하는 대로"
춘천=김명성 기자
입력 : 2016.05.30 03:0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 교육으로 취업 돕는 기업들
- 탈북 청년 맞춤형 지원 해솔학교
김영우 이사장이 私財 털어 설립, 전문가 멘토링 통해 일자리 연결
26일 오후 강원도 춘천 후평동에 위치한 '제일요리전문학원' 주방에서 하얀 요리복을 입은 세 명의 탈북 청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만둣국을 만들고 있었다. 이은성(25·이하 가명)·김충일(24)·김민국(24)씨는 모두 춘천의 탈북민 직업훈련기관 '해솔직업사관학교'(이하 해솔학교) 학생들이다.
"충일아, 물은 세 컵이다. 간장은 티스푼으로 하나만 넣어." 야채를 썰던 이은성씨가 육수를 만드는 김충일씨에게 코치를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유담연 제일요리학원 원장은 "폼은 완전 요리사들 같다. 첫 요리 실습치곤 잘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솔학교는 남한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20대 탈북 청년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기숙형 직업 대안학교다. 외환은행 부행장을 지낸 김영우 이사장이 사재를 털어 2014년 설립했다. 김 이사장은1997~1999년 경수로 사업차 함경남도 신포에서 근무하면서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봤다. 그는 "그 이후 탈북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줄곧 고민해왔다"며 "퇴직 후인 2004년부터 탈북 청소년 대안교육 봉사활동을 진행해왔고, 해솔학교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솔학교에서는 전문 교사들이 탈북 청년들에게 수학·영어 등 기초학습과 인성교육, 컴퓨터 등을 가르친다. 또 춘천 소재 요리학원, 중장비학원, 폴리텍대학교 등과 협약을 맺고 직업기술교육을 진행한다. 기술 취득 이후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통해 취업처와 연계해 주고 있다. 이은성씨처럼 요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제일
요리학원에 보내 요리 자격증을 따게 하는 등 진로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해솔학교에는 현재 18명의 탈북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기술을 익히고 있다. 김 이사장은 "기초 학력이 부족한 탈북 청년들에게는 대학 졸업장보다 현장에 필요한 기술이 취직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며 "기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성을 갖춘 맞춤형 인재들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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