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 환한 웃음, 南北을 잇는 '사다리'입니다

Shawn Chase 2016. 5. 31. 01:02
  • 안용현 기자
  • 임민혁 기자




  • 입력 : 2016.05.30 03:00 | 수정 : 2016.05.30 09:11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역경 딛고 정착한 탈북민들, 대부분 작은 도움에서 출발
    우리 사회서 조금만 손잡아주면 어엿한 일원으로 설 사람 많아
    통일 후엔 고향으로 돌아가 멀어진 南北주민 연결 역할


    서울 시내버스 6623번을 운전하는 유금단(46)씨는 북한에서 농사만 짓다가 2002년 탈북했다. 그녀가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일이나 막노동밖에 없었다. 유씨는 "2005년 버스 운전면허 학원비를 지원해준 고용노동부의 '잘생긴 총각'과 일할 기회를 준 버스회사 실향민 회장님 덕분에 남한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10년 무사고 모범 버스 기사다.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앞에서 토스트를 파는 박영호(27)씨는 북에서 영양실조로 죽을 뻔하다 2001년 형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다. 정부 지원으로 학업을 마치고 창업을 해보려 했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현대차그룹과 한국마사회가 탈북민에게 창업 자본과 장소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작년 8월 찾아냈고 지금은 '푸드트럭 사장님'이 됐다. 그는 "남한 사회에서 조금만 손을 잡아주면 어엿한 구성원으로 함께 설 수 있는 탈북민이 많다"고 했다.

    “탈북민, 10년 무사고 버스 기사 됐어요” - 서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탈북민 유금단씨는 “지난 2005년 버스 운전면허 학원비를 지원해준 고용노동부의 ‘잘생긴 총각’과 일할 기회를 준 버스회사 실향민 회장님 덕분에 남한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10년 무사고 모범 버스 기사다.
    “탈북민, 10년 무사고 버스 기사 됐어요” - 서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탈북민 유금단씨는 “지난 2005년 버스 운전면허 학원비를 지원해준 고용노동부의 ‘잘생긴 총각’과 일할 기회를 준 버스회사 실향민 회장님 덕분에 남한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10년 무사고 모범 버스 기사다. /조인원 기자


    지난 3월까지 입국한 탈북민은 2만9137명이다. 이 중 여성이 2만557명(77%)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녹아든 탈북민은 많지 않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탈북민 403명을 조사해 올 3월 펴낸 '2015년 북한 이탈 주민 경제·사회 통합 실태'에 따르면 한 달에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탈북민이 57.8%, 100만~200만원 소득자가 29.7%다. 월 200만원 이상 버는 탈북민은 10%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다. 탈북민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비율이 37.7%다. 일반국민의 수급 비율(2.6%)과는 격차가 컸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탈북민의 20.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응답자의 74.7%가 월 소득 150만원 미만이었다.

    탈북민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의 손광주 이사장은 "우리 사회에 안착한 탈북민들은 '통일이 되면 고향(북한)에 돌아가 남한에서 배운 것들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한다"며 "3만 탈북민은 통일 이후 남북의 멀어진 관계를 연결하는 사다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통일이 되면 2400만 북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남에 먼저 온 3만명의 탈북민은 남북이 하나가 되는 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테스트 베드(Test Bed·시험 공간)다. 조선일보는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통일 미래 시대'를 준비하는 일환으로 탈북민들이 어떻게 자유민주·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가를 고민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손 이사장은 "'고기 잡는 법(정착 방법)'을 배워야 하는 탈북민과 이를 가르쳐줄 우리의 단체·개인을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 개인들 차원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름 모를 공무원 총각·버스회사 회장이 도와줘 운전대 잡아"


    김민정 기자  



    입력 : 2016.05.30 03:0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자격증으로취업한 탈북민들

    버스기사 유금단씨
    "고용부 총각, 학원비 받게해주고, 버스회사 회장은 용기주며 채용…
    10년째 남한 사람들 태워나르니 남한 사람들 삶에 일부가 됐다"


    지난 25일 오후 1시 서울 양천공영차고지. 이곳을 기점으로 여의도로 향하는 6623번 시내버스에 유금단(46)씨가 올라 시동을 걸었다. 승객들 보기 좋으라며 운전석 창가에는 토끼풀 한 묶음을 꽂아놓았다. 2002년 6월 두만강을 넘어 탈북한 유씨는 올해로 버스 운전을 한 지 10년이 된다. 그는 "남한 사람들을 버스에 태워 나르다 보면 나도 남한 사람들의 삶에 일부가 된 것 같다"며 "몸은 힘들어도 나와서 승객들을 만나는 삶이 좋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산골 마을에서 6·25전쟁 납북자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난 유씨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농사일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 혼자 넘어온 뒤 몇 년간은 대부분의 탈북민들처럼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 식당 서빙, 수퍼마켓 점원 등 몸을 쓰는 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차를 몰며 땅콩 장사도 해봤다.

    10년째 버스를 모는 탈북민 유금단씨는 “이젠 승객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고 했다.
    10년째 버스를 모는 탈북민 유금단씨는 “이젠 승객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그러던 중 유씨는 북에 있던 아들을 남쪽으로 데려온 2005년 무렵부터 "한국 사회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할 아들에게 버팀목이 되기 위해 좀 더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유씨의 아들은 12세였다. 유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해 대학에 가거나 생소한 컴퓨터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는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운전에 자신이 있던 유씨는 버스 회사에 취직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하루 벌이로 살던 유씨에게 버스 운전에 필요한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 드는 학원비가 문제였다. 이때 그에게 힘이 돼준 사람이 유씨가 '잘생긴 총각'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한 직원이었다. 유씨는 2006년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정부에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만든 학원비 지원 프로그램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지원 대상자가 정해져 더 이상 지원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유씨는 담당자였던 '총각'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꼭 성공할 테니 지원을 해달라"고 했다. '총각'은 유씨가 다시 찾아오자 "그럼 지원을 받도록 해 드릴 테니 꼭 원하는 바를 이루시라"고 격려했다. 유씨는 "그때 그 총각 아니었으면 지금 운전대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버스 운전 자격은 갖췄지만 버스 회사 취직은 훨씬 더 어려웠다. 유씨는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지원했으나 번번이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그러던 중 회사에 여러 번 찾아온 유씨를 본 한 운수회사 이사장이 경기도의 마을버스 회사를 소개해줘 1년간 시흥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할 수 있었다.

    2008년 유씨는 마을버스 경력을 가지고 서울 시내버스 회사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취직이 쉽지 않았다. 유씨는 "탈북자에 여성이라 편견이 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유씨의 사정을 전해 들은 실향민 출신의 풍양운수 회장은 "그동안 한국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것 같다. 용기가 대단하다"며 그를 채 용했다. 그 뒤 풍양운수가 오케이버스로 합쳐지면서 유씨는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계속 버스 운전대를 잡고 있다. 유씨에게 남쪽 삶의 희망이었던 아들은 현재 서울의 모 대학 행정학과에 다니면서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유씨는 "고용노동부 직원부터 실향민 회장까지, 이런 분들의 도움 덕에 이렇게 번듯하게 사회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자격증 10여개 따며 준비… 누구도 무시 못하더라

    김민정 기자  


    입력 : 2016.05.30 03:00 | 수정 : 2016.05.30 03:5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자격증으로취업한 탈북민들

    관광 통역 안내원 장문혜씨
    "자격증 따게 도움 준 학원 원장, 안내원 면접때 배려해준 면접관
    편견 없이 도와줘 정말 고마워"


    "몐수이뎬 짜이 바이훠상창리몐(면세점은 백화점 안에 있습니다)"

    빨간색 유니폼을 갖춰 입은 탈북민 장문혜(39)씨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앞 거리에서 중국인 관광객 가족에게 유창한 중국어로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칼국수를 파는 유명 음식점 위치를 묻는 한국 학생들의 질문에는 한국어로 막힘 없이 안내했다.

    북한 강원도 출신으로 2013년 한국에 온 장씨는 2014년 10월부터 서울시관광협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길목에 서있다가 길을 묻는 중국인 등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명동 지리를 익히기 위해 처음 몇 주간은 근무 시간 외에도 골목골목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장씨는 "처음에는 길이 헷갈리기도 하고 말투도 어색해 '북한에서 왔냐'고 농담처럼 묻는 분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 안 듣는다. 이제 진짜 한국 사회 구성원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관광 통역 안내원으로 취직한 탈북민 장문혜(오른쪽)씨가 25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유커(중국인 관광객)’에게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장씨는 탈북 후 중국에 체류할 때 익힌 중국어를 ‘밑천’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
    관광 통역 안내원으로 취직한 탈북민 장문혜(오른쪽)씨가 25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유커(중국인 관광객)’에게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장씨는 탈북 후 중국에 체류할 때 익힌 중국어를 ‘밑천’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 /이태경 기자


    장씨는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취직에 성공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한국에 오기 전 8년간 중국에서 지내며 익힌 '생존 중국어'를 바탕으로 중국어 능력 자격증인 HSK(중국어 시험) 최고 등급인 6급을 취득한 게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는 한동안 이런 자격증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장씨는 "하나원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취직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주변 동료 중에는 당장 돈을 벌려고 무턱대고 막노동 등에 뛰어들다 좌절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다 2014년 소개받은 컴퓨터 학원 원장 A씨의 조언으로 장씨는 '자격증'에 눈을 떴다. A원장은 장씨에게 "무작정 취업하려 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준비가 필요하다. 자격증을 따라. 실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면 누구도 문혜씨를 무시 못 한다"고 했다. 장씨는 이때부터 A원장의 학원에서 PC 정비사, 네트워크 관리사 과정을 듣는 한편 중국어 실력을 살려 HSK 시험과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을 준비했다. A원장은 틈틈이 장씨를 따로 불러 진로 상담을 해줬다. 장씨는 "원장님에겐 별것 아닌 일이었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한마디 한마디가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됐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장씨는 10여개 자격증을 취득했고, 목표로 하던 관광 통역 안내원에 도전할 수 있었다. 면접 과정에서는 난관도 있었다. 장씨는 "면접 때 '추 억의 한국 관광지를 소개해보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해하자 면접관님이 '대신 중국의 관광지를 소개해도 된다'고 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며 "작은 배려였지만 나에게는 잊지 못할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큰 틀에서의 정부 탈북자 정책도 중요하지만, 탈북자들을 마주하는 개인과 고용주들의 편견 없는 태도가 탈북자들에게는 더 큰 희망이 된다"고 말했다.


    "정규직 30%를 탈북민으로… 기술 가르쳐 뽑습니다"

    김강한 기자




    입력 : 2016.05.30 02:57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 교육으로 취업 돕는 기업들

    - 탈북민 취업프로그램 운영 '바오스'
    이동왕 대표, 본지 기사 읽고 탈북민에게 일자리 주기로 결심
    "업무능력 南직원 못지않고 성실"
    탈북 직원들 "살길 막막했는데 기술 배우고 돈 벌고 희망 생겨"


    이동왕 대표 사진
    이동왕 대표


    경기도 평택에 있는 LED TV용 도광판(빛을 균일하게 전달하는 아크릴 판) 제조업체 '바오스(BAOS)'는 지난해 6월부터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탈북민들을 채용하는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년여간 4차례에 걸쳐 탈북민 31명을 연수생으로 선발했다. 현재 12명이 정규직으로 근무 중이다. 바오스가 몇 년 전 자체적으로 채용한 탈북민 직원 2명까지 포함하면 이 회사 정규직 180명 중 약 7.8%가 탈북민인 셈이다. 근로 조건 및 대우는 일반 직원들과 똑같다. 이동왕 대표는 "탈북민들 근무 태도가 매우 성실하다. 올해 2~3차례 더 탈북민을 채용할 계획"이라며 "정규직 중 20~30%를 탈북민으로 채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조선일보의 '탈북민 3만명 시대' 기획 기사를 읽고 난 뒤 이 같은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채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채용한 탈북민의 능력이 남한 사람과 별 차이가 없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매일 기사를 스크랩해가며 직원들에게 탈북민 채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탈북민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한 바오스는 남북하나재단 쪽에 먼저 전화를 걸어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LED TV용 도광판 제조업체 ‘바오스(BAOS)’는 지난해 6월부터 탈북민에게 기술 교육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정규직(180명)의 7.8%인 14명이 탈북민이다. 사진은 이 업체에서 근무 중인 탈북민의 모습.
    경기도 평택에 있는 LED TV용 도광판 제조업체 ‘바오스(BAOS)’는 지난해 6월부터 탈북민에게 기술 교육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정규직(180명)의 7.8%인 14명이 탈북민이다. 사진은 이 업체에서 근무 중인 탈북민의 모습. /김지호 기자


    바오스는 취업을 원하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공장을 견학시킨 뒤 인사 담당자와 면접을 거쳐 채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바오스 인사 담당자는 "탈북민에게 일자리를 주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큰 결격 사유만 없으면 모두 채용한다"고 말했다. 연수생으로 뽑힌 탈북민들은 2주간 이론 교육, 6주간 현장 실습 교육을 받는다. 이때 중요한 건 '일해서 자립하겠다'는 탈북자의 의지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힘든 일을 꺼리는 탈북자도 있다. 이 회사에선 연수 기간을 무사히 마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 작업 현장에 투입한다. 공정에서는 숙련된 선임 직원들이 배치돼 1대1로 이들을 교육한다.

    탈북민 월소득 그래프


    지난 26일 공장에서 만난 최일남(가명·28)씨는 도광판을 절단기에 올려놓고 있었다. 42인치·55인치 크기로 도광판을 정밀하게 자르는 작업이다. 파란색 제전복(정전기를 방지하는 옷)과 귀마개를 착용한 최씨가 팀장에게 "이 정도 크기로 자르면 되겠습네까"라고 물었다. 탈북한 지 7년이 넘었지만 북한 사투리는 여전하다. 팀장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케이. 좋아 완벽해"라고 말하자 최씨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9개월간 바오스에서 일한 그는 "북한을 탈출한 뒤 어떻게 살까 막막했었는데 바오스 도움으로 기술도 배우고 취직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며 "일을 배우느라 힘든 순간도 있지만 꿋꿋하게 참고 버티면 기술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탈북한 김성국(가명·26)씨는 북한군 출신이다. 그는 "돈을 모아 나중에 대학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바오스 관계자는 "탈북민 직원들이 중도 포기하지 않게 독려하고 자격증 취득도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어 알파벳부터 가르치며 골프 캐디로 키워


    김민정 기자



    입력 : 2016.05.30 03:0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 교육으로 취업 돕는 기업들

    탈북민 '눈높이 교육' 골프존카운티
    영어 몰라 골프 용어 어려워해… 北 사투리 고치는 발음 교정도
    연봉 4000만원… 만족도 높아


    골프존유원그룹 계열사인 골프장 운영 업체 골프존카운티는 지난해 3월부터 탈북민을 대상으로 캐디 양성 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1·2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7명이 골프존카운티가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고 있다.

    골프존카운티는 사회 공헌 차원에서 남북하나재단과 함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탈북민 캐디 지원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거쳐 교육생을 뽑고 12주 동안 골프 규칙, 골프 코스, 골프 용어, 서비스 정신 등을 교육한다. 교육을 모두 마치고 실전에서 업무 테스트를 통과하면 정식으로 캐디가 될 수 있다.

    탈북민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골프 용어와 골프 규칙이다. 북한에서 전혀 골프를 접해보지 못했고, 영어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프존카운티 관계자는 "12주 만에 교육을 수료하는 탈북민이 거의 없어서 추가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골프존카운티는 아예 영어 알파벳부터 가르친다. 북한 사투리를 고치기 위한 발음 교정도 한다. 그 결과 일반 캐디 교육보다 2~4주 정도 교육 기간이 길다. 그동안 13명이 교육 수료를 했다. 교육비는 무료다. 골프존카운티는 교육 기간 동안 기숙사와 식사, 유니폼도 무료로 제공했다.

    캐디로 일하는 탈북민들의 직업 만족도도 비교적 높다. 연봉 기준으로 3500만~4000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3개월째 캐디로 일하는 조미경(41)씨는 "북한에서 경보·필드하키 선수로 일했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운동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며 "나이도 많은 편인데 받아줘서 정말 고맙고 수입도 많기 때문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서 의욕이 생긴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인 2009년 탈북한 김지영(27·가명)씨는 11개월째 캐디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소개로 취업을 했다. 골프 용어를 전혀 모르는 나를 위해 눈높이 교육을 해주고 배려해줘 서 정말 고맙다"며 "북에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기 위해서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탈북민들은 충성도가 높아 다른 골프장으로 가지 않고 대부분 골프존카운티에서 캐디로 일한다. 김준환 골프존카운티 대표는 "앞으로 골프장 코스 관리, 카운터 담당, 식당 관리 등 골프장 내 다양한 일자리에 탈북민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리·중장비·컴퓨터… "직업 교육, 원하는 대로"

    춘천=김명성 기자 



    입력 : 2016.05.30 03:00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1] 기술 교육으로 취업 돕는 기업들

    - 탈북 청년 맞춤형 지원 해솔학교
    김영우 이사장이 私財 털어 설립, 전문가 멘토링 통해 일자리 연결


    26일 오후 강원도 춘천 후평동에 위치한 '제일요리전문학원' 주방에서 하얀 요리복을 입은 세 명의 탈북 청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만둣국을 만들고 있었다. 이은성(25·이하 가명)·김충일(24)·김민국(24)씨는 모두 춘천의 탈북민 직업훈련기관 '해솔직업사관학교'(이하 해솔학교) 학생들이다.

    "충일아, 물은 세 컵이다. 간장은 티스푼으로 하나만 넣어." 야채를 썰던 이은성씨가 육수를 만드는 김충일씨에게 코치를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유담연 제일요리학원 원장은 "폼은 완전 요리사들 같다. 첫 요리 실습치곤 잘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춘천에 있는 해솔직업사관학교는 20대 탈북 청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취업을 돕는 기숙형 직업 대안학교다. 사진은 탈북 청년 3명이 요리를 배우는 모습.
    춘천에 있는 해솔직업사관학교는 20대 탈북 청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취업을 돕는 기숙형 직업 대안학교다. 사진은 탈북 청년 3명이 요리를 배우는 모습. /오종찬 기자


    해솔학교는 남한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20대 탈북 청년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기숙형 직업 대안학교다. 외환은행 부행장을 지낸 김영우 이사장이 사재를 털어 2014년 설립했다. 김 이사장은1997~1999년 경수로 사업차 함경남도 신포에서 근무하면서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봤다. 그는 "그 이후 탈북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줄곧 고민해왔다"며 "퇴직 후인 2004년부터 탈북 청소년 대안교육 봉사활동을 진행해왔고, 해솔학교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솔학교에서는 전문 교사들이 탈북 청년들에게 수학·영어 등 기초학습과 인성교육, 컴퓨터 등을 가르친다. 또 춘천 소재 요리학원, 중장비학원, 폴리텍대학교 등과 협약을 맺고 직업기술교육을 진행한다. 기술 취득 이후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통해 취업처와 연계해 주고 있다. 이은성씨처럼 요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제일 요리학원에 보내 요리 자격증을 따게 하는 등 진로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해솔학교에는 현재 18명의 탈북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기술을 익히고 있다. 김 이사장은 "기초 학력이 부족한 탈북 청년들에게는 대학 졸업장보다 현장에 필요한 기술이 취직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며 "기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성을 갖춘 맞춤형 인재들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