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가전Tech] '김치맛 바꾸는' 김치냉장고와 냉장고의 차이는?

Shawn Chase 2016. 5. 19. 17:17

박성우 기자


입력 : 2016.05.06 08:00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전제품은 과학 기술과 함께 발전했다. 1947년 미국 벨연구소가 발명한 트랜지스터의 등장은 현대식 가전제품의 출발점이었고 가전의 대표주자인 TV는 음극선관 발명이 시발점이었다. 최근에는 가전제품이 무선통신과 연결되면서 진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다양한 가전제품에 숨겨진 과학 원리와 비밀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결혼 2년차 직장인 박동수(35) 씨는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한 시간 거리인 부모님 댁을 찾았다. 어머니가 저녁 식사 때 내놓으신 ‘어머니 손맛’ 김치는 언제나 꿀맛 같았다. 어머니는 김치를 비롯해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현관문을 나서는 박 씨의 손에 들려줬다.

일주일 후 박 씨는 김치를 먹기 위해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 댁에서 먹었을 때는 적당히 잘 익어 맛이 좋았던 김치가 어느새 쉰 김치가 돼버린 것이다. 박 씨는 아내에게 김치가 쉰 이유를 물었는데, 아내의 표정은 싸늘했다. 아내는 ”김치냉장고나 한 대 사주고 얘기하세요”라며 투덜거렸다.

문을 열면 찬 공기가 나오는 다 같은 냉장고 같은데, 김치냉장고와 일반 냉장고는 무슨 차이일까? 왜 김치맛이 달라지는 걸까?

김치 냉장고(왼쪽), 일반 냉장고(오른쪽) /조선DB
김치 냉장고(왼쪽), 일반 냉장고(오른쪽) /조선DB

◆ 김치 냉장고 VS 일반 냉장고의 차이는?…정답 : 냉각 방식이 다르다

김치 냉장고와 일반 냉장고의 가장 큰 차이는 ‘냉각 방식’이다. 김치 냉장고는 전통 김장독의 김치 숙성·보관 원리를 현대 기술로 구현했다. 김장철인 11월 하순 땅속 온도는 평균 섭씨 5도 수준. 12월 초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섭씨 0도~영하1도 사이에서 유지된다. 이러한 온도 유지가 전통 김장독의 김치 숙성·보관 원리다.

겨울철 땅속에 묻힌 김장독은 냉기 유출을 차단하고 외부 공기 접촉을 최소화해 김장독 내부 온도를 땅속과 비슷한 0도~영하 1도 사이로 유지한다. 땅속의 냉기가 김장독 자체를 냉각시키는 ‘직접 냉각 방식’인 셈이다. 김치 냉장고도 저장실 외부를 냉각코일로 감싸서 코일에서 흐르는 냉기로 저장실을 직접 냉각한다. 김치 냉장고의 저장실이 김칫독이라면, 코일이 겨울철 차가운 땅속 역할을 한다. 직접 냉각 방식은 온도를 유지하는 정온성이 좋고 수분 증발이 없어 식품을 신선하게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반면 일반 냉장고는 서양의 건조 음식 보관에 맞춰 냉기를 순환하는 ‘간접 냉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냉장고 벽면 안쪽에 부착된 냉각기가 내부 공기를 빨아들여 온도를 차갑게 한 뒤 다시 배출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냉장고 내부 온도가 자주 변하면서 음식물의 수분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대유위니아 관계자는 “김치 냉장고와 냉장고는 방안의 온도를 데우는 기술과 비슷하다”며 “방바닥 자체를 데우는 온돌 방식이 김치 냉장고라면 공기 온도를 높이는 온풍기는 일반 냉장고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김치 냉장고 직접 냉각 방식의 원리 /대유위니아 제공
김치 냉장고 직접 냉각 방식의 원리 /대유위니아 제공

또 일반 냉장고는 문을 열면 무거운 찬 공기가 바닥으로 쏟아져 흘러내리고 밖에 있던 공기가 유입된다. 문을 닫으면 본래의 온도까지 도달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김치 냉장고는 서랍식 또는 상부 개폐식으로 만들어져 문을 열더라도 냉기가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 원래의 냉장고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김치 냉장고는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공기보다 무거워 위로 솟아나오지 않는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냉장고 내부의 냉기 ‘단속능력’이 일반 냉장고 보다 우수하다.

김치 냉장고를 이용하면 싱싱한 김치를 보통 4개월 동안 보관할 수 있다. 숙성기에는 온도를 섭씨 5~7도로 유지하고, 그 뒤에는 0도로 조정해 놓으면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 김치 냉장고 대중화 1등 공신 ‘딤채’…주부들 사이에서 딤채계까지 등장해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이 최초의 김치 냉장고를 만들었다. 금성은 1984년 3월 45리터(ℓ) 용량의 김치 냉장고를 선보였다. 뒤이어 동부대우전자의 전신인 대우전자도 김치냉장고를 내놨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나머지 이들 제품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당시 주부들에게 김장 김치를 냉장고에 보관한다는 개념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금성이 개발한 최초의 김치 냉장고 광고의 모습 /LG전자 제공
금성이 개발한 최초의 김치 냉장고 광고의 모습 /LG전자 제공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김치냉장고는 1995년 다시 등장해 열풍을 일으킨다. 1995년 11월 대유위니아의 전신인 만도기계 아산산업본부는 김치의 옛말인 ‘딤채’라는 브랜드로 김치 냉장고를 내놨다. 김치 냉장고는 90년대 후반 주부들이 갖고 싶은 가전제품 순위에서 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부들 사이에서 '딤채계'가 생길 만큼 김치냉장고는 유행했다.

1995년 연간 4000대였던 김치 냉장고 시장 규모는 1996년 2만5000대, 1997년 8만여대, 1998년 22만8000여대, 1999년 53만여대 등 매년 2배 이상 빠르게 성장했다. 2002년에는 180만대 이상이 팔리며 최고 성수기를 이뤘고, 단일 품목으로 시장 규모가 연간 1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교체 수요에 따라 연간 130만~150만대의 김치 냉장고가 판매되고 있다.

대유위니아가 개발한 최초의 ‘딤채’ 브랜드 김치 냉장고 /대유위니아 제공
대유위니아가 개발한 최초의 ‘딤채’ 브랜드 김치 냉장고 /대유위니아 제공

김치 냉장고 보급률은 2000년 11%, 2002년 33%, 2004년 48%, 2006년 63%로 매년 꾸준히 상승했고 2011년에는 90%를 넘어섰다. 사실상 대부분 가정에 김치 냉장고 한대쯤은 있는 셈이다. TV와 냉장고가 최초의 국산 제품이 나온 지 21년, 23년 만에 보급률 80%를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주부들의 김치 냉장과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