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류근일 칼럼] '한미약품 임성기'와 '몽고식품 김만식'

Shawn Chase 2016. 1. 12. 09:31

[류근일 칼럼] '한미약품 임성기'와 '몽고식품 김만식'

  • 류근일 언론인


 

입력 : 2016.01.12 04:31

류근일 언론인

임성기 한미약품 그룹 회장과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 살맛 나는 리더십과 죽을 맛 나는 갑(甲)질. 성공하는 체제와 실패하는 체제. 연말 연초의 우리 사회엔 이 두 모델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무대 위에 출현했다. 김만식 명예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가 조금만 잘못한다 싶어도 마구 욕설을 퍼붓고 국소(局所)를 걷어찼다. 자유 기업과 시장경제의 '나만 살고 너는 죽고' 모델이었다. 반면 임성기 그룹 회장은 1160억원어치 자신의 주식을 전 직원에게 무상 증여했다. 자유 기업과 시장경제의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모델이었다. 이 두 모델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시장경제 체제가 어떻게 하면 공생(共生)하고, 어떻게 하면 공멸(共滅)할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한미약품 임성기 회장. /조선일보 DB

'살맛 나는 리더십' 임성기 모델,
'추한 甲질 대명사' 김만식 모델

노블레스 오블리주 저버리는 것은
체제 허무는 반역 행위와 같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공산주의나 파시즘의 비교 우위로 망할 위험은 이제 0.1%도 없다. 자유민주-시장경제 체제의 우월함이 너무나 압도적인 판정승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체제는 '망하기로 작정만 하면' 얼마든지 망할 수 있다. 내부의 '막장 드라마'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기승하다 보면 결국은 망하고 말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과 자본주의 정신' '청교도 정신' 같은 책과 용어가 말해주듯 근대 자유주의 경제사상은 처음부터 윤리학에 뿌리박은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베니스의 상인' 뺨치게 고약한 사례도 물론 있겠지만, 이윤 추구와 공동선(善)을 하나로 합친 '고매한 경제인'들이 더 많다.

미국의 에티스피어(Ethisphere)란 잡지는 '가장 비윤리적인 공인 10인'을 선정한 바 있다. 웰포인트의 CEO 데이비드 콜비는 수많은 포르노급 여성 편력으로, 일리노이주(州) 주지사 로드 블라고예비치는 매관매직으로, 지멘스의 하인츠-요아킴 노이뷰르거 회장 2인은 뇌물 공여로, 알래스카주지사 테드 스티븐스는 미국판 '김영란법' 위반으로, 알스톰의 부사장 브루노 카엘린은 자금 세탁으로, 그리고 또 나머지는 온라인 매매춘으로 명예훼손으로, 컴퓨터 해킹으로 '고약한 공인' 명단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 MBA 닷컴'이란 매체는 '2015년의 가장 윤리적인 경제인 10인'을 선정했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는 일자리 창출과 영세 기업 지원 활동으로, 타깃의 CEO 그레그 슈타인하펠은 불황기인데도 회사 수입 5%를 자선(慈善)에 쓴 것으로, 온라인 판매 회사 자포스의 대표 토니 시는 '행복 배달'이란 자회사를 만들어 고객과 사원에게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모두 세인의 감동을 샀다. 그 밖의 7명도 비슷한 미담(美談)의 주인공들이었다.

한 나라의 시장경제와 자유 기업을 '비윤리적인 경제인'들이 휩쓸 때는 당연히 체제가 흔들린다. 혁명도 날 수 있다. 반대로 '윤리적인 경제인'들이 대세를 잡으면 체제가 안정되게 굴러간다. 혁명이 기댈 언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 쪽으로 가고 있나? 우리 일각엔 최근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엔 전혀 감동하지 않은 채 '헬(지옥) 조선' '나는 흙수저'라고 자학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이 너무 팍팍해서 자기들이 끼일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저주가 계속 임계(臨界)점을 향해 치솟다 보면 보일러가 펑 하고 터지는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너희의 적(敵)은 자본 독재, 유신 부활이다"라고 선동해대는 전체주의-반(反)세계시장-쇠파이프 부대가 또다시 서울 한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 형편상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 어찌할 것인가? 젊은이들이 "세계시장과 자유 기업이 뭐니 뭐니 해도 그중 낫더라"고 체감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한다.

이러려면 '몽고식품 김만식 모델' 아닌 '한미약품 임성기 모델'을 계속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경제계뿐 아니라 보좌관 급여나 떼먹고 피감(被監) 기관에 자식 청탁이나 하는 여야 의원들, 제자를 때리고 인분을 먹인 교수, 백화점 판매원을 무릎 꿇린 사모님, 가맹점에 모든 걸 떠넘기는 프랜차이즈 업계, 동남아에 진출한 기업이 현지 근로자에게 "하루에 여러 번 화장실에 가면 옐로카드, 옐로카드를 두 번 받으면 회사를 떠나야…"라고 한 사례 등 온갖 갑질의 추함을 공생의 아름다움으로 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자유체제를 지키는 길은 자유의 책임과 윤리와 덕(德)을 실천하는 것이다.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저버리는 것은 그래서 체제를 허무는 반역 행위로 간주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