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기부부터 장례식까지
기부금 모금에 올인한 대학들
곽창렬 기자
입력 2021.10.23 03:00
대구가톨릭대학교가 고액 기부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매장묘. /대구가톨릭대 제공
연세대는 지난달 동문들에게 ‘위대한 유산, 위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발송했다. 모교에 유산(遺産)을 기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유산의 일부를 살아있을 때 학교나 금융기관에 맡기고 쓰다가, 사후(死後) 학교에 남기는 방식이다. 일정액 이상의 유산을 남길 경우 경기도 용인에 마련한 전용 납골공간(‘연세 동산’)에 안치될 수 있도록 했다.
대학들이 기부금 걷기에 나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사립대학인 대구가톨릭대는 이달 들어 학교에 기부금(발전기금) 1억원을 내면 묫자리를 주겠다고 내걸었다. 학교를 소유한 재단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인데 이곳이 보유한 경북 군위군 가톨릭 묘역에 묻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매장을 선택하면 60년간 묻힐 수 있고, 화장할 경우엔 기한 없이 납골묘역에 안치할 수 있다. 만약 1억5000만원 이상을 기부하면 기부자 부부가 함께 묻힐 수 있다. 이달 초부터 동문들에게 알렸는데, 벌써 12명이 신청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대구가톨릭대 우동기 총장은 “고령화 사회에 재산을 둘러싸고 자식 간에 제사나 산소 관리가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보니, 괜찮은 묫자리에 묻히겠다는 재력가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만약 3억원 이상을 내면 사후 장례식도 학교가 주재하는 학교장(葬)으로, 10억원 이상을 내면 남은 생애 병원 치료비도 해결해준다고 한다.
대학들이 이색적인 방법을 동원해서까지 기부금 걷기에 나선 것은 그만큼 재정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학생·학부모의 반발과 정부의 통제로 13년 가까이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된 상황에서 학생 수는 줄어드니 수입은 사실상 마이너스. 여기에 코로나19로 각종 행사를 유치하기 어려워져 기금을 걷기가 어렵다고 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경제 위기로 기업들도 사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기업) 노조가 ‘우리 회사도 어려운데 왜 대학에 기부하느냐’며 막는 분위기라 더 기부금이 안 모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가 걷은 기부금은 2017년 7115억원이었는데, 지난해 569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소액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학교 강당 등에 마련된 의자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겨주기도 한다. 경희대는 지난해부터 학교 강당인 크라운관 700여 석에 기부금을 낸 사람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30만원 혹은 50만원 기부하면 의자 뒤에 이름과 함께 학생에게 남기고 싶은 문구를 새길 수 있다. 현재 약 80% 좌석에 이름이 새겨졌다. 경희대 강필정 교수는 “소액 기부를 독려하는 차원으로 마련했는데, 다 채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신용카드 단말기를 학내 6곳에 설치했다. 신용카드를 꽂으면 1만원이 기부금으로 빠져나간다. 연세대 관계자는 “모처럼 학교를 방문하는 동문들이 쉽게 기부하도록 하는 방안의 하나로 2019년 도입했다. 금액이 크지 않고, 신기하고 참신하게 보는 분들이 이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고려대의 경우 많은 금액을 기부한 사람들을 총장이 직접 만찬에 초대한다.
대학 총장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최우선 공약으로 기부금 유치를 내건다. 지방의 한 대학 총장은 “지방 대학은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면 자칫 학교가 문 닫을 수 있다. 구조조정이라도 들어가면 직장을 잃을 우려가 있으니, 교수나 직원들이 기부금 잘 걷는 후보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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